귬리(Gyumri)의 도시 풍경
귬리(Gyumri)에서 나는 대만 친구들이 가자는 데로 간다. 귬리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전혀 없지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해야하는 홀로 여행자에게 일행이 생기면 가끔 이렇게 모든 걸 맡겨버리고 싶어진다. 대만 친구들이 아주 열심히 일정을 잘 짜서 따라다니기에도 벅찰 정도다. 당일치기 여행인지라 거의 찍땡 수준이다. 간만의 직땡이라 정신이 없다.
친절한 아르메니아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먼저 간 곳은 귬리 박물관.
정확한 이름은 Museum of Architecture and Urban Life of Gyumri. 그대로 해석을 하자니 이름인지 설명문인지 모르겠다. 그냥 귬리 역사 박물관이다.
귬리는 장인의 도시라고 한다. 그만큼 다양한 수공업들이 발전했다 하는데 그곳에 주로 전시된 것들이 바로 각 분야 장인들의 제작 도구와 물건들이다. 목공, 철, 청동, 악세사리 분야에서부터 의류, 모자, 구두 등의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귬리의 수공업이 발전했던 모양이다.
론리 플래닛에 의하면 기원전 4세기부터 귬리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러시아 군대가 주둔하기 시작한 19세기 초부터라고 한다. 당시 귬리는 코카서스(Caucasus)에서 조지아의 트빌리시(Tbilisi), 아제르바이잔의 바쿠(Baku)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시로 오스만 제국, 아시아, 러시아를 잇는 교역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귬리에 다양한 수공업이 발전하고 장인들이 많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도 아르메니아의 두 번째 도시이기만 하지만 그 규모는 예레반에 비교할 수가 없다. 더욱이 귬리는 1988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주요 건물들과 공장들이 많이 붕괴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복구 중이다.
박물관을 구경하고 점심을 했다. 새벽부터 서둘러 오느라 제대로 식사를 못했다. 대만 친구 중에 젊은 친구가 인터넷을 통해서 맛집을 검색해왔다. 찾아간 레스토랑(Kilikia Bistro)의 분위기는 좋은데 여행객이 많지 않은 도시라 메뉴판에 영어나 사진이 전혀 없다. 손짓 발짓으로 힘들게 식사를 주문해서 겨우 먹는다.
세 명이서 음식을 꽤 주문했고, 난 맥주까지 주문했는데도 계산할 때 보니 다 합쳐서 3900드람이다. 우리 돈 만 원. 그런데 예레반의 괜찮은 식당에서라면 한 명분 식사 가격에 불과하다. 맛도 나쁘지 않은데 가격까지 이렇게 착할 수가 없다. 다들 예레반에 며칠 있었던 친구들이라 그 착한 가격에 놀랐다. 점심도 먹었으니 다시 힘을 낸다.
귬리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Vardanants Square에 가면 광장 남쪽에 우뚝 솟은 성당 하나가 있다. Amenaprkich Church라고 하는데, 겉은 복원되었는데 내부는 아직 복원을 못한 듯하다. 교회 앞에 있는, 지진으로 무너져 내린 돔과 잔해들이 그 때의 처참함을 대신 말해 준다.
그 반대편의 광장 북쪽에는 검은색 성당이 하나 있다.
이름이 Cathedral of the Holy Mother of God. 이 성당에서는 마침 결혼식이 있어서 아르메니아 결혼식 풍경과 교회 내부를 편하게 볼 수 있었다. 여행자가 많지 않은 도시라 그런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우리 일행들에게 사진을 더 잘 찍을 수 있도록 자리도 양보해 주고 하객들 중에는 자신들의 사진을 부탁하는 사람들도 있다.
광장을 구경하고 도시 중심에서 좀 떨어져 있는 '검은 요새(Black Fortress)'와 '아르메니아 어머니(Mother Armenia)' 상을 보러 가는 길이다.
거리를 걷는데 운치가 있다. 조용히 산책하면서 시간을 보내기 좋은 도시다.
예레반의 건물들은 밝은 분홍빛 또는 핑크빛의 건물들이 많다. 반면에 귬리는 어두운 분홍빛과 검은 회색빛의 건물들이 많다. 건축자재로 쓰이는 돌의 색깔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레반이 화사한 분위기라면 귬리는 중후하다.
변두리 주택가의 길조차 바둑판인 것을 보니 계획도시다. 길이 바르고 비교적 넓은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보이지 않는다. 19세기 초 러시아 군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라고 하더니만 딱 그래 보인다. 성당이나 유적들도 그 시기의 것이 많다.
도시는 소비에트 연방 시절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아직 개발이 덜 되었기 때문이리라.
19세기 러시아 제국 시대 만들어진 요새는 높은 언덕 위에 위용을 드러낸다. 마치 영화 스타워즈에 나올 법한 거대한 원형 비행체 같은 건물이다. 현재는 공연장과 호텔로 개조한 것으로 보인다. 원형의 실내 가운데 무대가 있어서 언뜻 보면 격투기 경기장으로도 보인다. 원형의 건물 바깥쪽은 호텔방이고 안쪽은 관람석이다. 무척 고급스러워 보이긴 하는데 잘 활용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마침 우리가 갔을 때 광장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던 그 신랑신부가 그곳에서 웨딩 촬영을 하고 있었다. 신랑신부가 모델들 같아서 웨딩 촬영을 하는 것인지 화보를 찍는 것인지 모르겠다. 덕분에 우리도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우리에게 귬리를 추천했던 친구는 이곳에 일주일이나 있었는데도 안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친구는 여태까지 그저 요새로만 알고 있다.
