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영화대학(北京电影学院)에서 중국 영화를 생각하다
어제 후배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바로 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
베이징영화대학
北京电影学院
한자를 그대로 옮겨 읽으면 ‘북경전영학원’이다. 베이징에서 나의 추억이 가장 많이 담겨 있는 곳이기도 하고, 어제 술을 마신 후배를 처음 만난 곳이기도 하다.
베이징영화대학은 중국 영화인의 산실로 중국 유일의 영화전문 국립대학이다. 연출, 연기, 촬영, 녹음, 편집, 영화마케팅 등 영화 관련 학과들만 있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한 바로 이듬해인 1950년 5월에 중국 정부에 의해 설립되었다. 1966년에서 1977년까지 중국 문화의 암흑기인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베이징영화대학도 문을 닫았다. 그리고 문화대혁명의 종결과 함께 1978년 다시 문을 열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당시 재 개교와 함께 입학했던 1978년 동기생들 중에, 우리가 잘 알고, 중국 영화를 세계에 알린 대표적인 제5세대 감독들이 나온다. 장이모우(張藝謀), 첸카이거(陳凱歌), 티엔주앙주앙(田壯壯) 등이 그들이다. 첸카이거와 티엔주앙주앙은 감독과 출신이고 장이모우는 사실 촬영과 출신이다.
여기서 베이징영화대학이 설립된 시기에 주목해보자. 당시는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과 치열한 국공내전을 치루고 사회주의 중국을 막 세운 때다. 내전의 참상에서 회복하고 국가의 기틀을 세우는 데에도 정신이 없을 시기다. 그런 시기에 왜 중국 공산당은 영화대학을 세웠을까?
그만큼 중국 공산당이 영화를 이데올로기 선전 수단으로써 중시했다는 말이다.
학교 가는 길을 걷는데 예전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학교 정문은 그대로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많이 변했다. 새로운 건물들도 많이 들어서 있다. 학교 뒤편에도 커다란 건물이 들어서서 가까이 가보니 도서관이다. 헉! 격세지감이다. 예전에는 건물 한 층에 대학도서관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의 작은 규모로 있었다.



본관 건물로 들어간다. 1층에 카페테리아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있으려나 싶었는데 예전과 거의 변화가 없다.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파는 메뉴가 좀 바뀌었을 뿐이다. 점심 겸 해서 커피와 빵을 좀 시켜서 카페테리아 한 테이블에 앉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시간은 변했어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영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 영화 촬영을 준비하는 모습 등 예전 그대로다.


옛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카페테리아에 학생들이 많지 않은 것으로 보면 지금 한창 수업 중인 것 같다. 청강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곳 영화대학에는 청강을 하는 학생들이 유독 많다. 정확히는 도강생(都講生)이다. 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하지 않고 수업을 듣는 것을 청강이라 한다면, 학생이 아닌 사람이 수업을 듣는 것은 도강이 맞다. 몇 년 씩 듣는 사람들도 있어서 학생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다.
영화대학에 도강생이 많은 이유는 이곳이 입학하기도 어렵지만 학비가 엄청 비싸기 때문이다. 일반대학 2, 3배의 학비가 든다. 영화에는 관심이 많으나 학교 올 경제력이나 능력이 안 되는 친구들이 이렇게 도강을 해서라도 영화인의 꿈을 키우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학교에서도 크게 단속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이곳 사진을 찍어서 실시간으로 이곳 출신 친구들에게 보내주고 싶은데 카카오톡이 베이징에 들어와서는 먹통이니 답답하다.
카페테리아를 나서서 보니 바로 왼쪽으로 대강의실이 있었던 곳에 대학 기록관이 있다. 꽤 넓은 공간에 이런 저런 기념물을 전시하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이곳이 배출한 중국 영화인들. 장이모우, 첸카이거 등의 5세대 감독들부터 자오웨이(趙薇), 유역비(劉亦菲) 등의 배우들까지 유명 졸업인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중국의 미녀 배우 자오웨이(趙薇)를 보니 옛일이 생각난다.
