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7. 9. 일. 맑음. "라다크 레 19: 초 모리리 가는 길"
초 모리리(Tso Moriri) 호수에 가는 날이다. 그런데 새벽부터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설사다. 어제 먹은 것이라고는 장양과 먹은 스파게티와 피자 그리고 맥주 한 병. 그나마 레에서 고급 레스토랑에 속하는 곳인데 이걸 먹고 배탈이라니 좀 그렇다. 그래도 설사는 설사. 그렇게 심하지는 않아도 배에 힘이 없고 컨디션도 그리 좋지 않다.
컨디션이 나쁘다고 해서 같이 가기로 약속한 것을 저버릴 수는 없다. 건강 상태가 아주 나쁘지 않는 한. 아침 7시 30분. 같이 가기로 한 일행들이 숙소 정원에 모여서 간단한 빵과 커피로 아침을 했다. 하지만 커피 외에는 먹을 수가 없다. 입맛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알고 있는 사람들끼리 한 팀을 이루어서 투어를 신청하니 좋은 점이 있다. 그것은 차가 바로 숙소 앞까지 온다는 것. 투어는 강용해에 신청했다. 차가 조금 늦게 왔다. 강용해씨가 직접 와서 차를 챙기고 있다. 몸을 움직이니 컨디션도 조금 살아나는 것 같다. 몸에 조금 힘이 없다는 것 빼고는 그런대로 여행을 즐길 만하다. 다행이다.
이번 투어의 기사는 지미라는 이름을 가진 키가 아주 작은 친구다. 처음에는 아주 성실한지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조금 허당기가 있었다. 덕분에 많이 웃었다.
8시 45분, 드디어 초 모리리 호수를 향해서 출발했다. 레에 와서 가는 세 번째 여행지이다. 누브라 밸리(Nubra Valley), 판공 초(Pangong Tso)에 이어. 이번에는 우리 형제와 함께 송 선배와 신양 이렇게 4명이 간다. 그렇다 보니 차에 여유가 많다. 물론 개인당 여행비는 증가했지만. 처음으로 운전기사 옆 좌석에 앉았다. 사진 찍기에도 좋은 자리. 그런데 이 차는 앞 유리에 굵고 긴 금이 가 있어서 사진에도 금이 보인다. 달리는 차 위에서 찍다보니 달리 방법이 없다.
레 시내를 벗어난 차는 한 동안 황량한 평지를 달리다가 곧 우측으로 제법 큰 강을 끼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눈 녹은 물이라 짙은 회색빛의 강이다. 1시간 정도 달렸을까 차가 곧 깊은 계곡 사이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초 모리리 가는 길은 지금까지 갔던 여행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높은 고개가 없어 천천히 고도를 높이면서 계곡 길을 달리는 데 주변이 너무 아름답다. 길은 계속 옆에 강을 끼고 계곡을 달린다. 산은 물론 모두 민둥 바위산이다. 바위산들로 둘러싸인 계곡 가운데로 강이 흐르고 그 옆으로 도로가 나 있다. 강을 따라 달리다 보니 강 주위로 곳곳에 오하시스처럼 녹지가 펼쳐져 있고, 그 주변에 작은 마을이 곳곳에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나가는 산들도 그 색깔을 달리하고 있다. 바위가 다 같은 바위가 아닌 모양이다. 황토빛 산에서 붉은 산 그리고 자줏빛 산까지 다양하다. 같은 색깔이라도 그 정도와 깊이가 다른 색깔의 스펙트럼이 길게 이어진다.
길의 상태도 세 곳 중에서 가장 좋다. 그러다보니 기분 좋게 달릴 수 있었다. 공사를 하는 곳 빼고는 대부분 포장이 되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포장상태가 잘 보존되고 있다. 루브라 밸리 가는 길이나 판공 초 가는 길도 대체로 포장도로다. 다만 이곳 길들에서는 산사태나 침수 등으로 곳곳이 심하게 파헤쳐져 있었다. 반면에 초 모리리 가는 길은 상대적으로 침수나 산사태가 그리 많이 나지 않는 것 같다.
