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시티(Old City) 산책
이른 아침, 숙소는 찬 기운이 감돈다.
이불은 두툼하니 괜찮은데 매트리스가 온기를 담지 못해서 춥다. 오늘 저녁부터는 침낭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든다. 그래 이럴 때 쓰라고 오리털 침낭을 가져오지 않았던가!
바쿠의 올드시티, 이체리셰헤르(Icherisheher)
숙소에서 이체리셰헤르(Icherisheher)라 불리는 올드시티(Old City)가 무척 가깝다. 걸어서 채 10분도 안 걸린다.
아침에 나오면서 보니 숙소 바로 아래 건물은 아제르바이잔 내무부 건물이고 바로 옆 건물은 경찰서 건물이다. 내무부 건물에는 착검한 소총을 맨 군인들인지 경찰들인지가 경계를 서기 위해 조를 이루어 이동하고 있다. 숙소의 위치가 중심가와 무척 가깝기도 하지만 치안도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
올드시티는 페르시아 시대에 건설된 성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성 외곽이 대부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성 안에 올드시티가 있다.
성으로 둘러싸인 올드시티라 면적이 넓지는 않다. 성문을 통과해서 올드시티로 들어가니 유럽에서 흔히 보이는 돌길들과 석조건물들 그리고 그 사이로 미로 같이 난 작은 골목길들이 있다.
바쿠의 올드시티는 전형적인 서유럽의 올드시티와는 다른 모습일 것이다.
이곳의 올드시티는 아제르바이잔이 페르시아에 지배받고 있을 당시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반면에 어제 저녁에 지난 온 중심가의 그 화려한 거리들은 아제르바이잔이 러시아의 지배를 받을 당시 만들어진 곳이라 한다. 올드시티 역시 러시아 지배 시기에는 러시아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 올드시티에는 페르시아의 아시아적 요소와 러시아의 유럽적 요소가 같이 섞여 있을 것이다.
올드시티의 남쪽 가장자리에 바쿠의 상징적 역사건물 중의 하나인 처녀의 탑(Maiden Tower)이 있다. 일단 그곳을 목표로 잡아서 이리저리 발 가는 데로 올드시티를 걸을 생각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 스타일이다. 역사적 장소든 자연적 장소든 사회적 장소든 그냥 편하게 발 가는 대로 걸으면서 그곳을 느낀다. 이런 저런 느낌과 생각 그리고 때론 음악과 함께. 그런 의미에서 특히 이런 올드시티를 참 좋아한다. 현대와 과거를 넘다들 수 있으니.
날씨가 흐리다는 것이 좀 못마땅하긴 하지만 대신 쌀쌀하지는 않다. 마치 포근한 눈이라도 내릴 날씨다.
돌로 포장을 하는 도로 방식은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유럽의 길은 모두 돌로 포장이 되어서 편하기도 하지만 많이 걸으면 발바닥이 많이 아프다. 하지만 얇은 샌들이 아닌 두툼한 트레킹화라 그런지 돌을 밝는 촉감이 나쁘지 않다.
돌로 포장을 하는 방식은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로마가 영토를 확장하면서 군대와 군수품의 신속한 이동을 위해서 지금의 고속도로와 같은 도로를 전 로마 영토에 거미줄처럼 만들고, 마차가 잘 다니기 위해서 돌로 포장을 했다고 한다. 흙길은 비가 오면 진흙탕으로 변해서 마차 바퀴가 빠져 이동이 수월치 않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로마는 도로와 마차의 폭을 규격화시키기까지 했다.
지금 대부분의 유럽, 즉 영국을 포함해서 라인강과 도나우강 이남의 지역은 모두 로마제국의 영토였다. 이들 지역에는 로마군의 숙영지가 많이 건설되었고, 그 숙영지를 중심으로 거미줄 같은 로마의 도로들이 건설되었다.
