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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 수확 이야기 3: 농사일은 하는 게 아니라는 이유를 알겠다 (20241013)

경계넘기 2025. 1. 28. 06:35

 

 

농사일은 하는 게 아니라는 이유를 알겠다

 

 

"노가다를 하면 했지 농사일은 절대 안한다. 돈도 안 되고, 몸만 버린다"

 

청주 하이닉스에서 건설일을 할 때 건설일(노가다) 하시던 분들이 하나 같이 했던 말이다. 이분들 중에는 당연히 농촌 출신들도 많았는데, 출신에 상관없이 모두들 그랬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해보니 실감이 확 난다. 왜 농촌에 일손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지도 여실히 알겠다. 

 

감밭이 이렇게 가파른지 몰랐다. 

 

아침에 감밭을 처음 보고 깜짝 놀랐다. 가파른 산에 그냥 감나무를 심은 형국이다. 감밭도 엄청 넓다. 감밭 정상부터 작업을 한다고 해서 감밭 정상까지 걸어 올라간다. 정상 밭까지 올라가는데만 15분 이상 걸린다. 정상에 서니 숨이 찬다. 과수원 안의 길은 트럭이 다닐 수 있도록 넓은 감밭에 S자로 만들어졌다. 그나마 경사가 완만하다는 말이다. 감밭 안으로 들어가면 경사가 장난 아니다. 거칠고 경사진 산비탈에 만든 과수원이라 과수들 간의 간격도 불규칙하고 나무 사이 길들도 엉망이다. 

 

예전에 가봤던 창원의 감밭은 분명 평지였다. 뿐만 아니라 감 나무도 질서 있게 심어져 있었고, 나무와 나무 사이의 길도 잘 정돈되어 있었다. 감 과수원은 본래 평지에 하나보다 싶었다. 그래서 그저께 감밭의 경사가 좀 있다는 형수의 말에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냥 평지보다 경사가 살짝 있는가 보다 싶었다. 하지만 막상 와서 보니 이곳은 흡사 유격 훈령장 분위기다. 아니, 내가 군 생활하던 부대의 유격장보다 훨씬 더 가파르다. 

 

감밭을 보자마자 "농사일은 몸만 상한다"는 말이 머리를 친다. "다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감밭을 보면서 생뚱맞게 유격장 생각이 든 이유이기도 하다. 힘들기도 힘들겠지만 정말 다치기 딱 좋은 환경이다. 안 다치는 게 더 이상한 환경이다. 

 

 

 

 

감밭 맨 정상에서 농장주가 내가 해야할 일을 설명해준다. 

 

내가 하는 일은 단감을 따는 일이 아니다. 딴 단감을 나르는 일이다. 감을 따는 일은 주로 여자들이 하고, 나르는 일은 주로 남자들이 한다. 그만큼 힘이 든다는 의미다. 감 따시는 분들은 감 주머니를 메고 다니며 딴 감을 주머니에 담는다. 주머니에 감이 차면 감 주머니를 그 자리에 그냥 두면 된다. 그 감 주머니들을 길가에 둔 감 상자까지 날라서 담는 일이 바로 감 나르는 남자들이 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들 감 상자(콘테이너)들을 운반기인 뽈뽈이에 싣고 운반해서 다시 트럭에 싣고 내리는 일까지 해야한다.   

 

감 주머니와 감 상자(콘테이너)의 무게가 장난 아니다.

 

단감 주머니 하나가 가득 차면 대략 5~7kg 정도 되려나. 비탈길을 왔다갔다 하는데 시간과 힘이 드니 하나만 달랑 들지는 않는다. 보통 3~4개 정도 양쪽 어깨에 나눠 메고 옮기는데 대충 20~25kg 안팎이 되리라 싶다. 때론 감 주머니가 많아지면 양쪽 어깨에 2개씩 메고 손에도 한, 두개 들기도 한다. 이때의 무게는 25~30kg은 되리라 싶다. 이걸 발바닥 쿠션이라고는 전혀 없는 장화를 신고 경사진 곳에서 계속 날라야 하니 힘도 힘이지만, 무릎과 발바닥이 엄청 아프다.

