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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크로아티아(Croatia)

D+205,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2-2: 구시가지 산책 2, 반옐라치치 광장과 자그레브 대성당 (-20190607)

경계넘기 2022. 4. 15. 13:13

 

 

자그레브(Zagreb) 구시가지 산책 2,

반옐라치치 광장(Ban Jelačić Square)과 자그레브 대성당(Zagreb Cathedral)

 

 

본격적으로 구시가지를 산책한다.

 

자그레브 중앙역에서 세 개의 공원을 지나서 한 블록 정도 북단으로 더 올라가면 웅장하고 멋진 석조 건물로 둘러싸인 직사각형의 광장이 나온다. 유럽의 도시들 가운데에 있는 전형적인 광장의 모습이다.

 

 

반옐라치치 광장
Ban Jelačić Square

 

 

자그레브의 중심 반옐라치치 광장(Ban Jelačić Square)이다.

 

자그레브 구시가지 여행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으로 여기서부터 구시가지가 시작한다. 자그레브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기도 하다. 광장에서는 여러 가지 행사가 열리고도 하고, 오후에는 벼룩시장도 열린다. 여행객들에게는 자그레브의 가장 중요한 이정표다. 이곳만 제대로 알고 찾을 수 있다면 자그레브에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광장 가운데 말을 탄 반옐라치치(Ban Jelačić) 동상이 있다.

 

그는 184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침입을 물리친 크로아티아의 전쟁 영웅이라고 한다. 광장도 그의 이름을 땄다.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연방 때는 그의 동상이 치워지고 이름도 공화국 광장으로 불렸다고. 1991년 독립과 함께 다시 예전의 이름을 되찾고 동상도 제자리를 찾았다고 한다.

 

 

 

자그레브의 구시가지는 두 개의 언덕, 서쪽의 그라데츠(Gradec) 언덕과 동쪽의 캅톨(Kaptol) 언덕으로 구성된다. 12세기부터 헝가리가 서쪽 그라데츠 언덕에는 상인과 농민 거주지로, 동쪽 캅톨 언덕에는 성당과 성직자 등의 종교 지역으로 구분했다고 한다.

 

이 두 언덕의 남단 가운데에 반옐라치치 광장이 있다. 구시가지인 그라데츠와 캅톨을 연결하고 현재에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이어주는 곳으로 명실상부한 자그레브의 중심이다.

 

 

광장을 등지고 우측 풍경
광장을 등지고 좌측 풍경

 

 

자그레브 대성당(Zagreb Cathedral)과 집단 학살의 기억

 

 

반옐라치치 광장에서 동북쪽으로 5분 정도 걷는다.

 

광장 뒤 동쪽으로 가는 것이니 캅톨 언덕, 즉 종교 지구로 가는 길이다. 캅톨 언덕에 있는, 자그레브의 상징인 자그레브 대성당(Zagreb Cathedral)을 보기 위함이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굽어보면 시가지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바로 자그레브 대성당이다. 자그레브에 왔다면 반드시 들려야 하는 곳이다.

 

 

 

언덕 초입부터 자그레브 대성당은 그 위용을 드러낸다.

 

짙은 아이보리 톤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대성당은 화려함과 웅장함을 동시에 갖는다. 건축과 예술에 문외한이 봐도 가히 자그레브 아니 크로아티아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첨탑의 높이까지가 108m로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란다. 뿐만 아니라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라고도.

 

 

 

크로아티아는 1091년부터 헝가리의 지배를 받았다.

 

1093년 헝가리의 왕이 자그레브에 들려 현 위치에 있던 작은 성당(church)을 대성당(cathedral)으로 격상시키고 증축을 명령했다. 대성당의 증축은 1217년에 완공되었지만 1242년 타타르족의 침입으로 완전히 파괴되었고 이후 다시 재건되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1880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현재의 모습은 1889년에 복구된 것이라고 한다. 현재에도 부분부분 공사가 진행 중이다.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 본다.

 

대성당 안도 무척이나 화려하고 웅장하다. 대성당답게 꽤 넓은데 5,000명이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한다. 한쪽 벽면에 새겨진 상형 문자가 독특하다. 무슨 의미일까?

 

 

 

예배당 한쪽에 누군가의 시신이 안치된 관이 있다.

 

말로만 들었던 대주교 알로이지예 스테피나츠(Aloysius Stepinac)의 시신이 분명하다. 뭔가 섬뜩함이 몰려온다. 단순히 시신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와 얽힌 섬뜩한 이야기 때문이다.