유럽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들은 로마군의 숙영지가 도시로 발전한 경우가 많다. 로마의 최북방, 즉 라인강의 경계에 있었던 독일의 대표적인 도시인 프랑크푸르트나 쾰른 같은 도시가 대표적이다. 이들 도시들의 올드시티는 말 그대로 로마군의 주둔지였다. 그래서 지금도 보면 올드시티 가운데에 군인들이 집결하던 넓은 광장이 있다.
물론 바쿠는 로마인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가 아니다. 바쿠의 역사적 기록은 9세기부터 시작된다고 하는데 오랫동안 이 지역을 지배했던 페르시아의 영향을 주로 받았을 것이다. 이 올드시티와 성도 페르시아 지배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아마 길을 돌로 포장하는 방식이 로마에서 페르시아로 전파되었을지 모른다. 그 덕에 페르시아에 의해 만들어진 이 올드시티에도 돌길이 있는 것인지 모른다.
올드시티를 걷는 기분은 항상 좋다. 더욱이 이곳은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들이 엉기성기 연결되어 있어서 일단 안으로 들어가면 길을 잃어버릴 것 같다. 하지만 바쿠의 올드시티에서 길을 잃기는 싶지 않다. 왜냐고? 작아서 그렇다. 한 두어 시간 돌아다니면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걷게 된다. 아니면 바깥 성곽 길을 만나기도 하고.
목조 건물이 많은 한국에는 오랜 세월 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올드시티가 거의 없다
우리나라도 서울의 북촌처럼 올드시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수백, 수천 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곳은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우리네 건축물들이 주로 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적으로 사라지기도 하지만 많은 전란을 거치면서 많이들 불타버렸다. 반면에 유럽이나 중동의 국가들에는 오랜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많은 올드시티들이 있는데 건물들이 주로 돌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네 유명한 사찰들 중에는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지어진 절들도 많다. 하지만 극히 몇 개를 제외하면 건축 양식이 거의 다 비슷해 보일 것이다. 그 이유는 숱한 전란 속에서 대부분의 절들이 불타 버리고 지금 남아 있는 절들은 대부분 조선시대에 다시 중건된 절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초의 창건은 삼국시대까지 내려간다 하더라도 현재 남아 있는 건축물은 대부분은 조선시대의 양식을 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그런 건물들에도 시대를 대표하는 양식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목조건물을 받쳤던 석조 기단이다. 기단 위의 목조건물은 전란의 화마에 스러졌지만 돌로 된 기단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경주에 있는 불국사다. 불국사의 사찰 건물도 사실은 대부분 조선시대에 중건되어 조선의 양식을 보여준다고 한다. 하지만 그 기단만은 그대로 남아 신라 고유의 양식을 보여준다. 그러니 불국사는 신라시대의 석조 기단 위에 조선시대의 목조건물이 올려진 것이다.
지나간 역사 들추어봐야 가슴만 아프다지만 우리네 건축물도 돌로 만들어졌다면 훌륭한 역사유적들과 유물들이 더 많이 남아 있지 않을까! 아울러 경주, 공주, 평양, 개성 등에는 수천 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올드시티들이 남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올드시티의 골목길을 걷다가 오랜 된 건물의 벽이나 길바닥을 손으로 짚어보면 수백, 수천 년의 숨결이 느껴진다. 긁히거나 닮아진 돌담이나 돌길을 보고 있자면 수많은 역사의 세풍 역시 느껴진다. 그럴 때면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의 한 가운데로 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건축양식을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바쿠 올드시티에 있는 옛 건물의 창문이나 지붕, 담이나 벽의 문양 등을 보면 확실히 서유럽의 기독교 문화와 확실히 다른, 아시아의 이슬람적인 요소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겉으로만 보면 마냥 유럽의 한 올드시티 같지만 조금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확실히 다르다.
바쿠의 올드시티는 정말 좋다.
