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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태국(Thailand)

D+069, 태국 람빵 8-2: 태국 영화관에서 보는 동남아와 중국의 영화산업 (20190122)

경계넘기 2021. 6. 19. 14:30

 

 

태국 영화관에 그려진 동남아와 중국 영화산업

 

 

외국 여행을 하는 중에 나는 곧잘 현지 영화관에 간다.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현지에서 현지의 영화를 보면 영화 속에 담긴 그 나라 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더 생생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울러 현지의 영화관에서는 그 나라 대중문화 산업의 모습과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그 나라 사람들의 모습을 대충이나마 엿볼 수 있다.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면 동남아와 같은 더운 나라에서는 영화관이 더위도 식히고 쉬어갈 수 있는 최고의 휴식처이기도 하다.

 

영화 자체를 떠나서 여러 상영관을 가진 멀티플렉스에서 자국 영화를 한 편만, 그것도 한 타임만 상영한다는 것은 현재 태국 영화산업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태국은 1960~70년대에만 하더라도 연 200편 안팎의 꽤 많은 영화를 제작했던 국가다. 1980년대 중반 들어 침체기에 들면서 제작편수가 급감했다가 1990년대 말부터 다시 부흥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제작편수는 줄어들어 현재 20편 안팎이 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행히 편당 흥행은 높아서 태국 전체 영화 흥행에서 자국 영화가 차지하는 비율이 낮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막상 현지에 와서 보니 절대 편수의 부족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20편으로 잡아도 월에 한, 두 편 상영하는 셈이니 지금 모습이 얼추 비슷하긴 하다. 물론 한 타임은 너무 심하다. 게다가 지금은 연초 성수기가 아닌가!

 

 

 

이번 여행에서는 태국이 처음이지만 동남아 국가들 중에서는 이미 예전에 베트남이나 라오스의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었다. 동남아 국가들의 영화 가격은 좋은 시설의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대체로 5천원 안팎으로 한국보다는 저렴하지만 이곳의 물가를 고려다면 결코 싸다고 할 수는 없다.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Vientiane)에서 갔던 멀티플렉스 극장은 시설과 서비스가 거의 호텔 수준이었다.

 

 

베트남 영화관
베트남 영화관
라오스 영화관
라오스 영화관

 

그래서일까 동남아 국가들의 영화관에서 사람들을 많이 보지 못했다. 지금 태국만 해도 그렇다. 아무리 평일이라고 하더라도 태국 영화는 나 혼자, 할리우드 영화는 나를 포함해 3명이 봤으니 말 다했다. 베트남이 다소 많기는 했지만 대체로 베트남, 라오스의 극장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경우 일반 동남아인들에게는 아직 비싸 보였다.

 

자국 영화의 비중도 무척 낮다. 상영관의 대부분은 할리우드 영화가 장악하고 있다. 어쩌면 한 편, 한 타임이라도 자국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 태국은 나은 편일 수도 있다. 여담이지만 2018년 여름 베트남에서는 두 편의 한국 영화가 상영되고 있어서 놀라기도 했다.

 

 

2018년 여름 베트남에 상영되는 한국 영화들

 

중국에서도 영화를 많이 봤다.

 

중국은 우리보다도 영화관 가격이 비싸다. 중국 영화 기준으로 입장료가 보통 80위안 정도 하고 좋은 영화관들은 100위안을 넘는 경우도 있다. 할리우드 영화 같은 수입영화는 더 비싸다. 100위안이면 우리 돈으로 17천 원이다. 예전부터 그랬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정부가 극장에 주던 보조금 지원을 중단하자 이를 메우기 위해 극장들이 입장료를 일제히 올렸다. 입장료가 오르자 관객이 줄고, 관객이 줄자 부족한 운영비를 메우느라 입장료를 다시 더 올리는 악순환이 일어나면서 지금의 높은 가격이 나왔다.

 

중국 물가를 고려하면 영화 한 편 보는데 우리 돈으로 거의 3, 4만원 내고 보는 셈이니 우리에게도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중국 젊은 연인들이 영화 한 편 보면서 팝콘과 콜라 하나 마시면 우리 체감으로 거의 10만 원 돈이 나간다. 중국에 해적물 DVD가 판칠 수밖에 없던 이유다. 덕분에 10여 년 전만 해도 중국에서는 전 세계 영화들을 거의 다 구해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영화들도 천지에 깔려 있었는데 그게 다 해적물이다.

 

 

 

최근 중국 영화 시장이 급성장하기에 영화관의 가격도 좀 내렸나 싶었는데 이번 여행에도 보니 여전했다. 영화관 입구까지 갔다가 여러 번 발길을 돌렸다.

 

그럼에도 어떻게 중국 상영 시장이 매년 급속히 늘어나는 것일까?

 

현재 중국의 영화 상영시장은 세계 2위로 곧 1위인 미국을 따라 잡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부자들이 많이 늘어났다고 하더라도 이 가격을 주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사람이 갑자기 많아질 것 같지는 않다. 부자들이 매년 영화관 출입을 두 배, 세 배씩 늘렸을 리도 없고.

 

이번에 중국을 여행할 때 몇 군데 영화관을 둘러보면서 확인해보니 매표소 위에 있는 가격은 정말 명목상의 가격이었다. 뭐랄까, 호텔이나 항공권 가격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명목상의 정상 가격은 있지만 어느 누구도 정상 가격을 다 주고 호텔에 묵거나 항공권을 사지 않듯이 중국인들도 제값 내고 영화를 보지는 않을 듯하다.

 

예전에는 없었던 다양한 할인이 생겼다. 학생할인, 요일 할인에 회원할인까지. 할인 가격은 대략 30~50위안이었다. 거의 반 이상 할인되는 셈이다. 회원이야 가입만하면 되는 것이니 중국사람 중에서 정상 요금 내고 영화 보는 사람은 호구가 아니라면 거의 없을 듯하다. 간단하게 요금을 내리면 될 것을 애써 그런 꼼수들을 쓰는 모양이다.

 

 

 

다만 외국인인 나는 어떤 할인도 받을 수 없으니 정상 요금을 다 내야 한다. 발길을 돌린 이유 중의 하나다. 호구되기도 싫었지만 외국인과 내국인에 다른 가격을 적용하는 이중가격제 같은 느낌을 받았다. 여하튼 결과적으로 중국 영화관 가격도 이래저래 많이 내려간 것이다. 그러니 중국 상영 시장이 해마다 늘어날 수 있는 것이리라.

 

동남아도 대중문화 산업이 성장할 기반은 가지고 있다. 경제력도 경제력이지만 일단 젊은 세대의 인구 비중이 높은 지역이다. 동남아 대중문화 산업이 성장한다면 그 동력은 태국에서 나오지 않을까? 이미 상당한 편수의 제작 경험과 완성도 높은 영화를 제작하는 나라니 말이다. 만약 태국이 지금처럼 정체된다면 베트남이 동남아 문화산업의 맹주로 부상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태국의 정치적 상황이 아닐까!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