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7. 27. 목. 맑다가 흐려짐. "만나면 헤어짐을, 우린 조드푸르로"
오늘은 자이살메르를 떠나는 날이다. 그간 레 첫날부터 만나서 여행을 함께 해왔던 세 여성 일행들과도 헤어지는 날이기도 하다. 장 양은 델리(Delhi)로, 송 선배와 신 양은 우다이푸르(Udaipur)로, 그리고 우리는 조드푸르(Jodpur)로.
길 위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언제가 헤어진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이 끝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각자의 일정과 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분 부분 같은 일정과 여정만을 같이 할 뿐이다. 그래서 길 위에서 만난 여행객들과 너무 많은 정을 나누면 헤어짐의 아픔이 너무 크다. 지금은 형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 그 기분이 덜하지만, 혼자 하는 여행의 경우 다시 혼자라는 느낌이 그 아쉬움을 더욱 크게 만든다.
그래서인가 헤어질 때는 되도록이면 같이 했던 장소를 서둘러 떠나려고 한다. 같이 있었던 곳에 혼자 남게 되면 남는 자의 외로움과 아쉬움이 더 크게 남기 마련이다. 이번에 우리는 동시에 떠난다.
우리 버스는 오후 1시, 장 양은 오후 5시 기차, 그리고 송 선배와 신 양은 오후 6시 버스.
우리가 먼저 떠난다. 먼저 떠나는 게 좋다. 떠날 시간을 기다리며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아서도 좋지만, 남는 자의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느끼지 않아서 좋다.
12시 반쯤 일행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우리는 먼저 숙소를 떠났다. 구름이 다소 끼어 있어서 강한 햇살을 막아주고 있다. 그래도 습도는 여전하다. 버스 승차장에서 바라보이는 자이살메르성의 모습에 아쉬움이 남는다.
버스 승차장에서 잠시 버스를 기다렸다가 차에 탔다. 에어컨 버스라 상태는 아주 나쁘지 않았다. 차에 타는 사람이 거의 없다. 거의 빈 채로 오후 1시, 정시에 출발했다. 이런 감사할 때가.
그러나 그 감사함은 잠시. 버스는 길 곳곳에 서면서 사람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도시를 벗어나서도 곳곳의 마을에서 사람을 태웠다. 다 차고도 서서가는 사람도 있었다. 어쩐지 에어컨 버스가 싸다고 했다. 직행버스인지 알았는데 에어컨만 나오지 로컬버스였던 것이다. 버스가 승객을 태우는 곳마다 떠나는 사람들과 환송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엇갈린다.
자이살메르에서 조드푸르까지는 대략 290km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하지만 직행인 줄 알았는데 로컬버스다 보니 예상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다.
사람이 가득 차니 그렇지 않아도 약한 에어컨이 거의 제 기능을 못한다. 게다가 앞뒤에 앉은 여성분들이 에어컨 나오는 입구를 자기 쪽으로 돌려버린다. 이때 처음 느꼈다. 인도 여성들이 대부분 뚱뚱하다는 것을. 그랬다. 내 앞뒤 좌석에 앉은 인도여성분들 모두 뚱뚱했다. 그러다 보니 남자들보다 더위를 많이 느끼는 듯. 모두들 에어컨 나오는 곳을 자기 쪽으로 하기 바쁘다. 그러다 보니 더 덥다. 등에서 땀이 배기 시작한다. 땀띠 날까 무섭다.
조드푸르에 가까워지니 더 많은 사람이 탔다.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시내로 나가나 보다. 통로마저 꽉 찼다. 형은 아기를 안은 여자분께 자리를 양보한지 오래다. 아기를 안으려 했으나 아기가 거부하는 바람에 통째로 자리를 양보했다. 아기를 업은 여성이 버스를 탈 때부터 내 앞뒤로 앉은 네 명의 인도여자들을 지켜봤었다. 아무래도 아기를 여성들이 받아주겠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도 아기를 받아주지 않았다. 형이 자리를 양보하기 전까지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건 좀 심하다 싶다. 자리 양보는 힘들더라도 아기는 받아줄 수 있지 않나? 아기는 좀 받아줄 수 있지 않나. 같은 여자들끼리.
조드푸르에 가까워질수록 먹구름이 짙어진다. 막 비를 뿌릴 그런 기세의 먹구름이다.
조드푸르 시내에 차가 들어선 것 같다. 시내 규모가 자이살메르 하고는 완전 다르다. 자이살메르가 그냥 면 정도의 규모라고 한다면 조드푸르는 완전한 도시의 면모를 보인다. 규모도 규모지만 그 복잡함도 장난 아니다. 차도 많고.
