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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자스탄 9: 빗속의 조드푸르(20170729)

경계넘기 2017. 12. 15. 10:13

 

2017. 7. 29.   .    "빗속의 조드푸르"

 

아침을 막 먹고 내려오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찌 우리가 아침 먹을 때까지 기다렸나. 숙소는 자이살메르의 폴로 숙소와 같이 간단한 아침식사를 무료로 제공한다. 다만, 숙소의 루프탑 식당은 천장이 없어서 비가 오면 실내로 들어가야 한다.

 

인터넷으로 일기예보를 보니 오늘은 계속 비가 내린다고 한다. 아침 먹고 메헤랑가르성(Meherangar Fort)에 가려고 했는데 계획 변경이 불가피해 보인다. 원래 계획은 오늘 오전에 성을 보고 내일 조드푸르를 떠나 우다이푸르(Udaipur)에 갈 생각이었다. 이곳에서 3박만 예정한 것이다.

 

조드푸르는 블루 시티(Blue City)라는 별칭답게 파란 도시의 전경이 볼 만하고, 그 다음으로는 메헤랑가르성 정도가 볼 만하다. 물론 이건 일반적인 관광의 목적상 그렇다는 것이다. 어디든 의미를 두고 찬찬히 본다면 많은 것을 얻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도 일단은 스쳐 지나가는 단순 여행자에 불과한지라 그나마 볼 만한 성을 못 본다면 조드푸르에 온 의미가 없다. 블루 시티의 전경도 성에서 보는 것이 가장 낫다고 하니, 성에 가지 않으면 34일 동안 조드푸르에서 한 게 없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 빗속에 가는 것도 그렇고.

 

 

 

 

 

결국 내일 성에 가기로 하고 하루 더 이곳에 머무르기로 했다. 사실 우다이푸르도 호수 빼면 볼 만한 곳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 거기 5일이나 4일이나 별 의미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오늘은 방에서 비나 보면서 쉬기로 했다.

 

그 덕에 이 방의 가치가 높아졌다. 좋은 전경은 아니지만 방안에 널찍한 창문과 실내로 난 발코니가 있어서 거기에 앉아서 바깥구경을 하기 좋기 때문이다. 게다가 방에 커피보드도 있다. 덕분에 따스한 커피 한 잔과 함께 빗속의 조드푸르를 감상한다. 방도 넓고, 에어컨도 좋아서 눅눅하지 않아 좋다. 여유 있게 호텔 여행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가난한 배낭여행객에게 이런 숙소는 대단한 호사다. 커피보드 하나에도 감사하게 된다.

 

정말 하루 종일 오락가락 비가 내린다.

 

점심은 먹어야겠기에 비가 잠시 소강상태일 때 숙소 근처에 있는, 매일 우리보고 호객 행위를 했던 식당에 가기로 했다. 들어가 보니 막 오픈한 모양새다. 물어보니 5일 전에 오픈했다고. 젊은 주인장 말이 자기가 친구와 동업을 해서 이 식당을 열었다고 한다. 자신이 자이살메르 출신이라고 소개한 이 친구는 폴로(Polo)도 알고 포티야(Fotiya)와 김모한도 안다고 했다. , 인도바닥도 좁다. 이 친구에게 김모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주인장은 한국말도 곧잘 한다. 인도에 한국인들이 많이 오기는 오는가 보다. 웬만하면 한국말 조금씩은 하니 말이다. 근데 이 식당 음식 맛은 엉망이다. 햄버거와 스파게티, 그리고 샌드위치를 시켰는데 당최 무슨 맛인지를 모르겠다. 나같이 음식 못하는 사람이 해서는 안 될 말이긴 하지만 내가 해도 이보단 잘 할 것 같다. 자기 음식 맛은 모르면서 우리에게 많이 좀 소개시켜 달란다. 미안한데 여기 소개시켜주었다가는 맞아 죽겠다.

 

 

 

 

점심을 먹고 나와서 김모한 식당이 있는 디스커버리(Discovery) 게스트하우스에 갔다. 그곳에서 우다이푸르 행 버스표를 예약하려는 것이다. 어제 식사하는 중에 우리 주위를 맴돌던 숙소 사장님에게 가격을 물어봤었다. 사장님은 처음에 700루피를 부르다가 우리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680루피에 해주겠다고 했었다. 우리 숙소에 물어보니 같은 볼보 버스를 760루피 달란다.