12시 50분, Chumathang이라는 곳에 도착해서 점심을 했다. 지미가 말하길 온천이 유명한 곳이라 했다. 간단히 식사를 하고 나왔는데 약속된 한 시간이 지나도록 지미가 나타나질 않았다. 다른 차들은 이미 다 떠나고 우리만 남았다. 신양이 찾아다니면서 식사를 한 식당 주인에게도 알아본 모양이다. 식당 주인도 찾아봐 주지만 지미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1시간 반 정도 지나서 나타난 지미를 보고 우리는 빵 터졌다. 이 인간 혼자 온천을 즐기고 온 것이다. 옷도 싹 갈아입고. 함께 찾아주던 식당 주인도 황당해하는 모습이다. 입으로는 미안하다면서도 이 인간 차 한 잔의 여유까지 즐긴다.
오후 2시 25분. 다시 출발. 차는 서서히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주변에는 드디어 유목민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방목된 말과 야크들, 그리고 염소들이 계곡의 녹지를 따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높이를 한참 높여서 평지에 다다르니 곳곳에 염소 떼들이다. 우리 차 앞길을 막기도 한다. 주변에는 점점이 유목민들이 살고 있는 하얀 천막들이 보이고 그 주변에는 돌로 울타리를 친 공간들이 보이는데 아마도 저녁에 염소나 양들을 모아두는 곳으로 보였다. 진정한 유목민들의 생활이다.
타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호수도 나왔다. 설산에 둘러싸인 작은 호수에 맑은 하늘과 짙은 구름이 반영되어 너무 아름답게 보였다. 모두들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확실히 초 모리리 가는 길은 아름답다. 그간의 여행으로 이런 풍경이 식상해졌을 터인데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오가는 길의 풍경만으로도 초 모리리는 그 가치를 충분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초 모리리에 가까워지면서 평지가 이어졌다. 4천m대 고지의 넓은 분지다. 마치 드넓은 평야를 달리는 기분이 든다.
드디어 초 모리리 호수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앞서 봤던 타장 호수와는 그 규모를 비교할 수 없다. 파란 호수에 구름과 설산이 반영되어 몽환적 느낌을 주고 있었다.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들여다보고 있자면 마치 이 몽환적 세상에 빨려들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내가 본 부분만을 말한다면 호수 자체의 멋은 판공초보다 초 모리리가 나은 것 같다.
오후 4시 30분. 드디어 초 모리리 호수의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자체는 판공초의 메락 마을보다는 훨씬 컸다. 개인적 생각이긴 하지만 마을 자체의 풍광은 메락이 조금 더 나은 것 같다. 뭔가 더 목가적이고 평온하다고 할까. 초 모리리의 이 호수 마을은 이미 관광지가 되어버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차에서 내려서 신양과 방을 알아보러 다녔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판공 초보다 가격이 비쌌다. 그렇다고 방 조건이나 전망이 더 좋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로 신양이 흥정을 잘해서 첫날은 한 방에 엑스트라 베드 2개 추가 하고 아침과 저녁 포함해서 2천 루피, 그리고 내일은 두 방해서 2천 2백 루피에 방을 얻었다.
근데 아침에 설사를 하고 4,500m 고산지역에서 방 알아본다고 몇 번 오르락내리락 했더니 고산 증세가 나타났다. 그냥 배탈설사가 도진 것이라 하고 들어 누었다. 당연히 저녁도 건너뛰었다. 4,500m의 초 모리리는 4,200m의 판공 초와 또 달랐다. 그 조금 움직임에도 힘들어지고 숨이 찼다.
확실히 4,500m에서는 나도 고산이 느껴졌다. 속도 메스껍고. 배탈이 도졌다고 했지만 배탈은 아니다. 고산 초기 증세다. 무리하면 절대 안 된다. 그렇게 배탈이 도졌다고 핑계를 대고 나는 침대에 누워서 초 모리리 도착 첫날을 보냈다. 확실히 힘들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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