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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아르메니아(Armenia)

D+112, 아르메니아 예레반 8-1: 아르메니아 제2의 도시 귬리(Gyumri) 가는 길(20190306)

경계넘기 2020. 7. 31. 16:13

 

 

아르메니아 제2의 도시 귬리(Gyumri)

 

 

Gyumri, 우리말로 귬리 또는 규므리로 읽혀지는데, 현지인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자면 규므리에 더 가까운 것 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귬리로 표기하는 데가 더 많아 보여서 여기서도 그냥 귬리라는 표현을 쓴다.

 

귬리는 아르메니아에서 수도인 예레반(Yerevan) 다음으로 큰 도시다. 숙소에 같이 있는 슬로바키아 친구인 패트릭이 꼭 가보라고 추천했던 곳이다. 특히 기차타고 가는 길이 절경이라고 한다. 원래는 조지아로 들어갈 때 이곳을 거쳐서 가려고 했었는데 어제 저녁에 갑자기 바뀌었다. 같은 도미토리 방에 묵고 있는 두 대만 처자가 같이 가자고 꼬신 것. , 일행과 같이 가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가기로 했다. 대신 당일코스로 다녀오기로 했다.

 

귬리로 가는 기차가 730분에 있다고 했다. 버스로 가면 더 빠르긴 한데 패트릭이 귬리 가는 기차 풍경이 정말 좋다고 한다. 기차로도 3시간 거리라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 대만 친구들이 이미 결정한 것이지만.

 

730분에 가는 기차를 타려니 간만에 새벽부터 서둘러서 기차역으로 가야했다. 대만 친구들도 배낭여행을 많이 하는 친구들인지라 기본적으로 택시 따위는 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촉박해서 지하철역까지 엄청 빨리 걸을 뿐이다.

 

지하철은 단 두 정거장. 늦지 않게 기차역에 도착했는데 문제는 표를 파는 창구가 열려 있지 않다. 시간표를 보니 730분이 아니고 755분에 출발.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시각이 715분인데도 창구가 닫혀 있다. 창구는 740분에야 연다. 기차표는 겨우 1,000드람. 우리 돈으로 2,500. 3시간 기차 여행에 단돈 2,500원이라니 놀랍다.

 

 

 

창구가 일찍 열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기차 안에서도 표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간이역에서는 대부분 열차에 올라와서 표를 구입했다. 마치 시외버스처럼.

 

 

 

기차는 정말이지 정겹다 못해 놀라웠다.

 

많은 기차를 타봤지만 지금까지 내가 타본 기차 중에서 가장 낡았다. 그냥 딱딱한 나무의자고, 아무데나 앉으면 된다. 기차라기보다는 전철에 가깝다고나 할까. 비록 의자가 불편하고 낡았지만 나름 재미있고 정겹다. 다만 창문이 너무 탁해서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무척이나 아쉽다.  

 

 

 

창밖으로 보는 풍경은 좋았다.

 

황량하긴 하지만 멀리 보이는 설산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이국적이다. 기차는 터키와의 국경을 따라 움직였다. 예레반을 떠나자마자 곧 아르메니아인들이 성스런 산으로 여기는 아라랏산(Mt. Ararat)이 손에 잡힐 듯 눈앞에 보인다. 터키 영토에 있는 아라랏산이 눈에 잡힐 듯 보이니 기차가 터키 국경과 무척 가까이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귬리에 가까워졌을 무렵 제법 큰 호수가 보인다.

 

터키와 국경을 가르는 호수다. 이름은 Akhurian Lake. 기차가 바로 호수 옆을 지난다. 호수 건너가 터키 영토다. 기차가 왜 이리 국경과 가까이 달리는지는 모르겠다. 주변의 아르메니아 분들은 거의 영어를 못하니 물어볼 수도 없다.

 

호수 근처를 달릴 때는 아르메니아 유심을 장착한 핸드폰에 로밍 모드가 뜨면서 인터넷이 한동안 불통이 되었다. 아르메니아 유심이 터키 영토로 착각을 한 모양이다. 그만큼 가까이서 달린다.

 

기차 안에서 한 가지 정겨운 일이 있었다. 중간에 나이 많으신 할머니 한 분이 타셨다. 거동도 여의치 않으셔서 바로 입구 쪽에 있던 우리 좌석에 앉았다. 덕분에 그 좌석에 앉아있던 대만 친구 두 명이 뒷좌석으로 옮겨야 했다. 그런데 좌석에 앉으신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다. 마치 가족 중 누군가의 비보를 듣고 급히 가시는 모양새다.

 

 

 

마주 앉아 있던 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는데, 뒷좌석에 앉아 할머니의 모습을 살피던 대만 친구 한 명이 할머니 옆 자리에 앉아서 할머니를 보듬어 드리기 시작했다. 휴지로 눈물도 닦아드리고, 할머니 손도 잡아들이고, 할머니 하시는 말씀을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정성껏 응대도 하고. 가지고 있던 과자도 손에 쥐어 드린다.  

 

 

 

바로 우리 옆 좌석에는 아르메니아 아주머니 두 분이 타고 계셨다.

 

외국 젊은 처자들의 그런 모습이 예쁘셨는지 머리핀을 선물로 주시면서 직접 머리도 다듬어서 묶어 주신다. 아침 일찍 서둘러 나오느라 대만 처자들의 머리가 거의 산발이긴 했다. 당신들 자리에 친구들을 불러서 손짓발짓 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신다. 마음이 통하면 모든 게 된다고 영어가 거의 안 되는 상황에서도 서로들 정겹게 이야기를 나눈다. 보고 있자면 훈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나중에는 아주머니들이 할머니도 챙기신다. 아마도 할머니께 도움을 주실려 하시다가 먼저 다가간 외국 처자들의 하는 짓이 예쁘고 기특해서 좀 지켜보신 모양이다. 

 

 

 

오전 755분에 정확히 출발한 기차는 115분에 귬리역에 도착했다. 대략 3시간 10분 정도 걸렸다. 좌석은 조금 불편했지만 풍경도 좋았고, 사람들의 인상도 좋았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배려해 주시려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

 

 

 

아주머니 한 분은 기차에 내려서도 우리를 챙겨주셨다.

 

일부러 택시를 타고 우리가 가려는 곳까지 데려다 주셨다. 아주머니 가시는 길도 아니었다. 택시비라도 내려했지만 틈을 주지 않는다. 황공할 정도로 친절을 베풀어주시니 오히려 우리가 당황하고 죄송할 정도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깊은 정이 느껴지는 모습이다. 지금까지 여행을 하면서도 이런 정도의 친절은 처음이다. 대만 친구들의 모습이 내가 봐도 기특하기는 하다. 덕분에 나도 도움을 받고.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