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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 (라다크, 라자스탄, 델리)

라다크 레 13: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시장, 바자르(20170703)

경계넘기 2017. 11. 9. 13:00

 

2017. 7. 3. . 흐리다 갬.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시장, 바자르"

 

새벽에 형과 함께 산책을 나갔다. 예전에 묵었던 스폰보(SPONBO) 게스트하우스 바로 위에 있는 한국사원 대청보사까지 갔다가 내려오면서 샨티 스튜파(Shanti Stupa)를 도로로 이용해서 올라갔다. 거의 2시간 가까이 되는 산책길이다. 우리가 묵고 있는 올뷰(All View) 게하에서 대청보사에 이르는 길은 라다크 현지인들이 주로 사는 마을길이라 조용하고 산뜻하다. 인도인들과 달리 거리도 깨끗하고. 이름 아침의 싱그러움과 상쾌함이 더해져 꽤 긴 거리임에도 힘든 줄을 모른다.

 

 

 

 

 

 

샨트 스튜파는 일본이 지어준 거대한 탑이다. 올라가보면 넓은 터 한가운데에 미얀마식의 거대한 탑이 세워져 있다. 남걀 체모 곰파(Namgyal Tsemo Gompa) 맞은편 비슷한 높이의 언덕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거기서 바라보는 조망 역시 훌륭하다. 남쪽으로 레 공항의 활주로도 보인다. 골짜기 사이로 사라지는 비행기의 모습들도 보이고. 레 공항이 공군비행장을 겸한다고 하더니만 이착륙하는 공군기들도 간혹 보인다. 내려올 때는 계단을 통해 내려와서 창스파(Changspa) 거리로 나왔다.

 

 

 

 

 

올뷰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좋다고 추천해준 히든노스 카페(Hidden North Cafe)에서 아침을 했다. 아침 세트(Breakfast Set)을 먹었는데 커피 포함해서 130루피다. 서양식인데 맛도 괜찮지만 양은 감동이다. 감자볶음도 듬뿍. 여행 중에 저렴하고 괜찮은 식당이나 카페 하나 만나면 기분이 좋다. 또 다른 베이스캠프가 생긴 기분이랄까. 뭐 먹으러 가야 하나 고민할 필요도 없고. 중간에 지나가던 송 선배가 보여서 불러서 같이 차 한 잔.

 

숙소로 돌아와서 숙소 정원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옆집 꼬마 둘이 들어와서 방해를 한다. 남매인 듯싶은데 사는 곳은 델리라고 한다. 아버지는 컴퓨터 일을 하시고. 외국인이 반가운지 개구쟁이 이 친구들은 묻지도 않은 것들을 내 옆에서 주절주절 풀어댄다. 아마도 방학이라 할아버지 계신 곳에 놀러 왔나 싶다. 델리에서 좋은 학교를 다니나 보다.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것을 보면. 인도 특유의 어감이 없어서 오히려 나에겐 편한 영어다. 인도가 처음이라 그런지 인도인들의 영어 발음에 익숙하지가 않다. 게다가 엄청 빨리들 말한다. 하여튼 이 꼬마들 덕분에 글을 쓸 수가 없다.

 

꼬마들을 보냈더니 이번에는 신양이 숙소의 친구들을 데려와서 술파티를 벌이려 한다. 여기 더 있다가는 꼼짝없이 낮술을 마실 것 같아서 얼른 방으로 내뺐다.

 

한낮의 무료함이 서서히 밀려오기 시작한다. 무료함.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무뎌지는 단어. 대학 때만 해도 많이 쓰던 단어였는데. 바빠서일 것이다. 쉬는 날에도 머리 한 편에서 떠나지 않는 일의 무게감이 무료함이란 단어를 내 삶에서 점점 낯설게 만든 것 같다. 무료함은 번잡한 도시와 직장 생활에서 스트레스로 대치되었을 것이다. 무료함보다는 피곤함으로.

 

다시 찾아온 무료함. 기분 좋다. 그래서 일게다. 정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술파티를 피해 온 이유가. 이 평온한 무료함을 깨고 싶지 않아서. 내가 레에 온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고.

 

누가 왜 레에 왔냐고 물어보면 좀 당황스럽다. 왜냐고? 무료해지고 싶어서 왔다고 하면 이상하자나! 무언가 엄청 설명을 해야 될 것 같고.

 

한낮의 해가 지나고 햇살이 따가움이 잦아들 오후 4시 무렵 올드(old) 레와 시장을 구경하러 홀로 숙소를 나섰다. 카메라 하나 들고. 흥미로운 것은 레의 시장은 남북으로 끊어질 듯 이어지면서 매우 길게 형성되어져 있다는 것이다.