옛 모습이 많이 남아있어서도 좋지만 관광객이 많지 않아서 한적해서 더욱 좋다. 바쿠의 올드시티에서는 유럽의 올드시티에서 흔히 보이는 단체 관광객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올드시티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올드시티에 사는 사람들이거나 관광객들이라고 해봐야 아제르바이잔 사람들 같다.
올드시티 안에는 이 올드시티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궁전건물도 있고, 모스크도 있으며, 다양한 박물관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입장료를 내는 곳들이라 들어가지는 않았다. 아제르바이잔도 입장료는 외국인과 내국인이 다른 이중 가격제를 채택하고 있어서 외국인에게는 많이 비싸게 받는다.
올드시티 안에도 골목골목 호텔이나 호스텔 등이 있어서 여기서 하루, 이틀 묵으면서 올드시티를 아침, 저녁으로 산책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가격이 좀 비싸겠지만. 뿐만 아니라 골목골목 예쁜 카페나 레스토랑, 그리고 기념품 가게들도 있어서 쉬엄쉬엄 올드시티를 즐길 수 있다.
오후 2시쯤 올드시티의 한 레스토랑에 들어간다.
예쁘고 깜찍하게 인테리어 된 음식점이다. 케밥에 하우스 와인 한 잔을 시켰는데 와인이 의외로 비싸다. 맛은 있었는데 식사 가격은 모두 해서 19마나트. 팁까지 붙어서 나온다. 1마나트가 우리 돈으로 700원 정도 하니 대략 13,000원 조금 넘는 돈이다. 와인 한 잔이 6마나트 정도 했고, 딸려 나온 빵도 2마나트 받았으니 메인 요리인 케밥은 채 10마나트도 하지 않는다. 우리 물가로 보면 올드시티 안의 레스토랑이 결코 비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는 좀 과욕이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목표인 처녀의 탑, 즉 메이든 타워에 간다.
12세기에 만든 27m 높이의 탑인데 일종의 망루로 보인다. 그런데 좀 생뚱맞게 탑 하나 서 있는 게 다다. 올라가서 볼 수도 있다고 하는데 비싼 입장료 내고 들어갈 필요는 없다는 것이 나보다 앞서 온 여행자들의 중론이다.
메이든 타워에서 바로 도로를 건너면 해안가다. 책에서만 들었던 바로 그 카스피 해(Caspian Sea)다. 나중에 제대로 보기로 하고 남겨두기로 한다. 그냥 스쳐가며 보기는 아쉬울 것 같아서다.
아제르바이잔의 물가
숙소에 돌아오면서 마트에 들렸다.
레스토랑이나 카페 등의 가격을 보면서 생각보다 아베르바이잔의 물가가 싸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곳에 오니 잘못된 생각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서비스 물가는 생각만큼 많이 싸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내가 있는 곳은 바쿠 중심가 중에서도 중심가. 이곳에서 레스토랑은 한국의 일반음식점 수준이었고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도 3~5마나트 사이를 형성했다. 스타벅스는 빅 사이즈가 5마나트를 훌쩍 넘었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이 우리 돈으로 2천원에서 4천원 정도 하는 것이니 서비스 물가가 한국보다 많이 싸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생활 물가는 예술이다. 와인은 한 병 가격이 2마나트부터 시작한다. 아제르바이잔 맥주는 1.20마타트에서 1.50정도였다. 우리 돈으로 와인 한 병이 1500원부터 시작하고 맥주는 천원 안팎이다.
마트에서 와인 한 병, 맥주 한 병, 물 2리터 한 병, 쥬스 한 병, 빵과 샌드위치, 과자 등을 샀다. 커다란 봉지 2개에 가득. 그런데 가격은 14.75마나트. 700원으로 계산해서 정확히 10,325원이다. 이렇게 사고 만원 돈이라는 사실. 만원의 행복이다. 정말이지 생활 물가는 웬만한 동남아 국가들보다 싸다.
한국의 생활 물가가 얼마나 비싼지 여기에서 실감이 확 난다.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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