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7. 31. 월. 흐림. "하얀 도시 우다이푸르, 그리고 축제"
새벽에 일어났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최종 짐을 챙겼다. 우다이푸르(Udaipur)에 가는 버스가 아침 6시 30분이다. 일찍 서두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어제 체크아웃을 미리 했기 때문에 5시 30분쯤 우리가 잠겨 있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게스트하우스의 문이 커서 열기도 힘들다.
아직은 완전히 동이 트지 않아서 좀 어둡다. 게다가 흐린 날이라 더욱. 시계탑 못 미쳐서 릭샤 하나가 다가 왔다. 터미널까지 100루피를 부른다. 가기로 했다. 굳이 몇 십 루피 아낀다고 이 새벽에 배낭 메고 실랑이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게다가 100루피면 터무니없는 가격은 아니다 싶다.
새벽이라 릭샤는 막힘없이 터미널을 향했다. 한 10분이나 달렸을까. 터미널이다. 우리가 탈 버스는 가장 럭셔리한 버스라는 볼보 버스. 근데 막상 버스를 보니 우리나라 일반버스만도 못하다. 그냥 낡은 우리네 일반버스. 물 한 병 주는 것 빼고는 이게 럭셔리인지는 모르겠다.
버스는 정시에 출발했다. 가는 길에 보니 곳곳이 침수되어 있다. 라자스탄 지역 곳곳에 비가 많이 내렸나 보다. 때로는 마을이 침수되어서 그 가운데로 버스가 지나 가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택시를 대절해서 왔다면 못 왔을 수도 있겠다.
조금 이상한 것은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주 도로인데도 곳곳의 작은 마을 가운데를 대부분 관통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마을마다 사람을 승하차 시키려 하나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다. 마을을 관통할 경우는 길도 좁고, 소나 개 등의 동물들이 많아서 차가 제 속도를 내지 못한다. 군데군데 고속도로 같은 곳도 있긴 있는데 주로는 중앙 차선도 분명치 않은 일반도로를 달린다.
어느 책에서 인도가 소고기를 먹어야 발전할 수 있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소와 카스트 제도와의 상관관계는 그렇다 치더라도, 일단 소가 길에서 치워져야 물류가 해결될 수 있을 것 같고, 환경도 깨끗해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소를 위한다고는 하지만 때론 오히려 소에 대한 학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도시를 배외하는 소들은 대부분 쓰레기통을 뒤져서 식사를 해결한다. 소 숭배와 쓰레기통을 뒤지는 소, 과연 이게 숭배인가 싶기도 하다. 여하튼 소를 길에서 치우지 못하면 물류는 물론이고 환경도 개선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소가 치워지면 개는 당연히 치워지겠지.
라자스탄 지역이 넓긴 넓은가 보다. 단순히 사막지대인 줄 알았는데 지역마다. 식생이 무척이나 다양하다. 자이살메르(Jaisalmer)는 확실히 사막지대. 그러나 자이살메르에서 조드푸르(Johdpur)로 오는 길은 조드푸르로 올수록 점점 푸르름이 살아나면서 넓은 농경지들이 펼쳐져 있었다.
조드푸르에서 우다이푸르로 가는 길은 이제 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때로는 강원도 길 같은 울창한 삼림도 나온다. 우다이푸르에 가까워질수록 산도 많아지고 삼림도 우거진다. 여기는 결코 사막지대라고 할 수가 없다.
버스는 12시쯤 우다이푸르 터미널에 도착했다. 예정된 시간보다 한 30분 정도 지연되어서 도착했다. 아마도 침수지역이 많아서 차가 제속도를 내지 못한 것 같다.
버스에 내려서 릭샤(80루피)를 타고 바로 송 선배와 신 양이 묵고 있는 드림 헤븐(Dream Heaven) 게스트하우스로 이동했다. 게스트하우스 옥상에서 이들을 만났다. 자이살메르를 떠나서 5일 만에 다시 만나는 사람들. 반갑다. 하지만 곧 이별이다. 이들은 오늘 저녁 6시 15분 기차를 타고 델리(Delhi)로 갔다가 바로 암리차르(Amrirsar)로 떠난다. 그래도 잠시나마 이렇게 만날 수 있으니 다행이다. 게다가 숙소도 소개해주고. 방도 이분들이 묵었던 그 방이다. 하루에 800루피. 방도 나쁘지 않다. 호수 전망도 있고. 그러나 무엇보다도 드림 헤븐의 압권은 옥상에서 보이는 전망이다.
