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서스(Caucasus, 캅카스)의 와인 이야기
흐리고 비도 내린다.
산책을 하러 나갔다가 비가 내리는 바람에 다시 들어온다.
엘리베이터 요금만 날렸다. 이 레지던스 건물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때 요금을 낸다. 체크인할 때 방 카드와 엘리베이터 카드를 따로 주길래 그냥 방과 엘리베이터 카드를 따로 사용하나보다고만 생각했다. 호텔 등에서는 보안을 위해서 엘리베이터에 방 카드를 대야만 이용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곳은 보안을 위해서 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요금을 내기 위해서 사용한다. 카드에 돈을 충전하고 한번 사용할 때마다 0.2라리씩 나간다. 우리 돈으로는 백 원 조금 안 되는 돈이다.
어느 날 내 카드로 아무리 찍어도 작동이 안 되었다. 가끔 내 카드를 가지고 씨름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대신 찍어주곤 해서 올라가곤 했다. 아무래도 카드가 이상한 것 같아서 리셉션에 갔더니 돈을 충전하란다. 엘리베이터 이용료를 내는 것은 이곳이 처음이다. 원래 조지아가 그런 것인지 이 레지던스만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큰돈은 아니더라도 돈이 나가니 나가는 것이 조심스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방에서 비 내리는 흑해를 바라보며 와인을 마신다.
글도 쓰면서.
코카서스(캅카스)는 와인이 싸고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 오면서 와인을 열심히 마시겠노라 마음먹었는데 지금까지 거의 매일 한 병씩은 마신 것 같다. 세 나라 모두에서 와인을 열심히 마신 것은 아니다. 아르메니아(Armenia)에서는 와인보다는 맥주를 많이 마셨다.
흥미로운 사실이 와인이 괜찮은 나라는 맥주가 맛이 없고 맥주가 맛이 있는 나라는 와인이 맛이 없었다. 조지아와 함께 와인 종주국을 다투고 있는 아르메니아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아르메니아 와인은, 맛을 잘 모르는 나에게도 그리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가격도 세 나라 중에서 가장 비싼 것 같고. 아르메니아에서는 오히려 맥주가 맛이 있었다. 가격도 저렴하지만 맥주 맛의 깊이가 남달랐다. 나만의 의견은 아니다. 예레반(Yerevan) 숙소에 있던 다른 외국 친구들도 아르메니아 맥주가 나쁘지 않다고들 했다.
반면에 아제르바이잔(Azerbaijan)과 조지아의 맥주는 정말 맛이 없다.
특히 아제르바이잔 맥주. 지금까지 가장 맛이 없었던 맥주가 인도의 킹피셔(Kingfisher)였는데 거의 그것과 상벽을 이룬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조지아 맥주도 맛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조지아 친구들도 자기들 맥주 마시지 말란다.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은 와인이 괜찮았다.
가격도 저렴하고.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우리 돈으로 2천 원대 와인도 꽤 있었다. 개인적으로 맛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아제르바이잔과 조지아에서는 매일 거의 한 병씩 와인을 마시고 있다.
바투미(Batumi)에 와서는 내 방이 있고 음식도 해먹을 수가 있으니 매일 한 병 이상씩 마신다. 쓰레기통에 쌓이는 빈 와인 병을 보면 뿌듯해지기까지 하다. 특히 여기서는 방에서 글을 쓰는 시간이 많은데, 글을 쓰면서 커피 마시듯 와인을 마신다. 전망도 좋다보니 와인을 물먹듯 한다. 보통은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는 편이라 덕분에 커피가 많이 줄었다.
그래도 와인은 와인이다.
맥주의 2배 이상의 알코올 도수다 보니 많이 마시는 말에는 아침에 숙취가 올라오기도 한다. 속도 좀 쓰리고. 한국에서 와인을 그다지 찾아먹는 편이 아닌지라 코카서스에 와서 마신 와인이 내 평생 마신 와인보다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요즘은 좀 물린 것 같기도 하고, 매일 마셨더니 간이 좀 부은 것 같기도 하다.
비싼 와인을 마시는 것은 아니다. 맛도 잘 모르고. 예전에 잘 아는 와인전문가가 싼 것 중에도 좋은 와인이 많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서 가난한 배낭여행자의 신분에 맞춰서 주로 싼 것들을 마신다. 우리 돈 5천 원 미만으로. 와인이 좋은 나라는 싼 와인도 기본을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싼 와인이 맛이 없는 나라라면 기본적으로 와인이 좋은 나라는 아니다.
아무튼 한국에 가면 한동안은 와인 생각이 나지 않을 것 같다.
그보다 먼저 여기에 오래 있다가는 알콜 중독자가 되겠다.
by 경계넘기.
'세계 일주 여행 > 조지아(Georgia)' 카테고리의 다른 글
D+143, 조지아 바투미 12: 바투미(Batumi) 시가지 산책 그리고 붉은 와인과 함께 하는 흑해의 일몰(20190406) (0) | 2020.08.11 |
---|---|
D+142, 조지아 바투미 11: 평화로운 길 위의 동물들(20190405) (0) | 2020.08.10 |
D+140, 조지아 바투미 9: 예스러움과 현대적임이 공존하는 바투미(Batumi) 시가지 산책(20190403) (0) | 2020.08.10 |
D+139, 조지아 바투미 8: 비 내리는 흑해(Black Sea)(20190402) (0) | 2020.08.10 |
D+138, 조지아 바투미 7: 쉬었다 가기 좋은 바투미(Batumi)(20190401) (0) | 2020.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