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와의 전쟁 in Vietnam
뿌듯한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 프로젝트 팀의 전체 막내인, 중학교 팀의 쌤이 드디어 낮에도 집에서 지내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그간 낮에는 카페살이 하다가 밤에는 거실 소파에서 잠만 겨우 자고 있었다. 원래 집순이라고 하던데 집순이가 집엘 들어가지 못하니 얼마나 피곤했을까 싶다. 그것도 머나먼 타향에서. 근데 왜냐고? 바로 그놈의 바퀴벌레 탓이다.
부러움 받으며 이사 간 아파트가 바퀴벌레 소굴이다.
우리 프로젝트 팀 중에서 집을 제대로 얻어 나간 단원들은 중학교 팀밖에 없었다. 그것도 시 중심의 가장 현대적인 아파트였다. 사진으로 본 실내 인테리어도 무척 훌륭했다. 나 역시 이곳에 방을 얻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건물 외관과 실내 인테리어는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멀쩡한 아파트다.
이사 간지 며칠 지나서 중학교 여자 쌤들이 집에도 잘 못 들어간다는 말이 들렸다.
집 안이 바퀴벌레 소굴이란다. 중학교 막내 쌤 말로는 바퀴벌레들이 방과 거실의 가구들은 물론이고 멀쩡히 돌아가는 냉장고 안에서도 기어 다닌단다. 아침에 일어나보면 화장실 문에 엄지손가락만한 바퀴벌레 대여섯 마리가 붙어 있다고. 집 안에도 많지만 아파트 외벽을 타고 베란다로 내려오고, 복도에서도 현관문 밑으로 들어온다고 한다. 오히려 대학 기숙사가 더 좋았다는 말까지 나온다.
매일 온 집 안에 바퀴벌레 약을 살포하고, 베란다문과 현관문 밑에는 찍찍이를 깔아 놓았다고 한다. 그렇게 바퀴벌레와의 전쟁을 치루면서 낮에는 카페에서 지내고, 밤에는 무서워서 방에도 못 들어가고 소파에서 겨우 잠만 잤던 거다. 냉장고는 아예 꺼버렸고 집에서 요리를 하기는커녕 아예 음식을 먹을 생각도 안 한다고. 바퀴벌레와의 전쟁에서 처참하게 계속 밀리고 있었던 게다.
내겐 적응이 안 되는 게 2개가 있다.
하나는 ‘고수’고 다른 하나는 ‘바퀴벌레’다. 그나마 고수는 아주 조끔씩 적응이 되기는 하는데 바퀴벌레는 시간이 갈수록 더 싫어진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만 외국 생활을 하다보면 이 바퀴벌레가 더 문제다. 동남아와 같은 덥고 습한 나라에서는 바퀴벌레와의 전쟁을 피할 수 없다. 원, 작기라도 해야 귀엽기라도 하지. 이건 커도 너무 커서 제대로 잡기도 힘들다. 잘못 힘을 줘서 때려잡으면 파편이 온 천지에 튄다. 마치 애플파이 터지듯이. 약을 뿌려도 그때만 잠시지 곧 다시 나타난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찾은 바퀴벌레약이 있다.
바로 ‘맥스포스’다. 독일의 바이엘이 만든 젤 타입의 바퀴벌레 약. 예전에 바퀴벌레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을 때 친구가 알려준 약이었다. 그 친구가 대학생 때 방역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때 병원이나 빌딩 등에 살포했던 바퀴벌레 약이 바로 ‘맥스포스’였단다. 바로 사서 뿌렸었는데 효과가 상상 이상이었다.
맥스포스는 바퀴벌레를 바로 죽이는 약이 아니다. 서서히 죽인다. 귀소 본능이 강할 뿐만 아니라 동족의 시체도 먹는 바퀴벌레의 속성을 이용해서 숨어 있는 바퀴벌레까지 잡는 약이다. 약을 먹은 바퀴벌레가 집에 돌아가 죽으면 바퀴벌레들이 그 사체를 먹고 연쇄적으로 죽으면서 숨어 있는 바퀴벌레까지 쓸어버리는 약이다. 그래서 중요한 게 약을 먹고 비틀거리는 바퀴벌레를 절대 죽여서는 안 된다. 안녕히 집에 들어갈 때까지 잘 보호(?)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보통 장시간 집을 비울 때 이 약을 집 안에 살포하곤 했다.