배우이자 감독인 자오웨이와 같이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어느 날 감독과 수업이 끝나자 중국 친구들이 내게 몰려와서는 자오웨이를 봤냐고 묻는다. 자오웨이는 한국에도 영화 ‘소림축구’로 잘 알려진 배우 조미를 말한다. 장쯔이(章子怡), 판빙빙(范冰冰), 리빙빙(李冰冰)과 함께 중국 4대 미녀배우로 알려진 그 친구다. 못 봤다고 하니 놀랍다는 눈으로 쳐다본다. 같이 수업을 들었단다. 그것도 3주 가까이 계속. 친구들에게 다음 시간에 그녀가 들어오면 꼭 알려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다음 수업 시간이 돌아왔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 자오웨이가 앉아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 앞에서 세 번째 줄 복도 쪽 벽에 앉아 있는, 아니 책상에 엎어져 있는 친구가 자오웨이란다. 쉬는 시간이 끝날 무렵 고개를 든 그녀가 뒤를 돌아다보는 순간에 얼굴이 마주쳤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그때의 순간은 눈이 엄청 컸다는 것뿐이다. 거짓말 살짝 보태서 얼굴에서 눈이 반은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후로도 그녀는 몇 번 수업 시간에 들어오곤 했는데 한국이나 이곳이나 배우들의 수업 참석은 거의 형식적이었다. 바쁜지 수업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후에 가끔 중국 동기들과 자오웨이 이야기가 나오면,
“이렇게 안 나올 줄 알았으면 진작 내 단편 영화에 출연해 달라고 부탁이나 할 걸 그랬어”
“무슨 소리야!”
“나야 외국인이니까, 모르는 척하고 부탁하는 거지. 내 단편 영화에 출연 좀 해달라고”
“외국인에다 같은 연출반 학생이니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막상 출연해준다고 해도 출연비는?”
“당연히 공짜지. 같은 학생들끼리 하는 작품에 웬 출연료. 대신 자기가 영화 만들 때 내가 참여해준다고 하지. 공짜로!”
하며 객기를 부리곤 했다.
중국 동기들 말에 의하면 중국에서 자오웨이가 백치미를 가진 배우로 유명하단다. 이곳 영화대학에서 연기과를 나온 쟈오웨이가 석사를 감독과에 들어온 이유는 아마 그런 백치미적 이미지를 벗으려는 노력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후에 자오웨이는 영화를 직접 연출해서 중국 내에서 꽤 흥행도 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나의 경험상 친구들의 의견에 다분히 동의한다. 자오웨이는 수업도 거의 들어오지 않았지만 들어오더라도 잠만 내리자서 얼굴 한 번 제대로 보기 힘들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당대 여배우로서 주위를 의식하지 않는 그 자세에 경의를 표했었다. 내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얼굴을 들어야 보지 원.
연출에 관심이 있어서 그 바쁜 시간 쪼개어 수업을 듣는 처지라면 그렇게 매번 퍼질러 자진 않았겠지.
그녀 주위에는 매니저인지 경호원인지 항상 2, 3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있었다. 그녀가 수업 중간에 나가면 한쪽 자리들이 텅 비곤했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강대에 다닐 때 이야기가 생각났다. 시험 기간 중 만원인 도서관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공부하고 있으면 학생들이 그 주위에서 메뚜기를 뛰곤 했단다. 박근혜가 도서관을 나서면 한 번에 많은 자리가 났기 때문이다. 경호원들도 일어나니까.
베이징영화대학의 교정은 정말 작다. 맘먹고 둘러보면 한 10분이면 충분할 정도다.
하지만 이 작은 교정에 들어찬 미래 중국 영화인들의 열정은 예나 지금이나 뜨겁다. 그런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중국 영화와 영화산업의 미래가 무척이나 밝아 보인다.
하지만 이들 중국 영화인들의 열정을 꺾는 것이 있다.
중국 영화와 영화산업을 통제하려는 중국 정부다.
최근 중국 영화와 대중문화에 대한 중국 정부의 통제가 더 강화되고 있다.
빅브라더(Big Brother) 중국의 또 다른 일면이다.
부디 이 교정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젊은 영화인들의 순수한 열정이 오염되거나 꺾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by 경계넘기.
'세계 일주 여행 > 중국(China)' 카테고리의 다른 글
| D+010, 중국 베이징 4-1: 베이징(北京)의 중국미술관 산책(20181124) (0) | 2020.11.20 |
|---|---|
| D+009, 중국 베이징 3: 건너뛰는(leapfrogging) 중국의 디지털 기술과 문화(20181123) (0) | 2020.11.19 |
| D+007, 중국 베이징 1: 칭다오(靑島)에서 베이징(北京)으로(20181121) (0) | 2020.11.13 |
| D+006, 중국 칭다오 6: 만추(晩秋)의 유럽풍 골목길을 걷다(20181120) (0) | 2020.11.12 |
| D+005, 중국 칭다오 5-2: 칭다오(青岛) 해변 길 따라 팔대관(八大官)으로(20181119) (0) | 2020.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