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조차지, 칭다오(青岛) 이야기
서울에서 많이 피곤했나보다
오전 6시 30분. 눈을 떠 시간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어제 오후 4시쯤 침대에 누웠는데, 잠시 누워서 쉰다는 것이 14시간 가까이를 잤다. 이 시끄러운 도미토리에서. 어제 비행기에서도 내내 잤는데. 참 많이 피곤했나보다. 어제 인천공항에서 노숙을 해서만은 아니다. 여행하면서 노숙은 많이 해봤지만, 하룻밤 노숙했다고 해서 이렇게 오래 자본 적은 없다. 더욱이 이제 막 여행을 시작했는데.
같은 도미토리 방의 한 친구가 샤워를 하고 온 나를 보고 놀란다.
죽은 줄 알았단다. 저녁에 방이 무척이나 시끄러웠는데도 꿈쩍을 안하더란다. 방에는 나 말고 세 명이 더 있다. 모두들 신기하게 나를 본다. 무척이나 오랫동안 여행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 긴 여행에 지치고, 시끄러운 도미토리에도 아주 익숙한.
독일의 조차지, 칭다오(青岛) 이야기
푹 잠을 자고 났더니 배가 고파진다.
이른 아침에 문을 나서니 쌀쌀함이 느껴진다. 바람도 거세게 분다. 어제와는 날씨가 딴판이다. 잠바 하나 덜렁 걸쳤더니 더욱 춥다. 옷깃까지 세우고 길을 걷는다. 칭다오에서 온 친한 중국 친구가 분명 칭다오가 서울보다 따뜻하다고 했다.
칭다오(青岛, Qingdao)는 두 번째다.
숙소를 조금만 벗어나도 예전에 걸었던 길들이 금세 눈에 들어온다. 예전의 봤던 건물들과 골목 그리고 공원. 정답다. 마음도 편해진다. 언덕을 쭉 내려간다. 내려가다 보면 바로 바다가 나온다. 칭다오의 중요한 볼거리 중에 하나인 잔교(栈桥)가 있는 바다다. 중국의 동해(東海)이자 한국의 서해(西海). 잔교가 바로 보이는 곳에 예전에 자주 갔던 맥도날드가 있다. 그곳에서 커피와 함께 아침을 할 생각이다.
잔교 앞 맥도날드는 그대로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도 없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는다. 중국의 동해니 바다가 보이는 곳은 동쪽, 아침 햇살이 창가 가득 들어와서 따스함이 느껴진다. 창문 너머로 잔교가 보인다.
잔교(栈桥)는 배를 대기 위해서 방파제처럼 바다로 나온 부두를 말한다.
칭다오 해변의 수심이 너무 낮아서 배가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바다로 나와서 배를 댈 수 있는 접한 시설을 만든 것이다. 청 말기인 1892년에 만들었다. 일반 배를 위한 것은 아니고 군함을 접안하기 위한 군용 부두다. 원래는 길이가 200m였다고 하는데 독일이 이곳을 조차하면서 440m로 늘렸다고 한다.
중국의 북양함대를 들어봤을 게다.
잔교가 군용 부두라고 하니 칭다오가 청 해군의 본거지였나 싶겠지만 이곳에는 소규모 해군기지가 있었을 뿐이다. 19세기 청이 자랑하던 북양함대가 주둔했던 곳은 칭다오의 반대, 즉 산둥 반도의 북쪽 해안에 있는 웨이하이(威海, Wei-hai)다. 웨이하이는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중국의 도시로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 곳이다.
19세기 말 중국의 북양함대는 객관적 전력으로는 극동아시아 최강이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북양대신 이홍장(李鴻章)의 강력한 지원과 청의 해군 현대화 계획에 따라 1871년에 건립된 신식 해군 함대다. 하지만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 해군에 대패하면서 괴멸되었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칭다오는 산둥성의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
당시에는 산둥 반도 북쪽 해안에 있는, 웨이하이 바로 옆에 있는 옌타이(烟台)가 훨씬 큰 도시였다. 옌타이는 1863년 대외무역이 개방되면서 무역과 상업이 번창하고 서양의 공관들이 즐비했다고 한다. 지금도 옌타이에 가보면 외국 공관들의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칭다오와 옌타이의 운명이 바뀐 것은 1898년 독일이 칭다오를 조차하면서부터다. 보다 정확히는 이곳을 조차한 독일이 산둥성(山東省)의 성도인 지난(济南)에서 이곳까지 철도를 부설하면서부터다. 1904년 철도가 개통되면서 철도가 없는 옌타이가 급속히 몰락하고, 칭다오가 새로운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교통이 어떻게 도시의 부침을 만드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곳이다. 역사의 아이러니이긴 하지만 칭다오는 중국을 침략한 독일에 의해 만들어지고 성장한 도시다.
잔교 끝에 2층 팔각의 정자가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칭다오 바다의 풍경도 멋지지만 시가지의 풍경도 좋다. 특히 야경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잔교에서 보이는 시가지는 구시가지다.
잔교에서 바다를 등지고 시내를 바라보면 오른쪽으로 독일 조차시절에 만든 유럽식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상하이(上海) 황푸강(黃浦江) 변의 와이탄(外滩)을 보는 것 같다. 물론 규모는 훨씬 작지만 도시 자체는 상하이보다 훨씬 아름답고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신시가지는 잔교 해안에서 한참 서쪽으로 가야 한다. 잔교의 왼편(동쪽) 해안가로도 꽤 높은 현대적 빌딩들이 들어서 있다.
독일이 만든 도시라 구시가지의 거리거리는 마치 유럽의 어느 도시를 걷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주황색 지붕을 가진 유럽풍 건물들과 골목길의 아름드리 가로수들이 무척이나 운치를 자아낸다. 역사가 숨 쉬는 도시라고 할까. 현대적인 것과 옛 것이 잘 공존되어 있다. 그래서 골목 하나하나가 예쁘다. ‘중국 안의 유럽’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데, 칭다오 구시가지의 골목에서 중국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구시가지의 유럽풍 골목길을 잠시 걷고 싶다면 잔교를 나와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걷는다. 잔교의 서쪽으로 해안의 유럽풍 석조건물들을 지나자마자 뒤편 길로 접어들면 유럽풍의 옛 집들이 줄지어 있는 골목길을 만날 수 있다.
첫 골목으로 들어서니 눈에 익은 길이다. 동네가 예뻐서 그런지 사진 촬영을 하는 커플도 보인다.
작은 사거리가 나오는데 그 코너에 있는 카페가 눈에 들어온다. 전에도 예뻐서 사진을 찍었던 카페다.
이번에는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카페 안도 고풍스럽게 잘 꾸며져 있다. 이것저것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카페 안을 꾸미고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골목길도 예쁘다. 햇살이 비취는 어느 골목길의 카페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카페를 나서 골목길을 걷다보니 신하오산(信号山) 공원이 보인다.
나지막한 산 정상에 빨간 전망대가 있는 곳이다. 나지막한 산 위에서 보는 칭다오의 풍경은 여전히 아름답다. 낙엽이 진 숲들과 파란 바다, 그 사이로 해안을 끼고 이어지는 빨간 지붕의 칭다오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중국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조차지의 아픈 역사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는다. 칭다오 맥주와 함께.
오늘은 이렇게 살짝 칭다오의 맛만 본다.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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