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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아르메니아(Armenia)

D+111, 아르메니아 예레반 7: 예레반의 한 미술관(Martiros Saryan House-Museum) 그리고 허물어진 성(Erebuni Fortress)(20190305)

경계넘기 2020. 7. 30. 12:27

 

 

예레반의 한 미술관(Martiros Saryan House-Museum) 그리고 허물어진 성(Erebuni Fortress)

 

 

아침을 먹고 있는데 슬로바키아 친구인 패트릭이 오늘 어디 갈 예정이냐고 묻는다.

 

코카서스(Caucasus)에 와서 아침에 일어나자 하는 버릇이 생겼다. 하늘을 살피는 일이다. 날씨가 하도 변덕스럽고 흐린 날이 많아서 그 날의 일정은 그날 아침의 날씨를 보고 결정한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늘을 봤다. 흐리지만 비는 올 것 같지 않다.

 

시내 구경도 어지간히 했고, 슬슬 예레반(Yerevan) 주변 지역을 둘러볼 시기인지라 세반 호수(Lake Sevan)를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패트릭이 날씨가 흐려서 호수 전망이 별로 일 터이니 자기랑 예레반 남쪽에 있는 성에나 가자고 한다. 성에서 보는 예레반 시가지와 주위의 경치가 좋다고 열심히 꼬신다. 패트릭의 말에도 일리가 있을 뿐더러, 그곳도 시내 중심에서 떨어진 곳이라 나의 일정과 딱히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마르티로스 사리안 미술관
(Martiros Saryan House-Museum)

 

 

요새를 가기 전에 패트릭이 숙소 근처에 있는 미술관 하나 들려가자고 한다. 오후에 들어서는 날씨가 좀 더 좋아질 것 같다고 요새는 그때 가는 것이 좋겠단다. 패트릭은 내가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줄 안다. 예레반에 와서 내가 이런 곳을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괜찮은 곳 하나를 소개시켜 주려고 하는 것이다.

 

패트릭과 같이 간 미술관은 마르티로스 사리안 미술관(Martiros Saryan House-Museum)이다. 마르티로스 사리안(Martiros Saryan, 1880~1972)은 아르메니아가 자랑하는 미술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르메니안 2만 드람 화폐에 그의 얼굴과 작품이 있다. 그만큼 아르메니아가 사랑하고 자랑하는 화가다.

 

비록 러시아에서 태어나 모스코바에서 공부를 했지만 1928년에 예레반에 와서는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물론 그 전에도 조국인 아르메니아를 자주 왔었지만.

 

 

 

그가 살던 생가를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미술관 기록에 의하면 사후에 만든 것이 아니고 생전인 1968년에 자신의 집을 미술관으로 개조해 내 논 것이란다. 생가다 보니 그에 관한 기념관도 겸하고 있다.

 

 

 

그의 그림을 보면 조국 아르메니아의 풍경을 담은 그림들이 많다. 특히, 아르메니아인들의 성스런 산으로, 노아의 방주가 닿았다는 아라랏산(Mt. Ararat)을 배경으로 하는 그림들이 많이 눈에 뛴다.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조국 아르메니아에 대한 사랑이 그 무엇보다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기록에 의하면 1915년 대학살 당시 피난민을 돕기 위해 아르메니아로 들어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평화롭게 보이는 아르메니아의 풍경이 마냥 평화로워보이지는 않는다. 평화로운 풍경 이면에 짙은 비애가 배여 있다고 할까.

 

 

 

지난번 국립 미술관에서도 그렇지만 아르메니아의 예술가들과 작품들에서는 항상 아르메니아의 굴곡진 역사가 느껴진다. 아르메니안 예술가들이 경험했던 아프고 서러운 역사가 은연중에 그들의 작품에도 담겼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르메니아 예술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아르메니아 역사, 특히 대학살의 역사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그의 작품들 중에는 이집트와 이란 등의 중동 지역을 그린 작품들도 다수 있다. 그것은 그가 1910년부터 1913년까지 터키, 이집트, 이란 등을 여행하면서 이들 지역의 문화에 심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궁금해진다. 1915년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 제국에 의해 자행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이후에는 그가 이들 지역에 어떤 감정을 가졌을까?

 

아르메니아에서 역사박물관은 말할 것도 없고, 이렇게 미술관이나 예술관만 와도 가슴 한쪽이 저며진다.

 

 

에레브니 요새(Erebuni Fortress)

 

 

미술관을 나와서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본격적으로 예레반 남서쪽에 있는 요새를 찾아갔다.

