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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 (라다크, 라자스탄, 델리)

라다크 레 3-2: 레의 자태, 그리고 고산증을 넘기다(20170623)

경계넘기 2017. 10. 31. 11:00

 

 

2017. 6. 23. . 맑다가 소나기. "라다크 레 3: 레의 자태, 그리고 고산증을 넘기다" -2

 

아침밥을 먹으려고 하니 형은 좀 힘들겠다고 한다. 내가 먹고 나서 간단한 빵과 쨈 좀 사다달라고 한다. 아침을 준다 해서 내려가니 빵과 차란다. 형이 원하던 거다. 아픈 사람이 있어서 아침을 방으로 가져가겠다고 하니 가져다주신다고 한다. 어제는 딸인 베드마만 있었는데 아침에는 아저씨, 아주머니가 모두 나오시면서 인사와 함께 형의 안부를 묻는다. 아마 딸에게 아픈 사람이 있다는 것을 들었나 보다.

 

방에서 아침을 기다리다가 진한 감동을 받았다. 집안 식구 모두, 아저씨, 아주머니, 딸이 각각 음식을 들고 방으로 들어오셔서 직접 형의 병세를 챙기신다. 아침밥도 진수성찬. 구운 식빵과 란처럼 보이는 전통 빵, 버터와 쨈, 그리고 짙은 죽 같은 것을 가져다 주셨다. 들어간 곡물은 모르겠는데 여러 가지가 들어간 짙은 죽이라기보다는 반죽에 가깝다. 생강 맛과 함께 조금 달짝지근하다. 거기다 보온병에 담아 오신 홍차까지.

 

아주머니와 딸이 내려가신 다음에도 아저씨는 한참 동안을 식사하는 우리 곁에 서서 여러 가지를 물으셨다. 아저씨는 주업이 농사라고 하셨다. 게스트하우스는 여름 몇 개월만 할 수 있는 관계로 부업이란다. 아저씨, 아주머니 모두 순박한 이웃 같다. 다만 아저씨는 농사를 짓는 분까지는 않다. 그 풍채에서 풍겨지는 느낌이. 어제 오느라 고생을 해서 그렇지 덕분에 너무 좋은 게스트하우스에 묵는다. 이틀 밖에 묵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해발 3,500미터는 나도 처음이다. 물론 잠시 지나친 적은 있었지만. 여전히 계단을 오르내리면 숨이 차고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낀다. 예전 중국 윈난성의 중뎬과 그리 크게 차이나는 것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점은 인도의 레(Leh)와 중뎬(中甸)의 풍경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자연적 풍경과 함께 문화적 풍경도.

 

중뎬도 작은 도시가 눈 덮인 설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레나 중뎬 모두 설산에 둘러싸인 분지라는 것인데 규모만으로 보면 중뎬이 훨씬 넓다. 도시 자체의 규모도 훨씬 크다. 분지의 면적이 넓으니 그만큼 둘러싼 설산도 많다. 레 자체가 좁은 분지인지라 북쪽으로는 하나, 남쪽으로는 서너 개의 설산 봉우리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동서는 메마른 갈색의 바위산들에 면해 있다. 반면에 중뎬에서는 셀 수 없는 설산 봉우리들이 사방에 병풍 치듯 멀리 펼쳐져 있다. 4백여 개의 봉우리가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장삿속이 빠른 중국인들이 붙인 지명이 샹그릴라(Shangri La)’.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턴(James Hilton)1933년 발표한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son)>에서 지상의 낙원을 의미하는 용어로 썼다. 중뎬이 바로 그 소설 속의 이상향이라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2001년 기존의 중뎬이라는 이름 대신 샹그릴라로 공식 명칭을 바꿨다. 이곳을 관광지역으로 만들려는 상업적 의지가 다분히 묻어 있다. 그런데 중뎬의 원래 이름은 겔탕(Gyeltang)이다. 현지인들은 주로 중뎬이나 겔탕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외국여행객들도 모두 중뎬이나 겔탕을 사용한다. , 샹그릴라는 중국 정부나 한족 관광객들만 쓰겠지.