 

 

 

스테피나츠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세르비아인 집단 학살과 깊은 관련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고슬라비아 왕국(Kingdom of Yugoslavia)의 일원이었던 크로아티아에는 독일 나치의 지원을 받은 괴뢰국 크로아티아 독립국(Independent State of Croatia)이 세워졌다. 이어서 세르비아인에 대한 잔혹한 집단 학살이 일어났다. 최소 20만에서 최대 50만 명의 세르비아인들이 학살되었다고 한다.

 

집단 학살을 주도한 세력은 크로아티아 독립국의 주축 세력으로 우스타샤(Ustaša)라는 크로아티아 파시스트 극우 민족주의 단체였다. 이들은 세르비아인, 유대인, 집시를 크로아티아인의 적으로 선포하고 이들에 대한 조직적인 집단 학살과 강제 개종을 저질렀다.

 

 

우스타샤 (출처: sposkok)

 

우스타샤의 잔혹함은 독일 나치도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그들의 집단 학살 방식은 일대일 학살이었다고 한다. 가스실 등을 이용한 나치 독일의 집단 학살이 아니라 일대일로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이다. , 망치, , 도끼 등으로 사람을 잔인하게 고문해서 죽였는데 한 수용소에서만 10만여 명의 세르비아인들이 이런 방식으로 학살되었다고 한다. 여성들에 대한 강간과 학대는 기본이었고, 죽은 세르비아인들의 눈을 파내어 화환처럼 걸고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우스타샤 (출처: wikipedia)

 

놀라운 사실은 이 집단 학살을 주도한 상당수가 가톨릭 사제였다는 것이다.

 

집단 학살을 주도한 크로아티아 공화국의 고위직 상당수도 가톨릭 사제들이었다. 이외에도 많은 수의 사제들이 집단 학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전후에 상당수 사제들이 전범으로 기소되거나 수배되었다.

 

 

나치와 사제들 (출처: wikipedia)

 

이들 중 한 명이 스테피나츠 대주교다.

 

당시 스테피나츠는 크로아티아 모든 사제들의 수장인 대주교였다. 로마 가톨릭의 엄격한 조직 체계 상 그의 지시나 묵인 없이 사제들이 그런 일을 도모할 수가 없다. 만의 하나 사제들이 대주교의 지시 없이 그런 만행을 저질렀다면 전후 전범으로 기소되기 이전에 이미 파문되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테피나츠는 나치 독일이 발칸을 점령하자 환영 성명을 내고 협력을 약속하기도 했다.

 

스테피나츠 대주교의 혐의를 로마 교황청은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인정은 커녕 로마 교황청은 스테피나츠를 기소하려는 구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티토(Josip Broz Tito)를 집요하게 방해하고, 그가 요청한 대주교의 교체마저도 거절했다. 여기에 더해 스테피나츠를 추기경으로 승진시켰을 뿐만 아니라 1998년에는 교황 바오로 2세가 그를 순교자로 추서하고 성인의 반열로 올려 버렸다.

 

 

대주교 스테피나츠 (출처: wikipedia)

 

누구의 주장이 사실일까?

 

함부로 말할 수 없지만 전범 재판에서 징역 16년을 선고 받았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 더욱이 로마 교황청의 집요한 협박과 압박 속에서도 전범 재판소가 징역 16년의 중형을 선고했다는 사실에서 더욱 그렇다.

 

로마 교황청이 스테피나츠 대주교를 순교자로 추서하고 성인의 반열에 올려준 덕분에 자그레브 대성당에서 그의 시신을 보고 있다. 지금은 대주교가 아니라 추기경이고.

 

하지만 그의 시신을 보는 순간 대성당의 거룩함과 경건함은 순간 사라지고 스산해진다. 무언가 섬뜩한 것이 공포물에 나오는 괴기스런 공간 같다. 성당을 가장한 집단 학살의 집단수용소 같다. 정말 집단 학살의 정점에 자그레브 대성당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왜 크로아티아인들은 굳이 그를 성당 안에 안치한 것일까?

 

성당 안 예배당에 시신을 영구 안치하는 성당이 또 있는가? 장례식 동안 안치되는 경우는 많아도 이렇게 시신을 영구 안치하는 성당은 내 기억에 없다. 그의 시신을 특별히 성당 안에 안치한 것을 보면 그를 특별히 존경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는 크로아티아인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수십만 명에 대한 집단 학살을 오히려 당당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행위가 아닐까?

 

스테피나츠의 시신을 뒤로 하고 나오니 크로아티아가 달리 보인다.

 

예배당에서 시신이라도 좀 치웠으면.......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