방에 짐을 놓고 점심 먹으러 함께 나왔다. 송 선배와 신 양도 기차 탈 때까지는 시간을 때워야 한다. 점심으로 이곳에서 한국식 칼국수와 수제비를 한다는 곳을 안내해 주었다. 수제비를 먹었는데 100루피. 근데 정말 한국맛과 같다. 고추를 이용한 얼큰함까지. 자주 올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든다.
점심을 먹고는 전망이 좋다는 우리 숙소 바로 반대편에 있는 진저(Ginger) 옥상 카페로 가서 차 한 잔. 근데 여기서 보는 전망이 정말 좋다. 와이파이도 잘 되고. 여기도 자주 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차피 이곳에서는 따로 할 것이 많지 않다. 많아도 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다행히 우다이푸르는 온도도 높지 않고 습도도 높지 않아서 좋다. 레 이후 가장 좋은 기후 조건을 보여주고 있다. 그냥 이곳에서 동네 한 바퀴나 하면서 쉬었다 가련다. 어차피 델리가면 그 무더위에 고생을 해야 하니 말이다.
카페에서 나와서는 송 선배와 신 양이 저녁을 먹어야 해서 숙소 앞에 있는 소니(Soni)이라는 식당으로 갔다. 여기 닭볶음이 그렇게 맛있단다. 거기서 닭볶음탕에 맥주를 마셨다. 신 양이 산다고 하니 맥주도 신나게 마셨다. 그래봐야 시간이 없어서 많이 못 마셨지만.
그러다 보니 기차 시간이 촉박해졌다. 가방을 챙겨서 바래다주려고 숙소를 나서니 웬걸 거리에 온통 축제물결이다. 교통도 통제되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다. 기차 시간이 가까워져서 빨리 가야하는데 거리에 릭샤가 들어올 수가 없다. 송 선배 가방을 내가 들고 신 양과 내가 앞장서서 축제행렬을 뚫고 나갔다. 시티 팰리스(City Palace) 언덕을 넘어서야 축제 구역이 끝나고 언덕 저편 아래에 한대의 릭샤가 서 있었다. 볼 것도 없이 그것을 잡고 바로 기차역으로 출발. 제대로 작별인사 할 시간도 없었다.
오전에 보고 오후에 작별. 어차피 델리에서 다시 볼 예정이긴 하지만 아쉽긴 아쉽다.
여행길에는 항상 여러 가지 난제가 놓이게 마련이다. 오늘과 같은 경우만 봐도 여행자가 어떻게 축제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겠는가? 가깝다고 조금 빠듯하게 나오니 이런 변수를 만나서 당황하고 서두르게 되었다. 항상 여유를 두고 움직이는 것이 이런 일을 막는 최선이다. 특히, 후진국일수록 정확한 시간과 일정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다. 조금 일찍 움직이는 것, 그게 가장 안전하고 중요한 필수 요건이다. 서두르다 보면 빠트리는 것도 많이 생긴다.
신 양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6시 안 되서 기차역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이다. 원체들 여행에 베테랑들이라 잘하고 있다.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겠는가!
일행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축제행렬과 같이 움직였다. 무슨 축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터번을 쓴 악대가 맨 앞에서 길을 인도하고, 뒤를 이어서 춤을 추는 여성 일행들과 남성들이 뒤를 따르고 있다. 인도에 있는 사람들은 장미꽃잎을 던지고 있다. 즐거운 모습. 나도 사진과 비디오를 찍으면서 그 축제를 즐겼다. 우다이푸르에 오자마자 인도 축제의 한 장면을 담는다.
숙소에 와서는 옥상에 올라가 우다이푸르 호수의 야경을 감상했다. 우다이푸르는 기후가 가장 좋았다. 그다지 덥지도 않고, 호수를 끼고 있으면서도 생각보다 습도도 없어서 낮아서 밖에 앉아 있으면 시원함이 느껴진다. 더 일찍 올 걸 하는 아쉬움도 든다. 조드푸르처럼 구름은 두껍게 껴 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아서 걸어 다니기에도 좋다.
