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로부터 카톡 하나가 날라 왔다.
박근혜는 무당하고 점쟁이 정치하다가 개판치고 문재인은 모두를 잘 살게 한다더니만 모두를 짜증나게 하고 이놈이 하던 저놈이 하던 다 똑같다.
답장을 날렸다.
박근혜가 무당하고 점쟁이 정치할 때 우린 그 사실조차 제대로 몰랐고, 문재인이 짜증나게 하는 것은 실시간으로 잘 알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나아진 것이 아닌가.
웬일인지 친구가 금세 수긍한다.
명쾌한 대답이네
예전에 대학생 때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간 적이 있다.
햇살 뜨거운 한낮의 어느 작은 도시의 기차역 플랫폼에서였다. 기차를 기다리는데 플랫폼 저 끝에서부터 낮술에 찌든 백인 노인 한 분이 욕을 하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대충 들어보니 일본과 중국 욕을 하면서 일본 놈들이나 중국 놈들은 다 자기 나라로 돌아가라는 내용이다. 호주 백호주의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시는 분이었다.
나른한 오후의 시골 기차역에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그나마도 동양인이라고는 나 혼자였다. 드디어 내 앞에 다다른 그 노인 분은 더욱 목청을 높여 japanese가 어떻고 chinese가 어떻고 욕을 해댔다. 한참을 묵묵히 듣고 있다가 잠시 노인의 말이 끊긴 사이에 내가 얼른 답을 했다.
“Sorry but I am a Korean.”
“Korean! Korean? Korean......”
미안하지만 난 한국인이라는 말에 그 노인 분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연신 Korean만 되뇌였다. 무언가 한국에 대한 욕을 해야 하는데 한국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내 쪽으로 몇 번 손가락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무언가를 말하려 하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나를 지나쳐 걸어가면서도 그 노인은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계속 욕할 거리를 찾는 모양인데 한국에 대해서는 무던히도 아는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때 여실히 알았다.
알아야 욕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민주적 정부가 일 잘하는 정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권위적인 정부가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다만 민주적일수록 정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국민이 소상히 알 수 있다.
정책의 결정과 집행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욕을 하든 칭찬을 하든 할 수 있다.
민주적일수록 오히려 불만과 비판이 더 많을 수 있는 이유다.
언론도 살아있으니 더욱.
한국의 민주화 정도를 측정하는 나만의 공식이 하나 있다.
검찰의 지저귐이다.
서슬 푸른 군부 독재에는 쥐 죽은 듯이 고요하고,
권위적 정부에서는 가끔 지저귀고,
민주적 정부에서는 여기저기서 봇물 터지듯 짹짹거린다.
정치적 중립이 어떻고, 정의와 공정이 어떻고.
한국을 한동안 비우고 다시 돌아올 때마다,
검사들이 시끄러우면 다른 것 안 봐도,
이번 정부는 많이 민주적인가보다고 생각한다.
병아리의 재잘거림에 봄을 느끼듯,
검사들의 짹짹거림에 민주화를 느낀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검사들의 지저귐과 민주화는 확실히 정비례한다.
그래서 한국의 검사들을 ‘검새’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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