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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 레 16: 판공 초 그리고 메락 마을(20170706)

경계넘기 2017. 11. 13. 12:09

 

2017. 7. 6. . 맑음. "라다크 레 16: 판공 초 그리고 메락 마을"

 

판공 초(Pangong Tso) 가는 날. 730분에 숙소를 나와서 하얀 히말라야 여행사로 갔다. 거기서 모여서 830분에 출발하기로 했다. 우리 일행은 여대생 3명과 20대 말의 처자 1. 여자만 네 명. 어떻게 보면 여자들만 있으니 좋은 팀 같지만 여행 다니다 보면 안다. 여자가 많으면 오히려 불편한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이른 820분에 우리 차는 출발했다. 오늘 하얀 히말라야 여행사에서만 판공 초로 세 팀이 출발한다고 한다. 같은 올뷰(All View)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있는 친구도 오늘 다른 팀으로 판공 초에 가는데 시간을 당겨서 출발했다고 한다. 판공 초 가는 길이 많이 막힌다는 정보를 듣고 그랬단다. 이런 정보 공유 좀 해주지. 하긴 서로 잘 모르는 사이다. 숙소에 한국인들만 있다 보니 모두 알고 지내기는 힘들다. , 한참 후에 하얀 히말라야 한국인 사장님으로부터 들었는데 그 팀이 타고 가던 차가 고장이 나서 다른 차로 대체하느라 훨씬 늦어졌다고 한다. 세상일이란 정말 한치 앞도 알 수 없다!

 

지난번 누브라 밸리(Nubra Valley)에 갈 때에는 북쪽을 향해서 갔는데 이번에는 남쪽을 향해서 간다. 20분 정도 남쪽으로 달리던 차는 우회전을 하면서 이내 동쪽으로 계속 달리기 시작한다. 맞다. 판공 초는 레에서 동남쪽에 있다. 그렇게 한참 평지를 달리던 차는 계곡에 접어들더니 서서히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레에서 세 시간을 달린 차는 정확히 1120분에 판공 초 가는 길의 가장 높은 고개인 창 라(Chang La)에 도착했다. 창 라는 5,320m의 높이로 차가 다니는 도로 중에서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곳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차가 다니는 도로 중에서 가장 높은 1, 2, 3위 고개가 모두 라다크에 있다. 지난번 루브라 밸리(Nubra Valley)에 갈 때 통과했던 까르둥 라(Kardung La)5,606m로 첫 번째다. 다음은 마날리(Manali)에서 레(Leh)에 오는 도중에 있는 타그랑 라(Tanglang La)5,300m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 신중하신 분이라면 금방 눈치를 채셨을 것이다. 오타가 아니다. 높이대로 한다면 실제 창 라가 두 번째로 높은 고개여야 한다. 그럼에도 계속 타르랑 라가 두 번째로, 창 라가 세 번째로 불리고 있는 데에는 일종의 입에 붙어 버린 습관 때문으로 보인다. 아마도 초기 높이가 잘못 측정되었던 것이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일종의 관습처럼 굳어버린 것 같다.

 

이미 고산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창 라에 내려서 걸어도 크게 어려움은 없다. 조금 숨이 차다는 것 정도. 듣기로는 창 라를 전후해서 차가 많이 밀린다고 했는데, 다행히도 오늘은 크게 막히지 않는다.

 

 

 

 

 

창 라를 올라오는 길은 마치 거대한 산 하나를 S자로 오른다고 할 수 있다. 지난번 루브라 밸리 갈 때도 레에서 까르둥 라 넘기까지는 계속 S자로 올라가기만 했다. 이곳도 마찬가지. 그렇다 보니 레에서 고개까지의 길은 풍경의 변화가 거의 없어서 심심하다. 나무 한 뿌리 없는 황량한 산길을 그냥 오른다고 보면 된다.

 

 

 

 

 

고개를 넘어서자 내려가는 쪽에서 차가 조금 밀리기 시작했다. 얼음 녹은 물로 인해서 도로가 침수된 곳이 있어서 그렇다. 도로가 얕은 개천이 되어버렸다. 차들은 크게 무리가 없는데 오토바이들은 거의 끌고 넘어야 할 정도다. 그리고 이곳도 군부대가 많아서 때때로 길게 줄지어 서서 지나다니는 군부대 차량과 만났다. 그럴 때마다 양방향의 차들이 서로 교행을 하느라 정체가 생겼다.

 

 

 

 

 

 

그래도 내려가는 길부터는 지루한 풍경이 사라지고 다양한 풍경이 그림처럼 지나친다. 길도 험하긴 하지만 다양하다. 포장길, 비포장길, 초원길, 바위 사이길, 자갈길 등등. 누브라 밸리 가는 길보다 더 흥미로운 것 같다.

 

 

 

 

 

 

 

오후 1시 조금 넘어서 휴게실에서 점심을 했다. 가격이 싸긴 한데 그 가격 이상으로 음식이 엉망이다. 비싸기라도 했으면 차나 한 잔 하고, 아예 음식은 시키지도 않았을 텐데.