시내를 한참 들어가서 버스가 섰다. 우리도 얼른 내렸다. 시간은 거의 오후 6시를 향하고 있다. 대략 5시간 걸린 셈이다. 로컬버스라지만 원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릭샤꾼들의 소리를 무시하고 좀 걸었다. 그러다 지나가는 릭샤를 불러 세워서 흥정을 하고 탔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터미널이나 역 앞의 릭샤꾼들은 일단 피하고 봐야 한다. 이들 전문꾼들은 거의 바가지라고 보면 된다. 조금이라도 바가지를 덜 쓰려면 그곳을 일단 벗어나서, 지나가는 릭샤나 택시를 세워야 한다. 그래야 바가지도 덜 쓰고 흥정도 잘 된다.
조드푸르 거리는 온통 물바다다. 버스에서 오면서 본 먹구름이 이곳에 거대한 비를 뿌렸나 보다. 우리 전에 비가 내려서 다행이다. 거리의 물을 보니 비가 장난 아니게 내린 것 같다. 그 비 맞았다면 물에 젖은 생쥐 꼴 될 뻔 했다.
릭샤는 시계탑 앞에 우리를 내려줬다. 여기서 숙소를 찾아가야 한다. 시계탑은 시장 한 가운데 있는 상징물. 이곳이 조드푸르의 여행객 이정표다. 여기를 중심으로 이동하면 된다는 뜻.
형이 무심코 예약해버린 선샤인(Sunshine) 게스트하우스는 여기서 한참 올라가야 한다. 성곽 바로 아래 있기 때문이다. 무심코 예약했다는 것은 예약 사이트에서 조드푸르 숙소를 찾아보다가 잘못해서 예약버튼을 눌러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잘못 선택한 숙소는 아니다. 원래 가려던 곳이다. 장 양이 최근 조드푸르에서 뜨는 숙소라고 추천을 해준 곳이다. 다만, 우리는 혹시 몰라서 직접 보기 전에는 잘 예약을 안 하는 습관이 있다. 성수기라면 몰라도 특히 비수기에는 더 더욱.
그 옛날 서울 봉천동 달동네와 비슷한 복잡하고 경사진 골목길을 올라가서, 겨우 선샤인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그런데 에어컨 방을 예약했는데 에어컨 방이 지금 없단다. 하나 있는데 오늘 체크아웃을 안했다고.
다행히 자이살메르보다는 덜 덥지만,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습도는 장난 아니다. 에어컨이 없는 방에서 자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단호히 말했다. 에어컨 방이어야 한다고. 괜히 우물쩍거리다가 돈은 돈대로 기분은 기분대로 날릴 수가 있다.
이 주인장 내가 에어컨 확인 안했다면 대충 넘어갈 심산이었다. 아고라에서 계약한 선샤인의 에어컨 방 가격은 1200 루피다. 원래 가격은 3천 루피로 고지되어 있었다고. 3천 루피면 거의 호텔 수준이어야 하는데. 사기다. 게스트하우스에 무슨 3천 루피 방이 있다고. 사실 1200 루피도 비싸다. 지금까지 묵은 숙소 중에서 가장 비싼 가격이다. 이 가격에 에어컨도 없는 방에서 묵을 뻔 했다.
주인장은 환불은 해줄 수 없고 대신 자기가 아는 다른 게스트하우스의 에어컨 방을 잡아주겠단다. 그렇게라도 해달라고 해서 선샤인 아래의 에어컨 방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창문이 없는 방이라 답답하긴 했지만 그래도 옥상의 전망이 있다. 게다가 우리만 있다. 마치 게하 전체를 우리가 전세 놓은 것 같다.
션사인 게스트하우스는 최근 조드푸르에서 한국인에게 가장 핫한 숙소라고 하는데, 그 말이 틀리지 않게 숙소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끝내 준다.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 메헤랑가르성(Meherangar Fort) 바로 아래에 있어서 위로는 성이 보이고 아래로는 조드푸르 시가지가 펼쳐져 보인다. 나름 깔끔하다. 우리와는 좀 안 좋게 얽히긴 했지만 주인장도 친절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 숙소도 선샤인 바로 아래에 있기 때문에 선샤인 못지않은 전망을 가지고 있다. 샤워하고 옥상으로 올라가서 위로는 메헤랑가르성과 아래로는 조드푸르 시가지를 보면서 저녁을 먹었다. 차도 한 잔 하고. 가격도 너무 저렴하다. 조드푸르는 확실히 자이살메르보다 시원한 것 같다.
조금 고생을 하긴 했지만 그런대로 조드푸르의 첫날을 넘겼다. 조드푸르의 첫날 인상은, 우중충한 날씨 때문인지 우중충해 보인다. 블루 시티(blue city)라고 하는데 그다지 블루해보이지도 않고.
그나저나 내일 아침에는 레에서처럼 다시 숙소를 알아보러 다녀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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