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東)티베트라도 가고 싶은데......
천부광장(天府廣場)에 가기 전에 버스 터미널에 들렸다.
동티베트를 거쳐 윈난성(雲南省)에 들어가는 차편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칭다오(靑島)에서 베이징(北京), 시안(西安)을 거쳐 이곳 청두(成都)까지 오는 길은 사실 심심한 길이다. 교통편은 아주 잘 되어 있고, 창밖의 풍광도 밋밋하다. 배낭여행길이 아니라 출장길이 더 잘 어울린다. 현대화된 도시들은 그곳이 그곳이고, 그나마 가볼만한 곳들도 상업화에 물들어 금방 식상해진다. 한국에서 채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정신없이 나온 여행이지만 슬슬 여행자 본연의 자세가 나오고 있다.
잘 만들어진 길보다는 만들어가는 길이 재미있고,
가봤던 길보다는 새로운 길에 흥분된다
중국 시안(西安)에서 잠시 새로운 루트를 고민했다.
시안은 실크로드의 출발지. 그곳에서 아예 실크로드 길을 따라 중앙아시아로 넘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실크로드는 예전에 여행을 해봤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의 우루무치(烏魯木齊)에서 타클라마칸 사막(Taklamakan Desert)의 북단 길을 따라 신장의 서쪽 카슈가르(Kashgar, 중국 명 카스(喀什))와 타스쿠얼간(塔什庫爾幹)을 거쳐 호탄(Hotan, 중국 명 허톈(和田)) 등의 타클라마칸 사막 남단 길을 둘러봤다.
그때 차를 대절해서 카슈가르에서 타스쿠얼간을 거쳐 중국과 파키스탄 국경인 파미르 고원의 쿤자랍 고개(Khunjerab Pass)까지 갔었다. 그곳은 중국에서 파키스탄까지 파미르 고원을 관통하는 카라코람 하이웨이(Karakoram Highway)가 지나는 곳으로 해발 4,693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경 검문소다. 물론 중앙아시아로 넘어가는 실크로드이기도 하다.
쿤자랍 고개에서 돌아서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따라 국경을 넘고 싶었다. 하도 미련이 남아서 간 프랑스 친구에게 끊었던 담배 한 대를 빌려 피다가 죽는 줄 알았다. 그곳이 5천 미터에 육박하는 고지인 걸 잠시 깜박했다.
이번에는 쿤자랍 고개의 파키스탄이 아니라 카자흐스탄과 가까운 중국의 국경 도시 이리(伊犁)로 가서 그곳에서 중앙아시아로 넘어가고 싶었다.
중앙아시아는 아직 가보지 못한 처녀지 새로운 길로 가고 싶었던 게다. 서안에서 출발하면 둔황(敦煌)과 우르무치를 거쳐 이리로 들어가서 그곳에서 카자흐스탄 알마티(Almaty)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면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투르크메니스탄을 거쳐 이란으로 이어지는 중앙아시아 길을 걸을 수 있다.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렜다.
하지만 이내 포기했다. 겨울의 중앙아시아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더욱이 짐을 줄이기 위해 현재 가지고 있는 두꺼운 옷이라곤 경량 패딩이 전부다. 이왕이면 추운 겨울을 피하는 여행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곳 중에 하나가 티베트(Tibet)다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를 포기하고 청두(成都)로 내려오니 이곳에서는 다시 동(東)티베트 길을 가고 싶은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티베트(Tibet)에 가려는 시도는 여러 번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운이 맞지 않은 것인지 번번이 무산되어 지금까지 가보질 못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2008년 5월이다. 베이징올림픽을 목전에 둔 중국 정부가 외국인의 티베트 방문을 아예 허용하지 않았다. 당시 티베트에서 중국으로부터의 분리와 독립을 요구하는 티베트인들의 거센 시위와 티베트 스님들의 분신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 서남부를 여행하고 있었다.
청두에서 티베트를 들어가려고 할 때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전혀 생각지 못했다. 이번 아니면 언제일지 몰라서 슬쩍 모른 척 하면서 가기로 했다. 우선 청두에서 바로 티베트로 들어가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청두에서 티베트로 가는 장거리 버스들은 아예 외국인에게 표를 팔지 않았다.
