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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074, 말레이시아 페낭 2-2: 페낭의 다문화 1, 역사적 배경 (20190127)

경계넘기 2021. 6. 28. 16:58

 

페낭(Penang)의 다문화 1, 역사적 배경

 

 

페낭은 참 독특하다.

 

기독교 성당이 눈에 보이는가 싶으면 몇 걸음 안가서 불교 사원이 나오고, 그 불교 사원에서 고개를 돌리면 맞은편에 힌두 사원이 보인다. 힌두 사원의 그 현란한 조각을 등지고 좀 내려가면 이번엔 이슬람의 웅장한 모스크가 눈앞에 나타난다.

 

 

 

어디 그뿐이랴. 차이나타운(Chinatown)이 나와서 걷다보면 어느 틈엔가 인도 상가와 식당들이 밀집한 리틀 인디아(Little India)가 나오고 그곳을 지났다 싶으면 유럽풍의 석조 건물들이 거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보면 문득문득 마치 내가 순간 이동을 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중국에 있다가 갑자기 인도로, 그리고 유럽으로.

 

 

 

내가 있는 곳은 페낭의 중심 도시인 조지타운(Gorge Town)이다.

 

이 작은 시가지에 유럽, 중국, 인도 그리고 말레이의 문화들이 뒤섞여 있어서 도시 전체가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페낭의 조지타운이 다문화적 특성을 보이는 이유는 도시의 역사적 배경에 있다. 조지타운은 그 이름이 말해주듯 영국이 건설한 도시다. 1786년 페낭섬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한 영국이 이곳에 식민 도시를 만들었는데 그게 조지타운이다.

 

 

 

페낭을 세계 지도에서 찾아보면 그 지정학적 중요성을 쉽게 알 수 있다.

 

페낭은 말라카 해협(Strait of Malacca) 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말라카 해협은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길이 800km의 해협으로 예로부터 중국과 인도를 연결하는 중요 물길이었다.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물동량이 지나가는 해협 중의 하나이자 중동에서 동아시아로 오는 대부분의 원유가 통과한다는 점에서 말라카 해협의 전략적 가치는 더 이상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말라카 해협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세 개의 주요 도시들로 연결된다.

 

가장 서쪽이자 북단인 페낭의 조지타운, 그 중간이 말레이 반도의 멜라카(Melaka), 그리고 가장 동쪽이자 남단인 싱가포르가 그 도시들이다.

 

 

 

말라카 해협은 예로부터 인도의 영향권에 있다가 한동안 아랍으로 넘어갔고, 16세기부터는 유럽으로 통제권이 넘어갔다. 아시아, 그 중에서도 중국과의 무역을 갈구했던 유럽 각국이 유럽에서 중국으로 가는 최단 뱃길인 이 곳 말라카 해협의 중요성을 간과할 리가 없었다.

 

말라카 해협을 장악한 최초의 유럽 국가는 바닷길을 개척한 포르투갈. 포르투갈은 해협의 가장 중심에 있는 멜라카에 기지를 설치하면서 이 해협을 통제했다. 포르투갈에 이어 네덜란드가 1641년 멜라카를 차지하면서 해협을 장악했다가 1826년에 영국에 의해 밀려났다. 이렇듯 말라카 해협은 세계사에서 패권의 변화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었다.

 

말라카 해협을 장악하기 위해 영국이 그 전초 기지로 만든 도시가 페낭의 조지타운이다. 1786년 조지타운을 건설한 영국은 이곳을 기지로 서서히 동진하여 말라카와 싱가포르를 장악하면서 해협 전체의 패권을 거머쥐었다. 그러니 조지타운은 일반의 아시아 도시들과 비교하면 그렇게 오래된 도시라고 할 수는 없다.

 

영국이 도시를 건설했으니 당연히 초기에는 유럽식 건물이 주를 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내륙에 가까운 조지타운의 북서 해안가 쪽으로는 하얀색 서양식 건물들이 병풍처럼 조지타운을 감싸고 있다.

 

 

 

 

페낭은 현재 말레이시아의 다문화적 특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도시이기도 하다.

 

 

 

조지타운 건설을 주도한 것은 영국의 동인도 회사(East India Company). 다들 알다시피 동인도 회사는 회사라기보다는 아시아 공략의 전위 부대에 가까웠다. 실제로 회사 휘하에 부대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 부대가 조지타운 건설과 수비에 동원되었다. 당시 동인도 회사의 부대는 장교들만 영국인들이었고, 사병들은 대부분 세포이(Sepoy)라고 불리는 인도인 용병들이었다. 따라서 동인도 회사와 함께 자연스럽게 인도인들이 페낭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후 조지타운이 무역항으로 번성하기 시작하자 말레이 반도에 살던 중국인들도 이곳으로 건너오면서 중국인들도 조지타운 구성의 중요한 일원이 되었다.

 

조지타운에는 자연스럽게 영국을 위시한 유럽인, 인도인, 중국인 그리고 원래의 원주민인 말레이인들이 공존하면서 자신들의 마을을 형성하였고, 그들과 함께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가 들어오면서 기독교 성당, 이슬람 사원, 힌두 사원, 불교 사원이 세워지면서 오늘과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요즘말로 하면 당시의 조지타운은 일종의 국제 도시 또는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적 도시인 셈이다. 그만큼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어떻게 공존하면서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장소라고나 할까.

 

이러한 페낭의 특성은 말레이시아의 다문화적 특성을 압축해놓은 듯하다.

 

말레이시아는 대표적인 다민족 국가 중의 하나다. 다수 민족인 말레이인이 전 인구의 67%를 차지하고, 여기에 중국계가 25%, 인도계가 7%을 차지한다. 헌법 상 이슬람 국가를 천명하는 말레이시아지만 종교적 자유를 허용해서 인종만큼 종교도 다채롭다. 인구의 61%가 이슬람교를 믿고, 20%는 불교, 기독교가 6%, 힌두교가 1.3% 정도를 차지한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