 

일단 메인 바자르(Main Bazaar)는 서울의 명동과 같은 현대적이고 세련된 상점들이 있는 상점거리라고 보면 된다. 나 같은 여행객들에게는 그다지 흥미가 없는 곳이다. 하지만 메인 바자르의 동쪽 뒤편으로 들어서면 좁은 골목길을 따라 긴 전통시장이 나있다. 메인 바자르와 골목 시장이 건물 한 줄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는 것이다. 마치 종로의 피맛골처럼 말이다. 야채 등을 파는 시장은 아니고 옷, 이불, 카페, 식기 등등 여러 가지 물건을 파는 상점가다.

 

 

 

 

 

 

골목 시장은 메인 바자르를 따라 쭉 이어지다가 바자르가 끝나는 남단에서 큰 길과 만나고 이 길 초입에 줄 지어 있는 정육점 가게들로 이어진다. 정육점 가게들이 대로변에 밀집해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정육점 가게들이 끝나면 일반 상점들로 연결된다.

 

 

 

 

 

그런데 정육점 가게들이 끝나는 곳에 나 있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다시 대로변을 따라 나 있는 골목 시장이 나온다. 여기에는 작은 식당들, 짜파티 굽는 곳, 철물상 등이 있다.

 

 

 

 

 

 

 

여기가 끝나면 다시 더 큰 시장으로 연결되는데 남단의 시장은 제법 규모가 있다.

 

 

 

 

 

 

여행의 재미는 이런 시장에 있다. 현지인들의 진솔한 삶을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바자르(Bazaar)란 말 자체가 시장을 의미하는 옛 페르시아 말로 알고 있다. 상업, 특히 중계무역에 능통했던 아랍 즉, 이슬람 인들의 문화와 정서가 배어 있는 어휘다. 아랍이 중계무역에 강했다는 것은 아랍의 시장 즉, 바자르에 다양한 상품만큼이나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가 공존했음을 의미한다. 이곳 레에서도 마찬가지다. 레의 바자르 역시 불교도인 라다크인들과 무슬림인 이슬람인들의 상품과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예전에 중국 실크로드 길을 답사한 적이 있다. 시안(西安)을 출발한 실크로드는 란저우(蘭州)를 지나 본격적인 사막 길의 시작인 둔황(敦煌)에 들어간다. 이 둔황에서부터 거대한 타클라마칸 사막이 시작된다. 사막의 중앙을 관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막을 우회하는 두 개의 실크로드 길이 여기에서 갈라진다. 하나는 타클라마칸 사막 남단 길로 사막과 쿤룬산맥 사이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북단 길로 사막과 톈산산맥 사이의 길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사이에 두고 갈라졌던 두 실크로드가 다시 만나는 곳이 있다. 그곳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도시로 타클라마칸 사막이 끝나고 파미르 고원이 막 시작되는 카슈가르(Kashgar, 喀什)라는 도시다. 중국 내 이슬람 소수민족인 위구르인들의 도시다. 위구르인들은 중앙아시아 계열의 무슬림이다. 이곳에서 중국 실크로드는 끝난다. 이 말은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온 중국과 동아시아 상인들 그리고 파미르 고원을 넘어온 아랍과 중앙아시아 상인들이 여기서 만났다는 의미다. 당연히 전 세계 물산들이 모이는 거대한 국제시장인 바자르가 생겼다. 거의 2천 년 전부터.

 

지금도 그때의 흔적이 남아서 일요일마다 시장이 열린다. 일요 시장 또는 일요 바자르로 불리는 이 시장은 지금도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그리 크지 않은 도시에 어쩜 이리 큰 바자르가 열릴 수 있는지 놀라울 정도. 넓은 공간 여기저기에서 파는 상품은 하루 종일 둘러보아도 다 보기가 힘들 정도다. 더욱이 다양한 옷차림을 한 소수민족들의 인파는 그 옛날 다양한 인종과문화가 공존했던 실크로드 도시의 바자르를 자연스럽게 연상케 한다.

 

시장은 그래서 좋다. 현지인들의 삶의 모습을 엿볼 수도 있지만, 특히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어울려 살아가는 곳에서 시장은 그 공존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제대로 공존하지 못하는 곳에서는 시장 자체가 따로 있다. 대표적인 곳이 중국 실크로드, 즉 신장위구르자치구(新疆维吾尔自治区)에 있는 도시들이다. 카슈가르는 물론이고 실크로드 도상의 도시들인 투루판(Turfan), 우루무치(Wulumuchi), 호탄(Hotan) 등이 그곳이다. 한족의 시장과 여타 소수민족들의 시장이 따로 있다. 서로들 다른 시장에는 일절 가질 않는다. 역사 깊은 바자르들은 다 소수민족들의 시장임은 물론이다.