 

패트릭이 가자고 한 곳은 에레브니 요새(Erebuni Fortress). 론리 플래닛을 찾아보니 예레반에서 반드시 가봐야 할 2개의 장소(top sights)로 아르메니아 대학살 추모관과 함께 당당히 올라와 있었다. 론리 플래닛에서는 이곳을 에레브니 역사 & 고고학 박물관-보존지(Erebuni Historical & Archaeological Museum-Reserve)로 소개한다. 여기서부터는 그냥 요새라고 부르기로 한다.

 

패트릭이 말하길 이곳을 가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자기 생각으로는 까르푸 앞 정류장에서 2번 트롤리버스(trolleybus)를 타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한다. 걸어서 까르푸 앞까지 가서 조금 기다리니 2번 트롤리버스가 왔다. 트롤리버스는 내 인생에서 처음 타본다.

 

버스 가격은 50드림, 100원 조금 넘는 돈이다. 아르메니아나 아제르바이잔이나 대중교통 요금은 정말 싸다.

 

그곳에서 트롤리버스를 타고 한 30분쯤 가서 종점에 내리면 그곳이 바로 요새 입구다. 먼저 박물관으로 들어가서 티켓을 구입한다. 입장료는 1000드람. 박물관 안 사진 촬영료는 1000드람인데 박물관은 딱히 볼 것이 없으니 굳이 사진 촬영권을 살 필요는 없다.

 

 

 

요새에 들어가는 입구는 박물관을 나와서 옆길로 가면 나온다. 입구가 따로 있어서 박물관을 볼 것이 아니라면 굳이 입장료를 낼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요새 입구에서 티켓을 검사한다. 박물관 티켓에는 박물관과 요새 관람 둘이 다 포함되어 있다. 박물관 구경했다고 버리면 안 된다.

 

요새 자체만 말한다면 딱히 볼거리가 많은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성도 아니고 대부분 허물어져서 성벽과 성 안 건물들의 기본 틀만 남아 있다.

 

하지만 기원전 782년에 건설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성 안의 돌 하나하나에 눈이 간다. 성 벽은 두 단으로 되어 있는데 유적지의 설명에 의하면 윗단은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아랫단은 예전 그대로라고. 슬쩍 봐도 아랫단을 구성하는 바위들은 크고 거칠어서, 크기가 나름 일정하고 잘 다듬어진 윗단 바위들과는 쉽게 구별이 간다. 예레반(Yerevan)이라는 이름이 이 요새의 이름인 Erebuni에서 유래했다고 하니 이 요새가 아르메니아의 역사에서 갖는 의미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굳이 그런 역사적 사실을 상기할 필요는 없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예레반 시가지와 멀리 예레반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의 풍경만으로도 충분하다. 특히 우리가 갔을 때에는 무척이나 한적했는데 커피나 맥주 하나 들고 와서 허물어진 성벽 위에 마냥 앉아 있고 싶어진다. 그러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 풍광에 한없이 빠져들지 않을까 싶다.

 

, 요새를 혼자 가신다면 꼭 커피나 맥주 하나 사가지고 가셔서 허물어진 유적 위에 걸터앉아 자신만의 시간을 잠시 가져보시길 바란다. 무언가를 생각해도 좋고, 멍을 때려도 좋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도 좋다. 그저 잠시 정적인 시간을 꼭 가져보시길. 일행이 있다면 좀 어렵겠지만.

 

 

 

저녁에는 숙소에 있는 친구들과 작은 맥주 파티를 가졌다. 파티라기보다는 숙소 친구들 다 모여서 아르메니아 맥주 마시며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숙소에서 노트북 꺼내 놓고 여행을 정리하는데 패트릭이 다가와서 말을 건다. 같은 방을 쓰는 두 대만 처자들과 함께. 노트북 화면이 자동으로 꺼지려는 것을 수차례 살려가면서 글을 쓰려 했으나 나중에는 포기하고 말았다.

 

사다 둔 맥주를 패트릭에게 한 병 주고, 내 맥주는 화교 처자들과 나눠 마시니 성에 찰리가 없다. 그냥 마트 가서 더 사왔다. 조금 있으니 독일 연인들도 왔다. 다함께 아르메니아 맥주를 마시며 밤늦도록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나중에는 독일 처자와 패트릭의 열띤 토론이 끝날 것 같지가 않아서 조용히 나왔다. 독일 처자의 남자친구는 이미 방으로 도망간 상황.

 

솔직히 토론에 좀 끼고 싶기도 했는데 일단 열띤 토론으로 들어간 상황에서 내 서툰 영어실력으로 치고 들어가기는 무리다. 이놈의 영어는 정말이지 늘질 않는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