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바이잔(Azerbaijan)의 바쿠(Baku)에 왔다
세계여행 본편의 시작이다.
두바이를 떠나서 코카서스(Caucasus) 3국 중 하나인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로 들어가는 날이다. 지금까지의 여행이 서론이었다면 지금부터가 내 여행의 본론이다. 지금까지 거쳐온 중국, 동남아, 인도가 예전에 가봤던 국가들이라면 지금부터 가는 캅카스(Kavkaz, 영어로는 코카서스(Caucasus)) 3국은 나에게 처녀지다.
두바이(Dubai)에서 아제르바이잔(Azerbaijian)의 바쿠(baku)로
어제 저녁에 싸다만 짐을 다시 쌌다. 다들 자고 있는 관계로 최대한 조용조용히 짐을 싼다. 짐 챙기는 데 시간이 걸린다. 옷을 완전히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지금까지 거쳐 온 동남아, 인도, 두바이와 달리 아직 쌀쌀한 겨울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비슷해서 2월 중순의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지는 않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서 상당히 춥다고 한다.
그간 배낭 속 깊숙이 쳐 박혀 있었던 두터운 긴 옷들을 꺼내 입고, 짧은 여름옷들을 정리해서 집어넣어야 한다. 아무래도 한동안 여름옷들은 입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두터운 옷들을 입고, 얇고 가벼운 옷들을 배낭에 담으니 배낭에 여유가 생기고 가벼워진다.
10시에 숙소를 나서서 10시 반에 공항에 도착했다. 역시나 카운터는 열려져 있지 않다. 잠시 책을 읽으며 기다리니 열렸다. 바로 체크인을 하고 출국심사를 받는다. 두바이 공항의 출국심사는 국제도시답게 신속하다. 내 심사관은 옆의 다른 심사관이란 잡담하느라 정신이 없다. 내 얼굴 한 번 쳐다보고는 바로 도장. 여하튼 빨라서 좋다.
모든 출국 수속을 마친 시각이 11시 55분.
그런데 두바이 공항에서는 이상한 점이 있다. 보딩 패스에 게이트 표시가 없다. 우리 비행기만 게이트 확보가 늦어졌나 했더니 일정 시간 이후의 모든 비행기는 게이트가 미확정이다. 몇시 이후에 확정된다는 표시만 뜬다. 게이트가 확정되어야 움직일 터인데 출국장에서 갈 바를 모른다. 게이트 확정 전까지는 출국장 중앙에 있는 면세점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면세점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해서 쇼핑을 유도하려는 고도의 상술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2층에 푸드 코트가 있어서 남은 디르함도 쓰고 시간도 보낼 겸 올라간다. 동전까지 합쳐서 17디르함 조금 넘게 남았다. 무엇을 사먹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 생각하는데 마침 던킨 도너츠가 눈에 들어온다. 마침 손님도 없어서 한산하다. 여직원에게 가지고 있는 동전까지 모두 보여주면서 이것에 맞추어 커피 한 잔과 도너 세트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잠시 고민을 하던 여직원이 커피 한 잔과 도넛 2개로 17디르함을 만들어 준다. 음료수 한 잔 값밖에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덕분에 도넛 2개까지 먹는다. 남은 잔돈도 거의 다 쓰고.
조금 있으니 내 비행기의 게이트가 확정되어 나온다.
오후 1시 25분에 탑승을 시작해서 비행기는 오후 2시 30분에 활주로를 이륙한다.
처음 타보는 아제르바이잔 항공.
비행기는 낡았다. 처음 탑승할 때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빈자리가 많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륙시간이 가까워지니 꾸역꾸역 거의 다 찬다. 마치 사람이 기다릴 때까지 기다렸다 가는 버스나 합승택시 같은 기분이다.
유럽에 가까워진다는 느낌은 승객들의 덩치를 보니 느껴진다. 중동이나 캅카스 사람들이나 덩치들이 만만치 않다. 이코노미 좌석이 너무 작아 보인다. 내 좌석은 뒤에서 두 번째로 가운데 열의 통로 쪽 좌석이다. 아까 체크인할 때 통로 쪽 좌석을 부탁했었다. 뒷좌석으로 화장실 갈 때는 좋겠다 싶었는데 이 비행기는 뒤에 화장실이 없고 중간에 있다.
아제르바이잔 항공은 국적기다.
저가항공이 아니니 기내식이 나온다는 말씀. 맛은 그냥 그런데 양은 엄청 많이 준다. 기본 음식에 추가적으로 빵을 더 준다. 메인 메뉴는 감자볶음에 나머지는 거의 빵과 치즈. 역시나 유럽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벌써부터 느끼해지는 기분이다.
