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7. 10. 월. 맑음. "초 모리리, 고산증의 공포"
아침에 일어났다. 어제보다는 확실히 상태가 나아진 것 같다. 그래도 일어나 잠깐 걸어 보니 힘들다. 산책 나갈 엄두가 안 난다. 마을이라도 둘러보자는 심산으로 송 선배와 아침 산책을 나갔다. 게스트 하우스나 호텔이 많이 들어서기 시작은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 마을은 가축을 기르는 것이 주업인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염소. 집들마다 염소 우리가 있다. 낮에는 목동들이 방목을 위해 이들을 들로 산으로 이끌고 나간다.
조그마한 마을 산책인데도 조금 내려갔다 올라오는 길에 순간 메스꺼움이 확 느껴졌다. 숨도 거칠어지고. 쉬어 가자고 밀크티 한 잔을 마셨는데 순간 멀미기가 느껴졌다. 고산 때문인지 설사 때문인지, 아니면 고산 + 멀미 때문인지 당최 모르겠지만 확실히 걷는 게 힘들다. 특히 오르막길은. 얼른 숙소로 돌아와서 누웠다. 당연히 이번에도 아침 식사는 건너뛰었다.
아침식사 후 형도 고산증세가 나타나는 듯 드러누워서 일어나질 못한다.
한참을 누워 있다가 다시 컨디션이 좋아진 듯하여 형만 남겨두고 모두를 호숫가에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초 모리리 호수는 의외의 공포스런 반전이 있다. 뭐라 그럴까, 백 미터 미녀라고 할까.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 만족했으면 한다. 가까이 가면 너무 큰 불행이 따른다.
호수 주변 풀밭은 보기에는 마냥 푸르기만 했는데 막상 그 속으로 걸어보니 풀들의 억셈이 장난 아니다.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나선 신양은 그 풀들에 찔리고 베어서 기겁을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것은 공포의 모기떼. 호숫가에 거의 다가갈 무렵 갑자기 우리는 덩실덩실 춤을 추듯 하면서 필사적으로 호숫가를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호숫물을 드려다 보려는 순간 갑자기 수십, 수백의 검은 모기떼들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반바지를 입어서 살이 들어난 곳에 시커멓게 모기떼들이 달라붙어서 이것을 떼어내면서 정신없이 달렸다. 잘 떼어내지지가 않아서 거의 맨살을 두드리면서 뛰었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일게다. 정말 한 50여 미터를 정신없이 달린 것 같다. 4,500m 고지에서 전력 질주라니. 호숫물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초 모리리 호수는 확실히 판공 초와는 달랐다. 판공 초는 호수 주변이 모래사장으로 된 곳도 있고 풀 가도 있으면서 다가가 물에 담가 볼 수도 있었는데 초 모리리 호수가는 약간의 늪지처럼 작은 물웅덩이들이 많이 있었다. 아마도 이곳에 모기떼들이 서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초 모리리 호수는 그냥 멀리서 바라만 보길 바란다. 아니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중무장을 하고 가던지. 하지만 초 모리리 호숫가에서 바라보는 마을의 풍경은 정말 예쁘다.
돌아와서는 다시 시체 놀이. 이제는 씩씩하던 신양마저도 고산 증세를 느끼는 모양이다. 4,500m 고지에서 전력 질주를 한 후유증이다. 그러고 보니 송 선배 빼고는 모두 고산증세를 느끼고 있다. 사실 나는 딱히 고산증세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속이 좀 불편하긴 하지만 머리가 아프거나 하지는 않다. 하지만 나도 좀 심하게 움직이면 바로 고산 증세가 오는 것은 분명하다. 좀 쉬면 곧 나아지곤 하지만, 나 역시 초 모리리의 고산 증세에서 예외가 아님은 분명하다. 더 이상 돌아다니거나 움직일 엄두가 안 난다.
하루 종일 모두들 누워만 있었다. 저녁도 송 선배만 갔다. 4,500m의 고산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것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나 역시 그렇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머리가 어지럽고 메스꺼움을 느낀다.
초 모리리를 2박 3일로 잡은 것은 아무래도 4,200m 판공 초에 대한 형의 자신감에서 나왔으리라. 판공 초에서는 거의 어떤 고산 증세도 느끼질 않았다. 거의 레와 비슷했다고나 할까. 그런데 단 300여 미터 높아진 초 모리리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뻗었다. 300m의 차이가 이리도 큰 것인지. 초 모리리는 1박만 했어야 했는데.
저녁에는 나만 혼자 새로 추가된 방에서 잤다. 원래는 여자들 방이었는데 춥다고 해서 나만 가서 자기로 했다. 다들 고산 증세가 있어서 따뜻한 방에서 잔다고 한다. 나는 심하게 움직이지만 않으면 고산 증세가 없는 터라 내가 가서 자기로 한 것이다. 덕분에 이번 여행 처음으로 독방에서 잤다. 하지만 나도 저녁에 가끔은 숨이 잘 안 쉬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그렇게 초 모리리 고산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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