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은 떨어지는데 왜 세상은 더 불안할까?
"리터당 1,500원대입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흩날리는 햇살 좋은 날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주유소의 기름값이 1,500대다. 1,700원대를 훌쩍 넘던 기름값이 어느새 1,500원대라니. 환율은 여전히 높은데 말이다. 안 오르는 게 없는 요즘 기름값이라도 떨어지니 좋으면서도, 무턱대고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어서 아쉽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름값 하락"이란 뉴스를 보고 미소를 지을 것이다. 차 키를 손에 쥔 주부는 주유소 간판을 보고 한시름 놓을 것이고, 택시 운전사는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손님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유가, 세계 경제의 체온계
많은 사람들이 유가를 주유소 가격표 정도로만 생각할지 모른다. 싸면 좋은 거고, 비싸면 짜증나는 것. 하지만 유가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유가는 세계 경제의 체온계다. 세계 경제가 빠르게 움직이고 교류하면서 뜨거워질수록 유가는 오른다. 반대로 멈춰가고 냉각될수록 유가는 떨어진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 사실은 더욱 명백해진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08년 금융위기 직전, 유가는 배럴당 147달러까지 치솟았다가 위기가 터지자 30달러로 폭락했다.
요즘 유가가 떨어지는 이유는 무얼까?
그건 세계 경제가 식어가고 있다는 증거일지 모른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세계 경제가 식어갈지 모른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석유 트레이더들은 미래의 그림자를 가장 먼저 본다.
2025년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단호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관세 조치를 발표했다. 동맹이고 적국이고 가리지 않는다. 미국은 유럽에 20%, 일본에 24%, 한국에는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중국에는 20%의 관세를 추가했다가 다시 34%의 관세를 매겼다. 이에 중국이 보복관세를 예고하자 추가 50%의 관세를 더 매기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중국이 보복 관세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총 104%의 추가관세가 부과된다.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고, 세계 무역 흐름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경기가 침체되면 생산과 물류가 줄어들고, 당연히 에너지도 덜 필요해진다. 공장이 쉬고, 트럭이 멈추고, 배가 덜 떠나니까. 기름값이 떨어지는 건, '세상이 덜 움직이고 있다'는 침묵의 경고다. 아니 세상이 덜 움직일 것이라는 강력한 예측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주유소에서 지갑은 가벼워질지 몰라도, 세계 경제의 움직임은 점점 더 무거워진다.
과거의 교훈, 1930년대의 망령
역사는 항상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 각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높은 관세 장벽을 세웠다. 미국의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악명 높았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세계 무역은 66%나 감소했고, 대공황은 더욱 깊어졌다. 세계대공황 당시 떠돌던 관세, 보호무역, 고립주의 등의 단어들이 다시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연결에서 단절로, 패러다임의 전환
이후 세계는 '연결'이 답이라고 믿었다. 특히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였다. 국경은 희미해지고, 자본과 상품,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오갔다. 그때 석유는 이 모든 것의 윤활유였다.
하지만 지금은 '단절'과 '자국 중심'이 돌아오고 있다. 세상은 지금 다시 벽을 쌓고 있다. 유가가 내려가는 건, 세계 경제의 심장 박동이 약해지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시내 한복판, 붐비는 카페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택시들이 줄지어 지나가고,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움직인다. 겉으로 보기엔 모든 것이 평화롭다. 하지만 이 모든 움직임 뒤에는 보이지 않는 흐름이 있다.
이번 유가 하락의 이면에는 세계 경제의 재편이 암시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유가 하락은 종종 경기 침체의 전조였다. 아울러 최근 유가 하락은 세계 경제의 재편을 암시한다. 자유무역에서 보호무역으로의. 아울러 유가의 하락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늦추어 기후변화에 악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
주유소 간판의 숫자는 계속 내려가고 있다. 그 뒤에 있는 이야기는 복잡하고 때로는 불안하다. 하지만 위기는 언제나 기회와 함께 온다. 새로운 세계 질서 속에서 우리는 더 현명하게, 더 회복력 있게 대응해야 한다. 지금 기름값의 하락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지만, 그것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 세계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그 메시지를 읽고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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