 

저 멀리 판공 초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오후 3시 드디어 판공 초 초입에 도착했다. 잠시 내려서 구경을 했는데 생각보다는 감동적이지 않다. 이런 풍경은 처음에는 '' 하지만 조금 있으면 이내 식상해지기 마련. 그래도 이곳은 좀 별로다. 이러려고 이 길을 왔나 싶을 정도로. 우리가 가려는 메락(Merak) 마을은 이곳에서도 한 시간 정도 더 들어간다. 그곳을 기대해보는 수밖에 없다. 이곳은 당일치기 관광객들이 잠시 판공 초의 모습을 보기 위한 곳 같다.

 

 

 

 

 

 

초입에서 30분 정도 시간을 보내고 다시 판공 초 깊숙한 마을인 메락 마을을 향해 출발했다. 거리로는 십여 km 떨어져 있다고 했는데 듣던 대로 길이 아주 험했다. 당연히 비포장도로로 제대로 오프로드다. 길은 호숫가를 따라 달리기 때문에 경관은 좋았고, 호수를 제대로 구경할 수 있다.

 

430분에 메락 마을에 도착했다. 판공초 초입에서 십여 km 떨어진 이곳까지 오는데 한 시간 남짓 걸린 셈이다. 예전에는 이 길이 2시간 가까이 걸렸다고 하니 그나마 좋아진 것이다. 레에서부터 따지면 꼬박 8시간 걸리긴 했는데 쉬지 않고 달린다면 6시간이면 올 수 있을 것이다. 운전기사는 죽어나겠지만. 레에서 겨우 150km 떨어진 이곳에 오는데 8시간 정도 걸렸으니 길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가늠이 될 것이다. 150km 정도면 한국에서 대전 조금 못 미치는 거리다.

 

일행 중에 젊은 처자가 자신이 있던 게하에서 추천받은 게하가 있다고 해서 찾아보니 메락 마을 바로 초입에 홀로 떨어져 있는 민박집이였다. 랄파 홈스테이(Ralpa Homestay). 호수 바로 옆에 있는 호젓하면서도 전망이 아주 좋은 민박집이다. 너무 호젓해서 혼자 오면 조금 무서울 수도. 그 친구 덕분에 좋은 숙소에 머무르게 되었다. 손님은 우리 팀만 있다. 1인당 600루피. 물론 아침과 저녁 포함이다.

   

 

 

 

 

 

여행사에서 추천하는 숙소는 따로 있다.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이 묵는다고 하는데 시설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그곳에는 여행자들로 가득가득 할 게다. 어제 온 팀도 있고, 오늘 온 팀도 있고.

 

짐을 풀자마자 바로 호숫가로 나갔다. 황무지 가운데에 푸른 오하시스 같은 메락 마을을 품은 판공 초의 모습은 확실히 초입에서 보던 그 모습보다 훨씬 더 운치가 있고 예뻤다. 왜 한국인 여행자들이 악착같이 메락 마을을 들어오려고 하는지를 알겠다. 대부분의 인도 여행객들과 외국인 여행객들은 호수 초입인 루쿵(Lukung) 마을이나 루쿵에서 6km 정도 떨어진 스망픽(Spangmik) 마을에서 묵는다고 한다. 메락에 오는 길이 외길이라 이들 마을들을 모두 거치게 되는데 이곳에 견줄 바가 못 된다.

 

메락 마을을 마을 초입에 있는 우리 숙소에서 바라보면 좌측으로는 푸르른 호수가 우측으로는 설산이 둘러쳐 있어서 색다른 멋을 품어 냈다. 물론 호수 너머 반대편에도 설산이 보인다. 누브라 밸리의 투르툭(Turtuk)이 아름답지만 좁은 계곡에 있어서 좀 답답한 느낌이 있었다면 메락은 아기자기한 섬세함은 좀 떨어지지만 풍광의 장쾌함과 시원함이 있다. 호숫가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은 한 눈에 보인다. 앞은 호수 뒤는 설산. 제대로 배산임수(背山臨水).

 

 

 

 

 

 

 

 

 

메락 마을은 판공 초에서도 외국인이 들어갈 수 있는 가장 최단의 마을이다. 누브라 밸리의 투르툭이 북단의 맨 끝 마을이었다면 이곳은 동단의 맨 끝 마을인 셈이다.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면 중국이다. 사실 판공초도 3분의 2는 중국에 속해 있다. 중국 쪽에서 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인도 판공 초, 중국 판공 초 하니까 이 호수의 진짜 주인을 잊게 만든다. 판공 초는 티베트인들의 삶의 터전이다. 지금은 잠시 인도와 중국으로 갈라져 있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저 푸르른 판공 초에는 라다크인 즉, 티베트인들의 독립과 분단의 비애가 서려 있는 것 같다.