끊어서 가기로 했다. 청두에서 윈난성 리장(丽江)으로 리장에서 다시 중뎬(中甸)으로 올라갔다. 중국 명 샹그릴라(香格里拉)로 불리는 중뎬은 행정 구역상은 윈난성(雲南省)에 속하지만 티베트와 경계를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장족(藏族) 즉 티베트인 자치지역이다. 그곳에서 티베트로 들어가는 길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현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어찌해서 버스를 탄다하더라도 중간 중간에 검문검색이 강화되어서 중간에 걸릴 가능성이 100%란다. 예전엔 걸려도 대충 모른 척 해주었는데 지금은 얄짤없단다. 현지의 작은 여행사를 찾아가서 차를 대절해 가는 것도 시도해봤지만 모두다 손사래를 쳤다. 윈난성에서 중뎬을 거쳐 티베트의 수도 라싸(Lasa)에 이르는 길은 그 유명한 차마고도(茶馬古道)다. 길도 험하지만 가는 길의 풍광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돌아서야 하는 발걸음이 떼어지지가 않았다.
지금도 외국 여행자가 티베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중국 정부의 여행 허가증, 퍼밋(permit)이 필요하다. 하지만 퍼밋은 개인에게는 나오지 않는다. 여행사와 가이드를 낀 단체에게만 주어지고 반드시 가이드와 함께 단체로 다녀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자유 여행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현실적으로 여행사를 끼고 단체 관광으로 가야하기에 정작 퍼밋 비용보다 관광비용이 훨씬 더 든다.
청두에 있으려니 그때 생각이 나면서 티베트는 안 되더라도 동티베트라도 가보고 싶은 생각이 무럭무럭 피어오른다.
현재의 기본적인 여행 루트는 겨울을 피해 남하하는 중이다. 청두 다음으로 중국 윈난성을 생각하고 있다. 윈난성은 동남아로 넘어가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저위도 지역이면서도 지대가 높은 고원 지대라 사시사철 따뜻한 기온을 느낄 수 있다. 동남아는 겨울에도 덥기 때문에 사실 기후나 환경으로만 본다며 윈난성에서 겨울을 보내는 것이 가장 좋다.
청두에서 바로 윈난성으로 넘어가는 길은 너무 식상하다.
동티베트의 경치도 티베트 못지않게 아름답고 수려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청두에서 동티베트를 거쳐 윈난성의 북단 중뎬으로 들어갈 수 있다. 동티베트 남단 길이다. 중뎬에서 이어지는 윈난성 길은 예전에 여행했던 추억의 길이다.
청두에서 중뎬은 동티베트의 캉딩(康定)과 다오청(稻城)을 거쳐 갈 수 있다. 험하지만 아름다운 길이다. 겨울이라 다오청에서 야딩(亞丁)에 들어가 트레킹은 할 수 없겠지만 버스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즐거움이다.
두 도시 역시 티베트인들의 도시로 티베트 문화가 서린 작은 도시들이다. 맘에 드는 곳이 있다면 며칠 머물러도 좋다.
일단 교통편을 알아야 여정을 정할 수 있다.
요즘 중국에는 기차역이든 터미널이든 무인발매기가 있어서 좋다. 창구에서 직접 이것저것 물어보기가 뭐한데 무인발매기에서는 뒤에 사람만 없으면 이것저것 확인할 수 있다.
청두에서 가까운 캉딩 가는 차편은 자주 있다. 다오청을 가는 차편도 있다. 다오청 가는 버스는 버스비만 300위안이 넘는다. 기차보다 버스가 저렴한 중국에서 300위안이라면 엄청 가는 거다.
숙소에 돌아와 확인해보니 다오청을 가는 것도 일단은 캉딩에서 일박을 하고 간다고 한다. 길이 험해서 야간 운행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다오청까지 기본적으로 버스만 1박 2일이다. 버스에서 풍경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오히려 좋다.
하지만 찾아보는 정보마다 한 겨울의 동티베트 버스길을 주저하게 만든다. 기본적으로 2,000~3,000m의 고지인데다가 4,000m대의 고개도 넘나들어야 하는 길이라 눈이 내리거나 얼어서 길이 막히거나 사고도 많이 난다고 한다.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대는 4,693m의 쿤자랍 고개는 아예 겨울철에 길을 폐쇄한다.
길도 길이지만 일단 너무 춥다. 중앙아시아와 같은 고민에 빠진다. 며칠을 위해 두꺼운 옷을 사는 것도 망설여진다. 어차피 윈난성부터는 필요 없는 옷이라 여차하면 버려야 할 수도 있다.
마음은 이미 티베트 고원을 달리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매일매일이 고민이고 결정이다.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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