 

디스커버리에 갔더니 사장님은 안 계시고 아들이 있었다. 알고 있다면서 680루피에 볼보 버스를 예약해 준다. 나중에 사장님도 오셨는데 부자가 많이 닮았다. 아들은 정말 꼼꼼하고 친절했다. 버스 티켓 주요 사항을 일일이 형광편으로 칠하면서 확인을 재차 시켜준다. 대단한 꼼꼼함이다. 그 친구 보고 있자니 인도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이 든다.

 

버스 티켓을 사고 오는데, 형이 릭샤로 시내 드라이브를 하자고 한다. 아무 략샤나 잡아서 1시간 정도 시내를 달려보자는 것이다. 나쁘지 않은 생각. 여행지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도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비 오는 날의 드라이브. 릭샤 타고. 관건은 괜찮은 릭샤를 찾는 일이다.

 

시계탑 남문으로 나가서 그곳에 죽치고 있는 릭샤들을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는 지나다니는 릭샤를 불렀다. 죽치고 호객하는 릭샤들은 무조건 패스다. 모자를 멋지게 쓰신 나이 지극한 아저씨의 릭샤였는데 영어가 안 되시는지 근처의 다른 릭샤 기사에게 물으신다. 아마 우리의 말을 통역해 달라는 뜻일 게다. 그런데 아저씨의 부탁을 받은 이 기사는 자기가 우리를 데려 갈려고 한다. 1시간에 600루피를 제시하면서.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그곳을 떠나려는 데 처음에 우리가 잡은 아저씨가 우리를 따라오면서 400 루피를 부른다. 대충 알아들으셨나 보다.

 

400루피, 조금 깎을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그리 나쁜 것 같지는 않아서 좋다고 올라탔다, 우리의 선택은 탁월했다. 이 기사 아저씨 정말 맘에 들게 조드푸르 곳곳을 마치 전문 관광가이드처럼 알아서 척척 안내해 주신다. 구시가와 신시가 그리고 외곽, 유원지, 그리고 상업 지역을 골고루 보여주시고, 잘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중요한 지역이나 건물은 항상 영어로 이름을 알려주신다. 덕분에 조드푸르를 속속들이 볼 수 있는 기분 좋은 빗속의 드라이브가 되었다. 살아 있는 조드푸르를 본 것 같다.

 

 

 

 

 

 

 

 

 

 

 

 

 

 

시간도 한 시간을 20분이나 훌쩍 넘었다. 우리가 탈 때 먼저 우리에게 출발 시각을 보여주셨는데 본인이 한참 시간을 넘기신 것이다. 그것도 형이 이제 그만 돌아가자고 했으니 이 정도니 아니면 더 돌 뻔.

 

형이 500루피 지폐를 드리니, 두말없이 100루피를 거슬러 주신다. 제대로 우리가 좋은 기사분을 잡은 것. 형이 다시 100루피를 팁으로 드리니, 표정이 너무 밝아지시면서 악수를 청한다. 서로가 기분 좋은 일. 아저씨도 우리도 제대로 기분 내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 아저씨도 아마 오늘은 좀 수입이 되셨을 것이다.

 

디스커버리 게스트하우스의 사장님 아들과 이 기사분 덕분에 인도인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인상이 확 바뀌는 듯. 어디를 가든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나 사람이다. 사람 때문에 좋아지고 사람 때문에 싫어지는 법. 인도의 미래가 확실히 밝아 보인다.

 

기분 좋은 드라이브를 마치고, 항상 가는 그 오믈렛 집에서 오믈렛으로 저녁.

 

그리고 사다르 바자르(Sadar Bazaar)에 있는 주스가 유명한 집에서 망고 주스 한 잔 하고 숙소로 왔다. 이 집 망고 주스는 정말 죽인다. 망고를 그냥 간 것. 물도 넣지 않은 듯 걸쭉하기까지 하다.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덕분에 길은 깨끗해졌지만 이제 슬슬 비가 지겨워진다. 하긴 날씨는 시원해졌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