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었다 가고 싶은, 작고 예쁜 도시 포드고리차(Podgorica)
포드고리차(Podgorica)는 볼 게 없다고들 한다.
그런데........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 자는 새에 비가 많이 내렸나 보다. 그나마 다행이다. 비가 계속 내렸으면 포드고리차에서 기차역과 버스터미널만 보고 갈 뻔 했다. 한 나라의 수도에 왔는데 잠시라도 둘러보는 것이 여행객의 도리 아닐까. 또 지금 보지 않으면 언제 이곳에 다시 와 볼까!
체크아웃 전에 잠시 시내 구경을 다녀오기로 한다.
시가지가 크지 않아서 1, 2 시간이면 충분하다는 말을 들어서다.
숙소에서 시내는 걸어서 15분 정도.
슬픔을 간직한 오래된 도시
포드고리차는 몬테네그로(Montenegro)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
하지만 시가지가 작아도 정말 작다.
한국의 지방 소도시 같다.
유럽의 웬만한 도시들마다 다 있다는 올드타운(old town) 같은 것도 따로 없다. 오히려 잘 구획된 신도시 같다.
하지만 포드고리차도 무척 오래된 도시다.
도시 외곽에는 로마의 유적도 있고, 도시 자체의 설립도 11세기 전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도시다.
그럼에도 새 것의 향이 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발칸의 도시다운 아픔이 있다. 포드고리차도 숱한 전쟁의 화마가 지나갔지만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때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당시 80여 차례나 폭격을 맞았다고. 잿더미 속에서 다시 재건한 도시이니 옛 도시의 향이 날 리 만무다. 도시가 파괴되지 않았다면 이곳에도 수백 년 역사가 어린 예쁜 올드타운이 있지 않았을까? 무척 예뻤을 것 같다.
중세에는 리브니차(Ribnica)로 불렸고, 포드고리차라는 이름은 1326년부터 사용되었다고 한다. 구(舊)유고슬라비아 연방 시기(1946-1992)에는 구유고슬라비아의 영웅 티토(Josip Broz Tito)를 기려 티토그라드(Titograd)로 불렸다가 다시 옛 이름을 찾았다.
포드고리차는 ‘고리차(Gorica) 언덕 아래’라는 의미란다. 시가지 바로 위로 수목이 울창한 작은 구릉이 보이는데 그게 고리차 언덕이다. 높이가 107m이라는데 언덕이라기보다는 아주 낮은 구릉이다.
녹음과 강빛에 물들은 도시
작지만 도시의 분위기가 참 좋다.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황량하다거나 하지는 않다.
현대적인 전원도시라고 불러야 할까?
일단 도시가 푸른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산속에 도시가 자리 잡고 있다. 높은 건물이 많지 않아서 주변을 감싸는 산들이 도시 어디서도 보인다. 전망권 좋은 도시다.
시가지 안에도 온통 공원이다.
시내를 공원이 감싸고 있는 듯하다. 잘 가꾼 듯 아름드리 나무들이 공원을 빽빽이 채운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에서 도시를 재건하면서 도시 전체 면적의 1/7을 공원과 휴양시설에 할애했다고 한다.
강들에 둘러싸인 수변 도시이기도 하다.
포드고리차 자체가 두 개의 제법 큰 강, 제타(Zeta)강과 모라차(Morača)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바로 남단에 자리 잡고 있다. 도시 가운데를 제타 강을 품은 모라차 강이 흐르는데 시가지를 동서로 가로질러 흐르는 작은 리브니차(Ribnica)강이 또 흘러들어 간다. 사실 리비니차강은 강이라기보다는 서울의 청계천 정도의 개천이다. 어찌되었든 포드고리차는 제타강과 모라차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남단에 있고, 도시의 중심지는 모라차강과 리브니차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북반에 있는 수변 도시다. 그 외에도 시가지 외곽으로 작은 규모의 Cijevna강, Sitnica강, Mareza강이 모라차강에 합수되며 포드고리차를 수변 도시로 만든다.