이 약의 성능은 중국 베이징에 살 때도 위력을 발휘했다.
베이징에서도 괜찮은 아파트를 얻어서 한 2년 산 적이 있었다. 인테리어도 훌륭한 꽤 고급진 아파트였는데 그곳에서도 수시로 바퀴벌레가 출몰했다. 침실이고 부엌이고 나오는 걸 보면 집 안에 꽤 있는 듯했다. 당시 중국에는 한국과 같은 아파트 방역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한, 두 집에서 바퀴벌레가 생기면 온 건물에 다 퍼지게 된다. 이 바퀴벌레를 죽이느라 중국에서 파는 약이란 약은 다 사용해봤지만 역시나 그때뿐이었다. 마침 한국에 잠시 다녀온다는 친구가 있어서 그 편에 맥스포스 약을 부탁했다. 결과는 완벽한 승리였다.
이미 이 약을 라자다(Lazada)에서 주문했었다.
기숙사에도 수시로 거대한 바퀴벌레가 출몰하는지라 인터넷 쇼핑몰인 라자다를 뒤져서 맥스포스를 찾아냈다. 그런데 가격이 비싸도 너무 비싸다. 한국에서 판매되지 않는 종류다. 양은 엄청 적은데 가격은 훨씬 더 비싸다. 새로 나온 강력한 거라 생각했다. 이걸 라자다에서 구매해서 기숙사의 내 방과 다른 쌤들 방에 살포할 계획이었다. 이 약을 살포하면 일단 방 안에 있는 바퀴벌레는 다 사라진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중학교 쌤들 집부터 방역을 했다.
라자다에서 약이 도착하자마자 기숙사에 살포하기 전에 먼저 중학교 쌤들 집에 살포하기로 했다. 집에도 못 들어가는 중학교 쌤들이 더 시급한 듯했다. 지지난주 토요일에 중학교 쌤들 집에 가서 방역을 했다. 가장 바퀴벌레가 많이 나온다는 막내 쌤의 집은 그야말로 곳곳이 전쟁터였다. 현관문 들어가다가 나도 바퀴벌레 끈끈이를 밟았을 정도.
막내 쌤의 집은 거의 1m 간격으로 도포를 했다. 이 약을 뿌리고 나면 집 안의 바퀴벌레는 다 사라질 터이니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는 밖에서 들어오는 바퀴벌레에만 신경 쓰라고 했다. 그리고 집 안에 끈끈이 같은 것을 두지 말고 해지면 매일 베란다와 복도 밖 문 아래에 바퀴벌레 살충제를 뿌려두라고 했다. 그러면 밖에서도 잘 안 들어올 거라고. 대답은 열심히 하지만 막내 쌤의 표정은 딱 반신반의었다. 자신도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써봤는데 설마 저 약 하나로 없어지겠어 하는 표정.
얼마 뒤에 집 안에서 바퀴벌레가 보지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졌다.
이제는 낮에 카페 안가고 방에 들어가서 잠도 잔다고 한다.
아직은 불안해서 음식을 해먹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추가로 약을 주문해서 우리 기숙사도 마저 방역을 했다.
내 방은 물론이고 다른 쌤들 방에도 도포했다. 방안의 바퀴벌레는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베란다와 복도에서 수시로 들어온다. 그래서 내가 자기 전에 밤마다 각 쌤들 방 복도 쪽 문 아래에 살충제를 살포하고 있다. 그러면 대개 들어오려다 약을 밟고 죽는다. 가끔 아침에 보면 쌤들 문 앞 복도에 널브러져 있는 바퀴벌레 사체가 가끔씩 나온다. 여자 쌤들 중에는 베란다 문 아래를 아예 테이프로 봉해버린 사람도 있다.
베트남에서 바퀴벌레와의 전쟁은 이렇게 일단락되었다.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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