요새도 독특했지만 그곳에서 바라보는 전망도 좋다. 도시 안에서는 몰랐는데 하얀 설산들이 귬리를 둘러싸고 있다.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는 분지다. 그리 높지 않은 언덕임에도 귬리가 평지라 주위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도시가 작아도 걸어만 다녔더니 오후 6시 15분에 출발하는 마지막 기차 시간이 빠듯하다. 서둘러서 내려오느라 반대편 언덕 위의 어머니 상은 올라가지 못하고 눈으로만 구경한다.
대만 친구들 중에서 한 명은 이곳에서 1박을 한다. 이 친구와 헤어져 다른 대만 친구와 함께 역으로 부리나케 걸었다. 중간에 슈퍼에 들려 기차에서 먹을 음식과 맥주 등을 사는 것도 있지 않았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참 유쾌하다. 기차를 타고 있는데 기차 안에서 뭔가를 팔고 다니시는 할머니들이 계셨다. 그런데 이 양반들 외국인인 우리 옆에 앉으셔서 말도 안 통하는데 이것저것 물어보신다. 우리는 뭔 소리인지 몰라 멍해 있는데 주변 현지인들은 웃는다. 나중에는 영어가 되는 아르메니아 청년이 통역을 해준다.
할머님들이 물어보신 것들은 우리가 부부냐? 여자 친구냐, 애가 있냐? 등등 이었다. 앞의 질문에는 통역 전에도 대충 눈치가 그런 것 같아서 둘이 동시에 No를 외치기도 했다.
장사는 안 하시고 얼마나 물어대시는 지. 기차 안의 현지인들도 우리가 당황해하는 모습을 얼마나 열심히 보시는지 아르메니아가 아니라 인도에서 기차를 타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오는 길은 꾸벅꾸벅 졸면서 왔다. 기차가 출발하고 좀 지나서 해가 지기도 했지만 새벽부터 강행군을 했다. 더욱이 왕복 6시간이 넘게 걸리는 길을 당일치기로 다녀오니 피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창밖을 구경하면서 올 때는 몰랐는데, 막상 잠을 자려고 하니 딱딱한 의자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오후 6시 15분에 출발한 기차는 21시 20분에 무사히 예레반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바로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돌아오는 길이 무척이나 멀게 느껴진다.
귬리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있을 것이다. 단순히 볼거리만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귬리는 하루 정도면 충분한 곳으로 다소 심심하고 무료한 도시로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배낭여행자로서, 특히 장기 여행자로서 보면 이곳은 여행자의 베이스캠프 요건을 많이 가지고 있다. 작고 조용한 도시, 걷기 좋은 올드시티, 친절한 사람들, 아름다운 주변 환경, 저렴한 물가, 싸지만 꽤 분위기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 등. 배낭여행자들이 여유를 찾고 쉬어갈 수 있는 그런 곳으로 보인다. 아울러 평온하고 활기찬 일상의 아르메니아를 즐길 수도 있다.
내 경우는 당일치기로 다녀온 것이 못내 후회스러웠다.
원래 계획대로 이곳을 거쳐서 트빌리시로 갔다면 얼마나 묵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곳이다. 멍 때리기 좋은 곳, 그곳이 아르메니아의 귬리로 보인다. 그러니 귬리에 가실 분들은 멍 때리면서 여행의 노독도 풀고, 어딘가를 가야하고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강박감에서 벗어나 간만에 빨래도 하고 늘어지게 낮잠도 자고, 그러다 일어나 음악 들으며 산책도 하고, 분위기 있는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에 책 한 권 읽을 수 있는, 그런 곳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한 가지 더. 꼭 기차를 타고 귬리를 가보기 바란다. 기차에서 보는 풍경도 좋지만 기차 자체가 주는 즐거움도 크다. 우리 세대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옛 기차의 모습도 그렇지만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은 예전에, 지금은 사라져 버린, 경춘선 기차를 타고 춘천에 가거나 MT를 갔던, 그런 추억을 송환시켜 줄지도 모른다. 혼자라도 상관없다. 음악을 들으며 기차 안에 앉아 있노라면 창밖의 이국적 풍경과 기차안의 정겨운 풍경이 딱딱한 의자와 상관없이 편안함과 묘한 흥분을 같이 줄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장담하는데 아르메니아가 혹시 조지아처럼 많은 여행자가 찾아오는 국가가 된다면 귬리는 태국의 치앙마이(Chiang Mai), 라오스의 방비엥(Vang Vieng), 중국의 다리(大理) 등과 같은 배낭여행자의 낙원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요즘 치앙마이나 방비엥, 다리는 더 이상 배낭여행자의 낙원이 아니지만 말이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