 

레와 중뎬은 모두 역사적으로 티베트인들의 땅이다. 모두 옛 티베트 왕국의 영토. 현재도 티베트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중뎬이 비록 행정구역상으로는 윈난성에 속해 있지만 실제 거주민들의 다수는 티베트인이다. 레는 인도에 속한 티베트이고 중뎬은 중국에 속한 티베트인 것이다. 나라 잃은 티베트 민족의 역사적 비애가 묻어 있다. 당연히 종교도 티베트 불교다. 레에 남걀 곰파(Namgyal Gompa)가 있다면, 중뎬에는 승첼링 곰파(松贊林寺)가 있다. 그러니 문화적 풍경도 비슷할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티베트가 중국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라다크도 인도가 아니다. 인도 라다크나 중국 티베트 모두 인도인이나 한족보다 티베인들이 더 많다. 문화 역시도 완전히 다르다. 라다크 지역에서 이슬람은 있지만 힌두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인도를 아는 사람들은 라다크 지역 다녀와서 인도 갔다 왔다고 하지 말라고 한다. 인도와 라다크는 그 기본부터 완전히 다르다고. 사실 그래서 라다크에 온 것이기도 하다. 시끌시끌한 인도였다면 이곳에 안 왔을 게다. 50일 간의 여행이지만 그 시간은 대부분 이곳 라다크와 라다크가 속해 있는 잠무 카슈미르(Jammu Kashmir) 지역에서 보낼 예정이다. 인도는 딱 서울 들어갈 때 델리에서만 며칠 있을 생각이다.

 

정오가 막 지났을 무렵인가 쉬고 있는데 어디선가 종교 경전을 읊는 듯한 누군가의 낭랑한 목소리가 온 마을에 울려 퍼진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게 이슬람교에서 신도들에게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Azan)’이란다. 이슬람은 하루에 다섯 번 기도를 한다고 하는데, 그때마다 이렇게 이슬람 사원에서 아잔을 외친다고 한다. 나로서는 처음 듣는 아잔이다.

 

불현듯 미얀마 껄로(Kalaw)에서 인레(Inle) 호수까지 23일 트래킹을 할 때가 생각났다. 일행 중에 혼자 온 이란 친구가 있었는데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기도를 하는 것이다. 23일 내내. 어쩌다 이 친구와 친해졌는데 그 친구가 기도할 때마다 내가 항상 그 친구의 짐을 지키곤 했다. 당연히 미얀마는 불교국가라 아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미얀마와 이슬람을 생각하다 보니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민족이라는 미얀마의 소수민족인 로힝야(Rohingya)족이 생각난다. 불교국가인 미얀마에서 이슬람을 믿는다는 이유로 엄청난 차별과 핍박을 받고 있는 소수민족이다. 미얀마는 이들에게 국적도 부여하지 않고 지속적인 탄압을 하고 있다. 최근(2017. 8)에도 로힝야 무장단체(ARSA)의 경찰초소 습격에 대한 보복으로 미얀마군이 로힝야족 민간인들에 대한 무차별 사격이 일어나서 국제적 이슈가 되고 있다. 로힝야족 탄압에 눈감고 있는 아웅산 수지의 노벨 평화상을 박탈해야 한다는 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사랑과 평화를 강조하는 종교의 이중성인 것인데, 내가 있는 이곳 잠무 카슈미르야 말로 종교로 인한 분쟁이 지속되고 있는 세계 최고의 화약고 중 하나다. 외교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이 지역은 여행금지 바로 전 단계인 철수권고 지역이다. 여행자 보험이 절대 안 되는 곳이다. 그 중에서도 라다크 서쪽 파키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카슈미르 지역은 이슬람 독립 세력과 힌두 인도와의 분쟁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곳이다. 단순히 국내 분쟁을 넘어서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분쟁으로 비화하고 하는 곳이다. 그나마 라타크에서는 티베트 불교와 이슬람이 잘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라다크도 동쪽으로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서 중국과의 국경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차피 여기나 거기나 티베트 지역이기 때문에 종교적 갈등은 아니다.

 

오후 3시쯤 산책을 하러 길을 나섰다. 형도 아침보다는 많이 나아진 것 같다. 계속 누워있는 것 보다는 가벼운 산책이 도움이 된다. 숙소를 나서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20분 정도, 짧게 내렸지만 빗줄기가 제법 굵다. 이런 메마른 곳에서 생각지도 않은 비라니 나쁘지 않다. 라다크는 연평균 강수량이 84mm에 불과한 초건조 지역. 그런 곳에서 오자마자 비를 맞다니 기분이 좋다. 그래도 비가 굵어지니 일단 나무 아래로 들어가 피했다.