 

 

 

 

 

 

 

 

8월 말인가 한국에 들어와 조금 있으려니 이곳 판공 초에서 인도군과 중국군이 만나서 난투극을 벌였다는 뉴스를 봤다. 바로 이곳 메락 마을에서 조금 더 들어간 곳이리라. 인도에서 라다크의 동쪽 반대편에 있는, 그러니까 인도 북동부의 중국과 인도 그리고 부탄 국경이 접하는 시킴(Kikkm) 주 도카라(Doklam, 중국명 둥랑(洞朗)) 지역에서는 우리가 인도에 있는 내내 인도군과 중국군이 일촉즉발의 대치상황을 지속하고 있었다. 잠무 카슈미르 주의 국경분쟁과 마찬가지로 불확실한 국경에서 비롯된 군사대치다. 그 여파가 멀리 떨어진 이곳 라다크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뉴스 영상에서는 수십 명의 양국군이 뒤엉켜 주먹질과 돌팔매질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규군끼리 주먹질과 돌팔매질이라 우습기도 하지만 총기를 사용하면 바로 전쟁이다.

 

근데, 왜 남의 땅에서 지들이 싸우는데!

 

내가 지금,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는 분쟁지역에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 한가운데 있는 메락 마을은 너무도 평화로워 보이지만. 하긴 요즘 한반도보다 더 불안한 지역이 어디 있겠나마는. 여기든 한반도든 문화적, 자연적 경계가 아니라 정치적, 인위적 경계는 필경 문제를 일으키게 마련인가 보다.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왔다. 아쉽게도 환한 보름달이라 별은 많이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달밤의 운치 또한 색다르다. 마을과 호수 전체를 환하게 비치는 달빛 그리고 그 달빛에 반짝이는 설산의 모습이 또 다른 풍광을 전해 준다. 호수 위에는 달빛길이 나있다. 숙소 앞 의자에 앉아서 음악을 들으며 달빛 가득 찬 하늘과 설산, 그리고 호수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달이 가깝다. 손 뻗으면 잡힐 것처럼.

 

어둠이 깔린 4천 미터 대 고지의 쌀쌀함 속에서도 환한 달을 보고 있자니 따스함이 느껴진다. 차가운 설산의 하얀빛을 마치 따스한 노란 달빛이 머금어 버리는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서러움도 밀려온다. 호수를 비추는 달빛이 마치 이 땅과 이 호수의 진정한 주인인 티베트인들의 한을 어루만지고 있는 듯싶어서일까? 아니다, 원래 달빛이 그런 것일 게다. 사람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그런 묘한 힘 말이다. 그것도 사람을 늑대로 만든다는 보름달 아닌가.

 

이곳에서 겨우 1박을 한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 이곳에서도 3, 4일 정도 묵었으면 싶다. 아니 그 이상일 수도. 책 몇 권 가져오면.

 

생각을 못했다. 판공 초는 4,200m의 고지에 있다. 3,500m 높이의 레에서도 고산증을 걱정한 판에 4,200m의 판공 초에서는 당연히 고산증을 걱정했다. 특히, 고산증을 극심하게 경험한 형은 누브라 밸리와 다르게 그곳에서 며칠을 보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안 했다. 메락 마을까지 당일치기는 불가능한지라 그냥 하루를 버텨보자는 심정이었다. 나 역시 4m 넘는 고지에서 하루 이상 체류하는 것이 처음이어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웬걸 나는 물론이고 형도 전혀 고산증을 느끼지 않고 있다.

 

혹시 판공초가 기수호(汽水湖)라 그런가? 기수호란 해수와 담수가 섞여 있는 호수를 말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소금물 호수란 것이다. 실제 호수 물을 조금 입에 대보면 살짝 짠 맛이 느껴진다. 4,200m 고지의 호수가 짠 호수라. 그런데 사실 히말라야 산맥 자체가 원래 바다였던 땅이 융기한 것이다. 6천만 년 전 인도 대륙판과 아시아 대륙판이 충돌하면서 히말라야가 생긴 것이니 그때 융기되었던 바다의 일부분에 지속적으로 담수가 유입되면서 지금의 판공 초가 된 것이다. 바닷물의 염기가 고산증에 즉효가 있을지도 모른다. 원래 바다는 해발 고도가 0m니까, 그 기운이 남아 있을지도.

 

그나저나 참 신기하다. 육지의 지붕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이 6천만 년 전에는 바다였다는 사실이. 역시 극과 극은 통하는 법이다.

 

 

 

 

내 옆에 앉아 있는 우리 여대생 3명도 고산증을 잊고 마치 MT에 온 것처럼 이런 저런 이야기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다. 레에서는 물론이고 판공 초 오는 길에도 고산증으로 고생했다는 2명의 대학생들도 막상 메락 마을에 도착하니 말짱해졌단다. 한 친구는 판공 초의 시원한 물에 발 담그자마자 고산증이 날라 갔다고 한다. 거참! 역시 대학교 1, 2학년 학생이라 밝다. 그리고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다니 나름 생각들도 깊다.

 

그렇게 음악을 들으며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다 10시 훌쩍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는 애들을 뒤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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