캅카스는 와인의 고장.
특히 조지아는 와인이 처음 나온 곳이라고 한다. 캅카스에서는 맥주보다는 와인을 먹어주어야 한다. 와인을 부탁한다. 와인을 잔에 가득 따라 준다. 2잔을 부탁해서 마셨더니 취기가 조금 올라오는 것 같다. 아제르바이잔에서부터는 가격도 저렴하니 매일 와인을 한 병씩 깔 생각이다. 한국 들어가서는 한동안 와인 생각이 안 들도록.
오후 5시 15분에 아제르바이잔 공항에 착륙했다.
아랍 에미리트와 아제르바이잔은 시차가 없으니 비행시간은 2시간 45분 걸린 셈이다. 3시간도 안 걸린 것인데 비행기를 자주 타서 그런지 이 시간에도 지겨워진다.
두바이 공항의 출입국 수속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바쿠 공항은 한 수 위다. 속도가 장난 아니다. 도착비자가 필요한 곳임에도 도착비자라는 것이 달랑 2, 3분 만에 나온다. 인도에 도착비자 받을 때를 생각하니 어이가 없을 정도다.
비자 받는 곳도 무슨 은행창구처럼 생겼는데 기입하는 양식도 없다. 그냥 직원이 전화번호 물어봐서 이곳 전화는 없다 하니 한국 전화번호라도 말하라 하고, 이곳에 묵을 숙소를 묻기에 영어 이름을 미처 챙기지 못해서 예약 상황을 찾아보려하니 그냥 소리 내서 읽어 보란다. 내가 한국어로 적힌 이곳 호스텔 이름을 읽으니 자기가 자신의 언어로 받아 적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카드 결제를 부탁해서 카드 결제(26달러)를 하니 무슨 영수증 같은 것을 주는데 그게 비자란다. 그게 다다. 절차도 간편한데 도착비자 받는 사람도 없어서 어 하는 순간 끝났다. 사람이 하는 창구 말고도 옆으로 마치 ATM처럼 생긴 무인비자 기기도 있다. 완전 은행 같다. 시설이나 인테리어도 그렇고.
그 비자를 들고 입국 수속을 하러 가니 뭐 물어보는 것도 없이 카메라 한 번 쳐다보라고 하고 입국도장을 꾹 눌러준다. 비자는 너무 영수증 같이 생겨서 잃어버릴까봐 여권 케이스에 잘 접어 넣어났다. 지갑에 넣어두면 다른 영수증이랑 같이 버려지기 딱 알맞다.
입국 심사가 너무 빨리 끝나서 짐 찾는 곳에서 짐 나오기를 한참 기다린다. 공항은 깔끔하고 인테리어도 훌륭했다. 마치 호텔 라운지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공항 건물 자체의 디자인도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공항이 아니라 마치 컨벤션 센터나 공연장, 예술관 같다는 생각이다.
수도 바쿠의 국제공항임에도 승객들은 많아 보이질 않는다. 앞뒤로 우리 비행기뿐인 것 같다. 여기도 짐 찾는 곳에 ATM이 있어서 아제르바이잔 돈부터 찾았다.
아제르바이잔의 화폐는 마나트(AZN)을 쓴다. 1마나트는 원화로 700원 정도 한다. ATM에서 찾을 때보면 100마나트 화폐도 있었다. 100마나트면 우리 돈으로 7만 원 정도 하는 돈이니 이곳 물가를 고려한다면 10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이다. 실제로 큰 마트에서도 100마나트 지폐를 내면 무척 난감해한다. 중심가의 큰 카페에서도 100마트를 보여주면 잔돈을 확인해보고 가능한지 말을 해준다.
마침 공항에서는 50마나트 지폐로 2장이 나왔다. 비자도 받았고, 이곳 돈도 찾았고 모든 준비는 끝났다. 가방을 들고 출국장을 나서니 눈앞에 유심 파는 곳이 보인다. 잠시 고민하다가 사기로 했다. 가격은 싸지 않았다. 1기가에 26마나트다. 성능은 좋다. 말레이시아에서 하도 당했던지라 이젠 웬만하면 훌륭하다.
아제르바이잔에 며칠 있을지는 아직 확정을 못했다. 마음에 안 들면 3, 4일 만에도 조지아로 갈 수 있다. 그럼에도 유심을 산 이유는 지금 나에게 유심은 단순히 인터넷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보를 사는 것이었다. 따로 여행책도 없고, 수시로 일정을 바꾸는 나의 여행 스타일 상 여행지의 정보를 얻기 쉽지 않다.
