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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세르비아(Serbia)

D+192,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1-2: 전쟁과 내전(內戰)의 세르비아 (20190525)

경계넘기 2021. 12. 4. 15:22

 

 

여행의 배경, 전쟁과 내전(內戰)의 세르비아

 

 

20세기 말과 21세기 초 세르비아는 전쟁과 학살의 중심에 있었다.

 

 

 

세르비아는 구() 유고슬라비아의 주축 국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라는 긴 정식 명칭을 가진 유고는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크로아티아(Croatia), 슬로베니아(Slovenia), 몬테네그로(Montenegro),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 북마케도니아(North Macedonia) 6개 공화국으로 1945년에 설립된 국가였다.

 

 

구(舊) 유고슬라비아 지도 (출처: Wikimedia)

 

유고 연방을 세우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끌었던 요시프 브로즈 티토(Josip Broz Tito)의 사망과 1991년 구() 소련의 붕괴로 유고 연방도 분열의 길로 들어섰다. 1991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가 독립하고, 1992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독립을 선언하고, 2006년에는 몬테네그로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유고 연방은 완전히 해체되었다.

 

2008년에는 세르비아에 속해 있던 코소보(Kosovo)마저 독립을 선언하였지만 아직까지 세르비아는 코소보의 독립만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구 유고의 분열 (출처: Wikipedia)

 

유고 연방의 해체가 순탄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1991년 6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언한 그 순간부터 코소보에 이르기까지 유고 연방을 유지하려는 세르비아와의 오랜 전쟁과 내전을 치러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잔혹한 반인륜적 전쟁범죄들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수도 베오그라드(Beograd)는 2천 년이 훌쩍 넘은 고도(古都)다.

 

 

 

베오그라드는 기원전(BC) 279년에 켈트족에 의해 세워졌다고 한다. 이후 로마가 이곳을 지배했다가 520년대에 슬라브족이 들어와 정착하기 시작했고, 630년경에 슬라브족의 일파인 세르비아인들이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동로마(비잔틴) 제국, 프랑크, 불가리아, 헝가리에 번갈아 지배를 받았다. 1284년에야 세르비아 왕국의 지배 아래 들어가 1402년에 수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도 잠시 1521년에 오토만 제국의 지배 아래로 들어갔다.

 

 

1521년 오스만 제국의 베오그라드 정복 (출처: Wikipedia)

 

1841년 오토만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베오그라드는 다시 세르비아 공국의 수도가 되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1929년에는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가 연합해 세운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에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수도가 되었다. 그리고 유고 연방이 완전히 해체된 2006년부터 현재까지 세르비아의 수도로 남아 있다.

 

한 도시의 역사가 이렇게 복잡하기도 쉽지 않다.

 

그만큼 세르비아(Serbia)와 베오그라드가 전쟁의 중심에 있었다는 의미다. 지정학적으로 발칸 반도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통로였다. 예로부터 유럽과 아시아가 맞붙는 곳이었다. 아시아가 강할 때는 아시아가 유럽으로 진출하는 통로였고, 유럽이 팽창할 때는 유럽이 아시아로 넘어가는 길목이었다. 이런 발칸 반도에서도 세르비아는 그 중심에 있으니 세계사의 권력이 변할 때마다 세르비아의 운명도 바뀌었고 항상 유럽과 아시아의 전쟁터가 되었다.

 

 

발칸 반도 (출처: Wikipedia)

 

숱한 전쟁과 침략 속에서 베오그라드 역시 파괴되었다가 재건되기를 반복했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1, 2차 세계대전의 화염 속에서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었고, 최근 들어서는 코소보와의 전쟁 중인 1999년에 나토(NATO)의 공습을 받기도 했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