 

이 지역에서 한족과 여타 소수민족들이 물과 기름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랜 시간 자연스럽게 융화된 것이 아니라, 중국이 이 지역의 통합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한족을 인위적으로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를 등에 업은 한족이 이 지역에서 정치와 경제를 지배함은 물론이다. 카슈미르나 호탄의 옛 도시를 높은 곳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레와 마찬가지로 황토빛의 슬럼화된 구시가지와 현대적인 건물들의 신시가지가 뚜렷이 구분된다. 이들 도시들이 레와 다른 점은 구시가지에는 소수민족들이, 신시가지에는 한족이 주로 살고 있다는 것. 사는 곳이 구분되니 시장도 구분될 수밖에. 당연히 그들의 관계도 물과 기름일 수밖에 없다.

 

최근 불교국가인 미얀마에서 미얀마 군부에 의해 자행된 무슬림 소수민족 로힝야족 학살이 국제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이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수지 여사가 이 일로 연일 곤욕을 치루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의 근본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영국의 식민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미얀마를 식민지화한 영국이 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로힝야족들을 포함한 벵골망의 소수민족들을 이주시키고 이들을 이용해서 다수인 미얀마인들을 통치하려고 한 것이다. 일본이 만주에서 소수인 조선인을 이용해서 다수인 중국인을 통치하려고 한 것과 같은 분할통치의 전형이다. 특히 1942년에는 영국이 로힝야족을 무장시켜 당시 독립을 주장하던 미얀마인들을 학살하도록 했다. 이러니 두 민족이 앙숙일 수밖에 없다. 영국이야 단물 다 빼먹고 손 털고 나가면 그만이겠지만 영국이 만들어 논 불행의 고통은 이곳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철저히 이들의 몫이다.

 

중국이 그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싶어 안타깝다. 중국 정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이곳 신장이나 티베트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현지 소수민족들의 분신이나 한족에 대한 테러들이 점점 빈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닌 게 아닌 것 같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소수민족 분들과 만났을 때 되도록 중국어를 안 쓰는 것이 좋다. 현지 소수민족의 언어를 안다면 가장 좋겠지만 아니라면 중국어를 알더라도 그냥 영어를 쓰시길. 아니면 보디랭귀지를 하시던지. 한족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이 지역에서 괜히 중국어 썼다간 한족으로 오인 받아서 어떤 봉변을 받을지도 모른다. 사진 한 장을 찍어도 손사래를 치는 모습이나 고개 돌린 모습만 찍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족이 아니라 외국인인 것을 알면, 특히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면 으레 그 사람들 특유의 넉살과 유모, 그리고 친절이 나온다. 한족일 줄 알고 처음에는 사진 찍지 말라고 정색을 하면서 손사래를 치던 사람들이 미소를 지어보이며 먼저 포즈를 잡아준다. 내 경우는 일부러 가방에 태극기가 그려진 배지를 달고 다녔다. 당연히 중국어를 조금 할 줄 알면서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전혀 모르는 척 했고.

 

이방의 여행객들에게도 가슴 아픈 현실이다. 솔직히 직접 현지에서 소수민족들이 받는 차별과 억압을 눈으로 보게 되면 나도 가끔씩 열불이 치솟는다.

 

그렇다면 레는 어떨까?

 

북인도의 잠무 카슈미르(Jammu Kashmir) () 라다크(Ladakh) 지방의 가장 큰 도시 레(Leh). 세계의 화약과 잠무 카슈미르 주는 동서로 두 개의 성격이 다른 지역으로 나뉜다. 주의 동쪽이 카슈미르(Kashmir), 서쪽이 라다크다. 서쪽 카슈미르의 중심 도시가 스리나가르(Srinagar)고 라다크의 중심 도시가 레인 것이다. 물론 스리나가르는 잠무 카슈미르 주 전체의 주도이기도 하다.

 

카슈미르는 무슬림이 다수를 차지하는 곳으로 파스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덕분에 파키스탄과 국경 분쟁이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아울러 다수를 이루는 무슬림과 소수의 힌두교인 사이에 반목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잠무 카슈미르가 세계의 화약고가 된 배경의 가장 큰 몫을 하는 곳이다. 지금도 테러와 분규가 끊이질 않는 곳이다.

 

반면에 라다크는 티베트 불교를 믿는 티베트인 계열의 라다크인들이 다수를 이루는 곳이다. 여기에 무슬림과 힌두인들이 소수를 이루고 있다. 라다크는 북쪽으로 파키스탄과 동쪽으로는 중국과 북경을 이루고 있다. 이곳도 역시 파키스탄, 중국과의 크고 작은 국경 분쟁은 있었지만 카슈미르 지방과 달리 라다크 지방은 다른 종교나 민족들과의 반목과 갈등이 크게 나타나는 곳은 아니다.