지난번 두바이에서는 유심을 사지 않았었는데, 갈려는 곳의 교통편을 숙소에서 미리 확인해두지 못한 관계로 끝내 못간 경우도 있었다. 이걸 비용으로 따지면 유심 가격 몇 배 이상의 손해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하루를 있든, 이틀을 있든 일단 아주 비싸지 않는다면 유심을 사두기로 했다.
공항버스도 교통카드가 있어야 탑승할 수 있었다. 교통카드 기계에서 2마나트를 주고 교통카드를 뽑았다. 공항버스 타는 곳에도 사람은 거의 없다. 바로 버스가 와서 타려고 하는데 카드가 계속 안 된다. 기사 분께서 보시더니만 돈이 없단다. 다시 가서 2마나트 충전을 해가지고 오라고 하신다. 아마 2마나트가 교통카드 가격인가 보다. 충전은 안 하고 카드만 사가지고 탄 것이다. 일회권도 있었지만 혹시 사용할지 몰라서 카드를 선택한 것인데 카드값도 따로 받는지 몰랐다.
이렇게 글을 쓰니 기사 분과 영어로 대화를 잘 한 것 같지만 실제는 기사님이 영어를 거의 못하셨다. 손짓으로 기계 가리키며 ‘투 마나트’만 계속 말씀하셨고, 난 그걸 눈치로 때려 맞춘 것뿐이다. 내가 충전을 하고 오는 동안 기사님은 나를 기다려주셨다.
공항버스는 좋았다. 그런데 이 공항버스 가격이 1.3마나트인가 한다. 사실 정신없이 카드를 찍느라 얼마나 찍혔는지 몰랐다. 그저 기사분이 2마나트 하시길래 2마나트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블로그들을 보고 알았다. 충전은 지폐만 되는데, 지폐 최소 단위가 2마나트라 2마나트라 하신 모양이다. 1.3마나트면 1마나트 700원으로 계산해서 910원이다. 한국의 60, 70년대 공항버스가 있었다면 이 가격일까.
모든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나올 무렵에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저녁이었다. 저녁 7시에 출발한 버스는 30분 정도 달려서 종점인 바쿠 기차역에 도착했다. 거기서 숙소까지는 메트로로 갈 수도 있는데 구글맵으로 확인해보니 걸어서 대충 40분 정도 걸린다고 나와서 거리 구경도 할 겸 걸어가기로 한다. 저녁이긴 하지만 거리가 밝고 유동인구도 많아서 위험한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날씨는 생각보다 춥지는 않았다. 쌀쌀은 하지만 초겨울 날씨 정도로 이곳에도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날씨였다. 엄청 추울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기차역에서 조금 내려오는 길은 어두웠는데 한 15분 정도 걸으니 갑자기 화려한 조명의 서양식 건물들이 늘어선 곳이 나왔다. 파리의 한 복판이 이럴까. 거리엔 화려한 레스토랑과 카페 그리고 상점들이 즐비했다. 여기가 바쿠의 중심으로 보였다. 서울로 치자면 명동이나 강남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너무도 화려하고 예뻐서 배낭을 맨 채로 카메라를 꺼내서 한동안 찍기에 바빴다. 꽤 긴 거리가 이런 화려한 모습이어서 배낭 무거운 줄도 모르고 신나서 걸어갔다.
서양의 르네상스식 건축물에 은은한 주황빛의 조명을 반사시키니 건물과 거리가 너무 근사하다. 더욱이 거리 천장에는 마치 샹들리에를 본뜬 듯한 조명이 걸려 있어서 거리 전체를 무도회장처럼 만들고 있었다.
숙소는 그 중심거리에서 한 블록 정도만 더 가니 나왔다. 위치가 아주 좋았다. 숙소도 나쁘지 않았다. 비수기라 사람은 많지 않았는데 러시아 친구 한 명을 빼고는 모두 아제르바이잔 사람들 같았다. 이들이 저녁 내내 거실에서 떠드는 소리가 좀 시끄러웠을 뿐이다.
도미토미 가격도 1박에 6마나트. 한 4천원 돈 하는 것인데 개인커튼도 있고, 사물함도 널직널직해서 좋았다.
대충 물가사정을 보니 유심을 빼고는 동남아보다 물가보다 더 저렴한 것으로 보였다. 사실 내가 여행한 곳들 중에서는 인도가 가장 싸겠지만 내가 머문 콜카타만을 본다면 바쿠보다 물가가 비쌌다. 인도, 네팔을 건너뛰고 차라리 이곳에서 겨울을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제르바이잔 바쿠의 첫인상은 좋았다. 이제 본격적인 나의 여행의 시작인 셈이니 그 시작이 나쁘지 않다.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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