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를 옮긴 어제부터 계속 비다. 오늘도 하루 종일 비가 오더니 오후 늦게야 멎기 시작했다. 여전히 짙은 먹구름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바뇨스의 좁은 하늘을 덥고 있기 때문에 언제 다시 내릴지 모른다.
답답한 도미토리 방이 아니라 좋은 풍광을 가진 넓은 방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만실의 좁은 도미토리 방에서 비 때문에 나가지도 못하고 있으려면 짜증이 많이 났었을 것이다. 가격은 겨우 2배인데 삶의 질이 확 달라진다.
비가 잠시 멎은 사이를 노려 먹을거리를 사러 나왔다.
중앙시장 쪽으로 걸어 내려가는데 중심거리에 각기 크리스마스 분장을 한 어린이들의 긴 퍼레이드가 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 탄생에 얽인 사람들-동방박사들, 마리아 등-뿐만 아니라 천사, 산타 복장 등을 한 행렬이었다.
쿠엥카에서 받던 크리스마드 퍼레이드에 비해서는 많이 조촐하지만 크리스마스를 즐기며, 기뻐하는 어린 아이들의 변장한 모습들이 귀엽고 예쁘다.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아서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이 행렬을 뒤에서 따라가 봤다. 이들이 가는 곳은 성당이었다. 성당 안에서는 이미 사람들이 어린이 크리스마스 행렬을 기다리고 있었다. 행렬의 어린이들이 모두 성당 안으로 들어가자 예배가 시작되었다.
문득, 어린 시절 교회 다닐 때 크리스마스 대예배에서 아기 예수의 탄생에 대한 연극을 했던 기억이 났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너무 타락한 것 같아서 씁쓸한 생각도 든다. 아니면 너무 타락한 한국 교회를 다녀서 그럴 지도 모른다.
잠시 예배를 참관했다. 아는 멜로디의 성가들이 나온다. 크리스마스 성가들이다. 흥겹다. 이곳 성당의 예배는 한국의 그것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한 마디로 매우 자유롭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다고나 할까. 강아지를 데리고 예배 보기도 하고, 예배 보는 중간 중간 아이들이 뛰어 다니기도 한다. 시끄럽게 떠들지 않는 한 굳이 막지는 않는다.
예배가 본격적으로 시작할 무렵 성당을 나섰다. 교회 앞에 빨간 관광 열차가 들어서고 있었다. 들어올 때 간단한 무대가 있었는데 그곳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열차에는 발레복을 입은 어린이 발레리나들이 타고 있었다. 이곳에서 크리스마스 공연을 하는 모양이다.
좌석 바로 뒤에 서서 구경을 했다. 발레를 하는 어린 아이들부터 소녀들까지의 무용 공연이었다. 물론 크리스마스 공연이다. 여러 가지 공연이 펼쳐지는데 재미있다.
작은 마을이 온통 크리스마스에 젖어 들었다. 겨울이 있는 한국에서는 오히려 요새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기가 어려운데, 적도의 나라 에콰도르는 이미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페루나 에콰도르는 이미 한 달 전부터 크리스마스 시즌에 들어갔었다.
비가 멎은 잠깐 사이 먹을거리를 사러 나왔는데 말 그대로 그 ‘잠깐 사이’에 여러 가지 크리스마스 공연을 봤다. 작은 도시 전체가 크리스마스 파티에 빠져들었다.
크리스마스를 이곳에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래도 키토보다는 작은 도시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곳 숙소도 저렴하고 좋고.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이곳 성당에서 예배를 드려볼 생각이다. 오늘 벌써 잠시 예배를 드렸으니 인사는 드린 셈이다.
참, 성당이니 예배가 아니라 미사라 해야 하는가.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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