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6. 28. 수. 맑다가 저녁에 비. "라다크 레 8-1: 투르툭의 사람들"
오늘도 어김없이 일찍 일어나서 아침 산책을 나섰다. 모두들 자고 있는 관계로 조심조심.
투르툭(Turtuk)은 다행히 고산이 아니다. 2,801m. 디스켓이 3,150m고, 레가 3,520m이니까 레에서 계속 고도를 낮추며 내려온 셈이다. 덕분에 이곳은 고산증의 염려가 없다. 그래도 2,801m라면 결코 낮은 지역이 아니다. 민족의 영산 우리 백두산의 높이가 2,750m다. 그럼에도 새벽에 별로 춥지 않다. 심지어 이곳이 깊은 계곡임에도. 레보다 훨씬 따뜻한 느낌이다. 문을 조용히 나서면서 문득 뒤를 보니 송 선배가 옥상에서 책을 보고 있다. 산책을 가자 하니 얼른 나온다. 어제 박군이 위쪽으로 조금 가다보면 지류 계곡이 나오고 거기에 있는 다리를 건너면 또 다른 큰 마을이 나온다고 했다. 그쪽으로 가기로.
구불구불 마을 골목길을 벗어나자마자 다시 밭이 나오고,
잘못 들었는지 다리 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그때 밭에서 일하시던 투르툭의 한 여자분이 그런 우리를 보고는 일부러 와서 물길을 막아 수로로 내려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아마 제대로 된 길은 없나 보다. 조금 가파른 내리막길이라 물을 막았다곤 하지만 여전히 물기가 있어서 미끄러웠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손짓으로 좀 돌아가는 길을 알려 주신다. 고맙다는 우리의 표현에 홍조 띤 얼굴에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인다. 겉으로는 외지인들에게 무뚝뚝해 보이지만 이렇게 조용한 친절함이 묻어 나온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그 마음은 깊이 전해 온다.
밭일을 많이 한 관계로 얼굴이 그을려서 그렇지 상당한 미모에 우리보다는 훨씬 젊어 보이는 여자분이다. 이곳 사람들은 중앙아시아 계열이라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여자들이 무척이나 예쁘다. 그 왜 있잖아. 중앙아시아에는 김태희가 밭일하고 있다는 말. 정말이다. 이곳에는 김태희, 전지현 같은 분들이 많이들 밭에서 일하시고 계신다.
새벽에 많이들 밭일을 하러 나온다.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 여자들이라는 것이다. 남자들은 도대체 볼 수가 없다. 건설회사에 있었던 관계로 중동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송 선배 말에 의하면 이슬람 지역에서는 대부분의 일을 여자들이 도맡아 한다고 한다. 남자들은 빈둥빈둥 논다나. 확인을 해봐야 하겠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현실은 송 선배의 말을 충분히 잘 증명해 주고 있다. 남자들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그러고 보니 어제도 일하는 남자들은 못 본 것 같다. 집 짓는 곳에서 보긴 봤다. 그런데 그 분들은 여기 사람이 아니라 인도의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로 보였다.
다리를 건너니 다시 마을이 나왔다. 제법 커 보인다. 마을 쪽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어제 택시에서 내렸던 아랫마을 쪽으로 내려왔다. 지류와 강이 만나는 지점에 다리가 하나 더 있는데 그곳에 세 대의 차가 서 있다. 맨 앞의 버스는 스쿨버스로 중고등 여학생들이 타고 있었다. 두 번째 차는 군용트럭으로 스쿨버스라는 푯말이 앞에 붙어 있었다. 아마 군부대에서 아이들의 등하교를 돕는 대민 봉사를 하고 있나 보다. 주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에 있는 버스는 일반 로컬 버스로 보였다. 이때가 거의 새벽 6시쯤 이였는데 아마 이 시각에 로컬 버스가 여기에 서나 보다.
이곳을 지나 5분 정도 어제 택시 내렸던 쪽으로 걷고 있는데 앞서 세 대의 차량에 두 대의 차량이 더 붙어서 우리 곁을 지나간다. 버스마다 사람이 가득. 로컬버스와 스쿨버스, 그리고 스쿨버스로 변한 군 트럭이 아침에는 일부러 시간을 맞추어 이렇게 아이들의 등교를 돕는 모양이다. 보고 있자니 마음이 훈훈해진다.
지나가는 차량 행렬에 손을 흔들어 주고 택시 내린 곳을 지나 조금 더 걷다보니 짜이(chai) 파는 집이 보였다. 주변에 짜이 마시는 사람들이 여럿 있어서 금방 알 수 있다. 근데 한가롭게 짜이 마시는 인간들은 모두 남자다. 여기서 우리도 짜이 한 잔. 새벽에 산책을 하고 나서 마시는 것이라 그런지 지금까지 마신 짜이 중에서 제일 맛있는 것 같다. 제일 싸면서도. 짜이를 마시고 한 10여 분 정도를 더 걸으니 마치 대관령 고개처럼 굽이굽이 윗마을로 올라가는 경사길이 나왔다. 대략 열 구비는 되 보이는데 나름 힘들다. 고개 위에서 아랫마을을 내려다 보니 예쁘다.
윗마을의 밀밭은 아침 햇살을 받아 더욱 영롱하게 빛난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그 표현이 어렵다.
이렇게 한 바퀴 산책을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두 시간 정도 걸은 것 같은데, 고산증이 없어서 힘든 줄을 모르겠다. 씻고 조금 있자니 8시다. 아침식사 시간. 인도식 빵인 짜파티(Chapati)에 계란 후라이 그리고 차 한 잔. 이것도 맛있다. 더욱이 산책을 하고 온 후라 더욱. 짜파티가 일반적인 북인도 사람들의 주식이라고 한다. 가장 저렴하기도 하고. 통밀을 빻아 반죽해서 화덕이나 철판에서 구워서 만든다고 한다. 맛은 그냥 뻑뻑하고 밍밍하다. 건빵을 먹는 기분이라고 할까. 같이 나온 쨈에 발라 먹었다.
북인도는 전체적으로 건조한 편이라 논농사보다는 밭농사가 많다. 밭에서 나는 밀로 만든 짜파티가 주식이 된 배경이리라. 남인도는 쌀이 주식이라고 한다. 남쪽이라 강수량이 충분해서 논농사가 가능한가 보다.
아침을 먹고 9시에 모두 숙소를 나서서 건넛마을을 가보기로 했다.
8-2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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