강변은 공원으로 잘 조성되어 있어서 강변을 산책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도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모라차강에는 중심지 사이로 두 개의 인도교가 있다.
남단의 인도교는 모르겠는데 북단의 제법 예쁘게 만든 인도교의 이름은 모스크바 다리(Moscow Bridge)란다. 모스크바 다리 바로 옆의 멋진 현수교는 밀레니엄 다리(Millenium Bridge)란다.
시 중심(downtown)도 작지만 아담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4각형 모양의 다운타운은 깔끔한 카페와 레스토랑도 많이 보인다. 아직 문 연 곳이 많지 않아서 가격은 알 수 없지만 내 경험상 이런 현지인 중심의 도시는 대체로 저렴하다. 관광객이 많이 가는 코토르(Kotor)보다도 싸지 않을까 싶다.
거리도 울창한 가로수에 덮여 있어서 마치 숲 사이로 난 거리 같다.
시가지를 가로 지르는 강과 강 주변의 잘 정리된 공원들 그리고 작고 아담하지만 나름 분위기 있는 다운타운. 태국의 람빵이 생각난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도시. 관광객들에게는 무료한 작은 도시지만 그래서 조용히 쉬어가기 좋은 도시. 그래서 또한 현지인들의 생활과 문화에 젖어들 수 있는 도시다.
도시를 걷다보니 포드고리차에 머물다 가고 싶다는 생각이 용솟음친다.
이렇게 우연히 맘에 드는 도시를 만난다.
숙소로 방향을 잡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우산이 거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 쏟아진다. 마침 문을 연 카페가 보인다. 바로 들어가 천막 아래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카푸치노 한 잔을 시킨다. 커피 한 잔도 못하고 가나 싶었는데 비가 그나마 여유를 만들어 준다. 가격은 1.5유로. 중심가의 깔끔한 카페에서 서빙 되는 카푸치노 한 잔이 우리 돈 2천원 꼴이니 역시 저렴하다. 유로가 없어서 들어올 때 카드가 되는지를 확인했다. 몬테네그로는 유로를 사용한다.
방 하나 얻어서 한, 두 달 지내다 가고 싶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는데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체크아웃을 안 하고 나왔기 때문에 마음이 조금 급해진다. 숙소만 맘에 든다면 핑계 김에 며칠 지내다 가겠지만, 호스트의 친절에도 불구하고 숙소 시설이 많이 아쉽다. 그렇다고 빗속에 다른 숙소를 찾아다니기도 그렇고.
잠시 잦아든 사이에 길을 재촉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쏟아지기 시작한다. 비도 비지만 배수 처리가 잘 되지 않은 길은 강이 따로 없다. 옷은 이미 포기했지만 신발이나마 옴팡 젖지 않게 걸으려니 힘들다.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 처마 밑에서 비가 멎기를 기다려보지만 아무리 봐도 멎을 비가 아니다. 그냥 배낭을 메고 나온다. 비는 좀 잦아들었는데 숙소에서 버스터미널 가는 길은 진짜 강이 되어버렸다. 주택가 골목길은 배수시설 자체가 없어 보인다.
버스터미널에서 가까운 호스텔은 그나마 탁월한 선택이었다.
끊어 가면서 1박만 할 때에는 역시 터미널이나 기차역 근처가 좋다.
신발이 등산화라 젖으면 잘 마르지 않기에 최대한 조심히 물이 넘친 골목길을 우회하면서 터미널에 무사히 도착한다. 어제 터미널에서 코토르(Kotor) 가는 차편이 많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급할 것은 없었다. 포드고리차에서 멀지도 않고.
터미널에 도착하니 마침 30분 후인 11시 55분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 버스 승강장에서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보면서 잠시 기다리니 버스가 들어온다. 20인승 정도의 작은 버스. 처음에는 승객이 거의 없었는데 출발할 때쯤 되니까 다 찬다.
이제 몬테네그로의 진짜 목적지인 코로르로 간다.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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