우다이푸르는 정말 호반의 도시 춘천과 그 모습이 너무 흡사하다. 공지천 쪽에서 바라보는 의암호의 모습과 여기 숙소에서 보는 풍광이 너무 비슷하다면 심한 말일까! 형도 내 의견에 공감하는 것을 보면 과한 생각은 아니다. 인도 건물들을 제외하고 호수와 뒤의 산들만을 찍는다면, 아마 모두들 내가 춘천에 있는 줄 알게다. 산세의 모습도 한국의 그것과 너무 비슷하다. 그래서일까 친근함은 있지만 조금의 식상함도 든다. 아무래도 이국적인 풍광이 아니어서 그럴 게다.
우다이푸르는 화이트 시티(White Ckty)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건물들이 하얀색을 많이 띄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봐도 하얀색 건물들이 많다. 거기에 더해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 채석장을 봤는데 대체로 하얀색 대리석들이 많이 나고 있었다. 이곳에 하얀색 대리석이 많이 나다보니 그 자재로 쓴 건물들이 많으면서 하얀 도시가 되었나 싶다. 골드 시티였던 자이살메르는 누런 황토빛의 돌들로 건물을 많이 만들었었다. 거기서도 채석장을 봤는데 정말 누런빛의 돌들을 잘라서 벽돌로 만들고 있었다. 그걸로 집을 만드니 건물들이 모두 황토 빛깔의 노란색일 수밖에 없다. 이곳은 하얀 돌. 조드푸르만 문화적인 요소가 블루 시티로 만들었고. 자이살메르과 우다이푸르는 자연적인 요소가 황금과 하얀 도시로 만들었나 보다.
우다이푸르는 전반적으로 자이살메르나 조드푸르보다는 깨끗하고 보다 정돈된 느낌을 준다. 아무래도 호수를 품고 있는 휴양도시다 보니 그런 모양이다. 상대적으로 소나 개들도 그다지 많지 않아서 길에 똥도 상대적으로 적다. 호수 주변도 나름 깨끗하다. 물이 맑다고는 할 수 없지만 호수나 호숫가에 쓰레기가 쌓여 있거나 하진 않는다.
어둠이 짙어지면서 반대편 시티 팰러스의 불이 점점 밝아진다. 조드푸르의 메헤랑가르성(Meherangar Fort)처럼 여기도 은은한 불빛이 성을 비추고 있어서 멋스러움을 준다. 야경이 낮의 풍경보다 더 멋있는 것 같다. 어둠은 도시의 더러움과 난잡함을 숨겨주어서 그럴까?
인도는 맘 편하게 주변을 보면서 길을 걷기가 무척이나 쉽지 않다. 눈은 항상 길을 살펴야하고 귀는 빵빵대는 소리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길을 걸을 때 여유란 없다. 그저 땅을 보면서 이리저리 몰려오는 자동차, 오토바이, 릭샤, 거기에 강아지와 소를 피하느라 정신이 없다. 조금만 주변에 정신을 팔았다가는 여지없이 똥에 발을 디디고 만다. 산책하기가 영 쉽지가 않다. 때론 길을 걷는다는 자체가 스트레스다. 그래서인지 라다크를 떠난 이후로 아침이든 오후든 산책을 나서는 일이 거의 없다. 그만큼 인도 일반인들의 삶의 모습을 보는 것이 힘들어진다. 골목길 걷는 것을 좋아하는데 인도에서 만큼은 골목길 걷는 것이 고행이다. 좁은 골목에서 뿔이 긴 소라도 만나면 식겁해진다.
저녁이 되면 나는 오랜 시간을 야외에 있을 수 없다. 왜냐? 모기 때문이다. 모기가 나타날 때쯤이면 나는 얼른 에어컨이 가동되는 방으로 내려와야 한다. 야경이고 나발이고.
우다이푸르의 숙소는 방에서 와이파이도 안 잡히고 TV도 없다. 방에서 할 게 별로 없다. 가져온 책마저 2번씩 읽은 터라 정말 할 것이 없다. 조드푸르의 방에서는 와이파이도 잘 되고 TV도 있었던 터라 더욱 심심하다.
어찌 보면 여행은 이런 일상의 잡동사니들에서 벗어나는 시간이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인터넷과 TV가 없으면 혼자 할 게 없다. 이걸 탈피해야 하는데. 여하튼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해 보인다. 그게 중요한 여행 목적 중의 하나 아닌가.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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