 

레는 작은 도시지만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티베트 불교와 이슬람 그리고 힌두교가 공존하고 있다. 종교에 따라 사람도 다르고, 옷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기름과 물처럼 화학적으로 융합되지 않고 서로 분리 되어 있을까? 아니면 잘 비벼진 비빔밥처럼 잘 섞여 있을까?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솔직히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중국 신장에서 한족과 소수민족, 그리고 카슈미르에서 무슬림과 힌두인은 분명 물과 기름이다. 그런데 여기는 확실히 모르겠다.

 

내가 모르겠다고 하는 이유는 겉으로는 반목과 갈등이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여기에도 분명 구분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시장이 따로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레의 주변지역, 특히 농사짓는 지역에서는 라다크인들이, 시내 중심의 상업지구엔 무슬림들이 상대적으로 많아 보인다. 라다크인들은 농업에, 무슬림들은 상업에 상대적으로 많이 종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누브라 밸리(Nubra Valley) 투르툭(Turtuk)의 무슬림들은 농사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레에서 만큼은 이슬람 사람들이 상업 중심적이고 도시 중심적임은 틀림없이 보인다. 마찬가지로 주변 라다크인들이 주로 살고 있는 동네에서 무슬림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식사를 한 히든노스 카페는 레의 중심도로변에 있다. 아침에 식사를 하면서 보니 도로 맞은편이 등교하는 학생들의 스쿨버스 정류장이다. 다양한 학생들이 서로 다른 교복을 입고 옹기종기 모여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무슬림들만의 학교가 따로 있어 보였다. 초등학생이든 중고등학생이든. 교복도 그리고 타는 스쿨버스도 분명 달랐다. 분명 어려서부터 종교에 따라 사람들이 구분되어 교육받고 자라고 있다.

 

그럼, 힌두교와 이슬람의 종교적 관계는 어떨까?

 

힌두교는 다신교이다. 일반적으로 다신교는 일신교보다 배타성이 약하다고 한다. 그럼 힌두교도 그럴까? 그렇게 쉽게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힌두교는 그 조상의 뿌리를 따진다고 한다. 조상 때부터 믿은 게 아니라면 지금 당장 힌두교를 믿는다고 해서 진정한 힌두인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말은 힌두교와 힌두인이 상당 부분 폐쇄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폐쇄적이니 배타적일 것이고. 마치 유대교과 유대인의 관계처럼 말이다. 그래서 힌두교가 인도 민족주의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하는 것일 것이다.

 

반면에 이슬람은 개종만 하면 모두 무슬림이 된다. 개방적인 종교다. 그 하위에서의 구분은 있겠지만 일단 큰 틀에서는 무슬림이 된다. 이슬람이 세계적인 종교의 하나로 군림할 수 있는 배경이다. 하지만 역시나 이슬람은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유일신 종교다. 다른 신을 섬겨서도,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들과도 같이 해선 안 된다. 배타성이 강한 종교다.

 

결국 이슬람과 기독교의 정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슬람과 힌두교 역시 상당 부분 물과 기름일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레에 있는 주요 종교 구성에서 가장 배타성이 약한 종교가 불교로 보인다. 다신교이니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성이 강하지 않고 불교 자체가 민족 구분의 척도로 작용하는 것도 아니다. 이곳 레에서도 중심지에 기독교 미션 스쿨이 있어서 많은 라다크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다른 종교에 배타적이지 않다는 증거다.

 

그러고 보면 같은 잠무 카슈미르 주면서도 옆의 카슈미르에 비해서 이곳 라다크에서는 종교 분쟁이 거의 없다. 아마 그 이유가 이곳 라다크에서는 티베트 불교가 다수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카슈미르는 힌두교와 이슬람이 격돌하는 곳이다. 세계를 둘러봐도 불교 같은 다신교가성행하는 곳은 종교 분쟁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한국도 그렇고. 앞서 말했듯이 미얀마의 경우는 종교 이전의 역사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시장을 둘러보고 지금 난 메인 바자르의 새로 오픈한 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다. 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낚시에도 포인트가 있겠지만 그 지역을 관찰하는 데에도 포인트가 있다. 가끔씩 난 그런 곳에 앉아서 하염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곤 한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표면적으로 들어나는 종교 분쟁이나 갈등은 없다. 그렇지만 분명 구분은 있다.

티베트인들과 무슬림들이 같이 어울려 다니는 모습은 거의 보기 힘들다. 아이들조차도.

그래서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어제 저녁 먹었던 식당 라이스 볼(RiceBowl)로 갔다.

오늘은 누브라 밸리 갔었던 사람들과 같이 저녁으로 백숙을 먹기로 했다. 어제 오늘 계속 백숙이지만 여전히 맛있다.

 

숙소로 돌아와서 정원에서 늦게까지 책을 보았다. 고산지대라 모기가 없어서 야외에서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다. 앉으면 눕고 싶다고 했나. 모기의 걱정이 없으니 정원에 해먹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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