 

 

 

 

시내로 들어가자마자 환전을 했다. 지난번 델리 공항에서 50달러 환전할 때는 2,700루피이었는데 여기서 100달러를 환전하니 6,300루피이다. 50달러 소액이라 환율이 조금 나빴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곳 환율이 공항보다는 훨씬 낫다. 대략 1루피에 18.3원인 셈이니 일반적 20원보다도 좋다. 일단 달러로 환전해가지고 온 이상 미국 달러의 강세를 희망해본다.

 

시내 중심도로는 차들로 그야말로 생지옥을 방불케 한다. 사람이 걸어 다니기도 힘들다. 게다가 차들의 매연은 어찌나 심한지 고산증이 도지는 것 같다. 시내로는 도저히 못나올 것 같다. 자그맣고 조용한 시골도시를 생각했는데 웬걸 전혀 아니다. 여름 성수기에 접어들면서 육로로 올라온 여행차량들이 몰리고 있는 것이리라. 라다크 레가 여름 4개월 정도만 열리는 곳이니. 그래도 좁은 길에 몰리는 차량들로 인해서 걷는 것 자체가 힘들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시내 중심가에 가니 메인 바자르(Main Bazaar)라는 곳이 있다. 레의 명동과 같은 일종의 상업 중심 거리라고 할 수 있다. 차가 다니지 못하게 되어 있어서 살 것 같다. 메인 바자르는 다양한 상점들이 연이어 있는 그저 일반적인 쇼핑거리다. 흥미가 날 이유가 없다. 바자르가 끝나는 어귀 2층에 있는 티베트 음식점에서 간단히 티베트 국수를 먹었다. 이곳 식당은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로컬식당이었다. 국수 한 접시에 100루피이다. 저렴하다. 맛도 나쁘지 않고. 특히 국수에 담아 나온 만두가 튼실하다. 그런데 소화가 잘 되질 않는다. 먹는 것은 계속 먹는데 고산에 적응한다고 거의 움직이질 않으니 소화도 잘 되지 않는 모양이다.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에서는 웬일인지 와이파이가 거의 되질 않는다. 와이파이가 되는 곳인데도 말이다. 올라오는 길에 커피도 마실 겸 카페에 들려서 와이파이를 했다. 되긴 되는데 겨우 카톡 정도만 된다. 여기에서 국제전화가 먹통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군사지역이라 일부러 막는단다. 한동안 내 전화기 탓만 했다. 카톡으로 친구에게 부탁해서 어머니께 대신 전화를 드리도록 했다. 어머니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친구에게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는 카톡이 왔다. 걱정을 무척이나 하셨을 텐데 다행이다. 어느 정보에도 이곳이 군사지역이라 국제전화 로밍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누가 보면 이곳이 오지인지 알겠다. 와이파이를 위해서 들어온 카페이지만 너무 비싸고 맛이 없다. 망고 쉐이크는 대체 무슨 맛인지를 모르겠다.

 

 

 

 

오후 6시를 훌쩍 넘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숙소 몇 군데를 들려서 알아봤는데 괜찮은 곳은 이미 찼고, 방이 있는 곳은 너무 열악했다. 그런데도 기본 천 루피부터 시작이다. 우리 게하가 얼마나 훌륭한지 다시금 느낀다. 꽤 돌아다니고도 숙소를 확정하지 못했다. 방 구한다고 이리저리 돌아다녀서 그런지 조금 힘들다. 그래도 어제와 같지는 않은 듯. 이미 형도 많이 나아 있다.

 

저녁 8시 반에 혹시나 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주인아주머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르셨다. 13. 어제와 반찬이 다르다. 오늘은 형도 동참해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올라와서 옥상에서 밤하늘의 별을 봤다. 주변의 불빛이 있음에도 서울에서 보기 힘든 장관이다. 형은 아직 은하수는 보이질 않는다고 툴툴댄다. 작지만 그래도 레는 도시라 그런가 싶다. 주변 집들의 조명이 별을 보는 하늘에는 강하게 느껴지나 보다. 방에 들어와서 잠을 청하는데 갑자기 레 전체가 정전이 되었다. 아까 별을 볼 때나 정전이 되지. 다시 나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차피 레의 정전은 다반사라고 하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