 

감을 담아 옮기는 노란 플라스틱의 감 상자. 이걸 콘테이너라 부른다. 콘테이너에 단감이 가득 차면 대략 무게가 30kg 정도 나간다고 한다. 이걸 들어서 트럭에 싣고 내려야 하는데 허리 나가기 딱 좋다. 건설일에서는 이 정도 무게가 나가는 물건을 한 사람이 들면 안 된다. 무조건 2인 이상이 들어야 한다. 힘 자랑한다고 혼자 들었다간 안전원에 걸려서 바로 경고 먹는다. 

 

 

 

 

감나무 가지에 머리를 찧는 일은 덤이다.

 

감을 따시는 분들은 4분인데 나르는 사람은 한 명이다. 처음에는 그냥저냥 할만한데 이게 좀 지나면 점점 감 주머니가 밀리기 시작한다. 감 따시는 분들도 워밍업이 끝나면서 제 속도가 나시는 게다. 여기에 더해 따시는 분들이 좀 모여서 따시면 좋을련만 시간이 지나면 이곳저곳으로 흩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면 경사진 산비탈 이곳저곳에 감 주머니가 널린다. 그걸 날라야 하니 산비탈 이곳저곳을 뛰어다녀야 한다.

 

정신없이 다니다보면 감나무 가지에 머리를 찧는 일이 다반사다. 감나무 가지들이 이리저리 얽혀 있기 때문이다. 세게 부딪치거나 가지치기한 밑둥에 부딪치면 제대로 '악' 소리가 난다. 머리를 만져보면 여기저기 혹이다. 안 좋아지는 머리 더 안 좋아지겠다. 나뭇가지에 안 부딪치려고 허리를 숙여서 다니니 감 주머니를 든 허리까지 아파온다. 물건을 들 때 허리를 꼿꼿이 세워야 허리고 무릎이고 안 다치는데 이건 뭐 아작나기 딱 좋은 자세다. 더욱이 가파른 산비탈이고 보니 안 다칠 수가 없는 구조다. 일하는 사람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과수원이다.       

 

잠시 쉬는 시간에 감 따시는 아주머니들의 말이 섬뜻하게 들린다.

 

"삼촌, 힘들제. 그래도 지금은 크고 익은 단감만 솎아따는 거라 양이 많이 안 나와. 나중에 본격적으로 막 따기 들어가면 정말 정신없다. 그때는 감 따는 사람들도 엄청 늘어나" 

 

 

 

 

지금도 사실 쉴 시간도 제대로 없다.

 

감을 따시는 분들은 따로 쉬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도 감을 따시면서 요령껏 쉬신다. 속도를 조절할 수도 있다. 누가 얼마를 따는지 일일히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르는 사람은 일의 진척이 확연히 보인다. 빨간색 감 주머니가 여기저기 널려 있으면 일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니 말이다.

 

부지런히 해서 속도를 맞춘다고 하더라도, 길가에 둔 감 상자를 트럭에 싣는 일을 도와달라고 농장주가 부른다. 남자라곤 농장주와 나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단감이 가득 담긴 감 박스(컨테이너)들을 트럭에 실어주고 줄로 매어주는 것까지 하고 돌아오면 감밭 여기저기에는 감 주머니들로 넘쳐난다. 다시 정신없이 감 주머니를 실어내야 한다. 쉬는 시간이 있어도 감 따시는 분들은 쉴 수 있지만 난 쉴 수가 없다. 얼른 감 주머니를 옮기고 잠시 쉬려하면 다시 일 시작이다.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천근만근이다.

 

첫날이라 아무래도 근육통이 있을 수밖에 없긴 한데 그럼에도 무릎과 허리에 너무 무리가 간다. 거기다 머리까지. 이러다 괜히 허리와 무릎만 아작나는 게 아닐가 싶다. 그래도 노가다 선배님들의 말이 생각나서 안다치려고 나름 엄청 노력했다. 

 

농사일하다 다치면 정말 나만 손해다.  

 

4대보험을 안 드니 산재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농사짓는 분들이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니 치료비와 보상비를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닐 터다. 티 안나게 허리나 무릎 나가는 것은 아마도 치료비조차 받기 힘들 게다.

 

딱 하루만 해봐도 정말이지 노가다가 훨씬 낫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