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6. 27. 화. 맑음. "라다크 레 7-2: 루브라 밸리의 디스킷과 투르툭"
신나게 달린 차는 정확히 11시 30분에 투르툭에 도착했다. 딱 3시간 걸렸다. 레에서 디스킷까지 5시간 걸렸으니 차로 레에서 투르툭까지 대략 8시간의 거리인 셈이다. 하루에 왕복할 수 없는 거리. 이래서 레에서 투르툭으로 바로 가는 택시가 없나 보다.
택시에서 내린 곳은 아랫마을이라고 한다.
거기에서 한 15분 정도 급경사의 언덕을 올라가니 제법 너른 평지가 나오고 그곳에 마을이 있었다.
윗마을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대부분의 숙소는 이곳에 있다고 한다.
물론 경치도 훨씬 훌륭하고. 마을 앞에 펼쳐져 있는, 바람에 흔들리는 밀밭이 너무 아름답다.
원래 가려는 숙소는 방이 없어서 다른 곳을 알아봤다. 1인당 아침, 저녁 포함해서 250루피의 방이었다. 게스트하우스라기 보다는 민박집에 가깝다. 가격이 싼 이유가 있다. 침실의 상태가 내가 지금까지 경험 한 곳 중에서 최악이다. 이불은 거의 사용할 수가 없어서 아예 걷어내고 침낭을 깔았다. 침대나 매트도 말이 아니다. 빈대가 없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숙소에서 보는 풍경은 훌륭하다. 밀밭 가운데 숙소가 있어서 창문 바로 앞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밀밭이 보인다. 옥상도 있는데 비록 1층이지만 위치가 좋아서 옥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가족도 모두 같은 집에 기거한다. 거실을 빼고 대략 다섯 개의 방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중에서 2개를 민박으로 활용하고 있다. 식구는 다섯으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딸 둘과 아들 하나다. 민박 운영은 주로 두 딸이 한다. 그 중에서도 둘째 딸인 '사라'가 많은 부분을 도맡아 하고 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사라와 언니의 나이 차는 겨우 2살인데도 겉으로 보기에는 엄마와 딸 사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차이가 많이 나 보인다. 장양은 사라가 멋을 부리는 날라리라고 말한다. 멋은 좀 부리긴 하지만 집안의 민박 일을 도맡아 하는 날라리가 어디 있는가? 그냥 멋을 아는 젊은 아가씨다.
하나의 방에는 4개의 침대가 있어서 도미토리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남자 셋, 여자 셋인 우리 일행은 두 방을 나뉘어 사용하기로 했다. 사실 남은 한 개의 침대에 다른 일행이 올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여서 전체 민박을 통으로 전세 낸 셈이다. 침실만 좀 깔끔하다면 배낭족들이 좋아하는 최고의 숙소일터인데 정말 아쉽다. 아니, 이거 사라가 게을러서 그런가?
짐을 풀자마자 출출해서 사라에게 메기라면을 부탁했다. 1인당 50루피. 나중에 근처 레스토랑에서 메기라면을 먹었는데 30루피였다. 엄청 비싸게 받은 것이다. 이곳에 온 사람들이 하도 메기 메기 하길래 무슨 맛인가 봤더니 그냥 라면이다. 뭐 특별히 맛있다고 할 수는 없는. 옛날 초창기 삼양라면의 맛이라고 할까. 그래도 인도 특유의 향이 없어서 무난하게 먹을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아직 인도에 오래 안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폭포가 있다는 말에 오후 1시가 넘어서 모두들 숙소를 나섰다. 숲을 헤치고 한참을 올라갔지만 폭포는 보이질 않는다. 산 중턱에 넓은 공동묘지 같은 곳이 나오고 멀리 언덕 위에 작은 사원만 보인다. 아무래도 거의 등산을 해야 될 듯싶다. 일단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여기까지.
대신 중간에 전망이 좋은 카페를 하나 찾았다.
아래 사진 오른쪽 하단에 마치 짓다만 가건물처럼 보이는 것이 카페다. 카페는 물론 2층에 있다.
2층에 만들어진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풍경을 봤는데 정말 좋다. 지금까지 내가 본 카페 풍경 중 최고다. 숙소에서는 평지라 시야가 좀 가리는 것이 있는데 이곳은 언덕배기라 가리는 곳이 없다. 설산 사이의 깊은 계곡과 그 계곡 사이를 흐르는 슈오크 강(Shyok River) 이 눈앞에서 길게 펼쳐져 있다. 계곡 아래의 슈오크 강 옆에 자그마한 투르툭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설산의 물이 녹아 거칠게 흐르고 있는 회색빛의 슈오크 강은 인류 문명을 이룬 인더스 강의 지류이다. 카라코람 산맥에서 발원해 이곳을 지난 슈오크 강은 파카스탄으로 흘러 들어가서 인더스 강과 합류한다.
상쾌하다 못해 시원하다.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다. 꽤 올라와야 하는 관계로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한산하기까지 하다.
멍 때리기에 최고의 장소다.
카페를 내려와서 동네 구경. 형이 동네 아이들에게 즉석 사진을 찍어주는데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아니 어른들도 좋아한다. 형은 오지 여행을 할 때마다 즉석사진기를 가지고 다닌다. 사진기가 귀한 곳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것이 좋은 선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다른 선물도 줘 봤는데 오히려 좋지 못한 습관만 들이는 것 같아서 싫단다. 내가 생각하도 정말 좋은 생각. 추억을 선물해 드리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현지 분들과 친해지는 데 이만한 것이 없다. 나 역시도 형이 현지 분들에게 사진을 찍어 드리는 사이에 편하게 그분들의 표정을 내 카메라에 담는다.
저녁 7시에 숙소에서 주는 저녁을 먹었다. 인도 음식인 달(dal)과 시금치 요리가 나왔는데 모두들 맛이 좋았다. 달은 쪼갠 콩을 부드러워질 때까지 조려서 강황 등을 넣어서 만드는 인도 전통 음식이다. 인도 특유의 향이 전혀 나오지 않아서 특히 좋았다. 오히려 우리 된장국 맛이 났다. 마당 한편에 있는 야외 테이블에서 하는 식사로 운치까지 있다. 저녁을 먹다보니 중간에 전기불이 들어온다. 이곳은 전력이 약해서 전기 들어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듣기로는 누브라 밸리에 숙소 가격도 비싸고 음식도 맛이 없다고들 했는데 우리 숙소는 다행히 값도 싸고 음식도 좋았다. 물론 침실의 열악함을 고려하면 싸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일단 음식은 같이 온 일행 모두들 대 만족이다. 특히 입이 짧은 장양과 박군도 맛있다고 한다. 다만 침실이 너무 열악해서 일반적인 여행객들은 쉽게 숙박하기는 힘들 것이다. 여행 경험이 많지 않거나 여행사 패키지를 주로 이용한 친구들이라면 기겁을 할 게다. 나보다 여행 구력이 한 수 위인 장양도 이런 침실에서 자본적은 처음이라고 한다. 잠자리에 크게 구해 받지 않는 사람이라면 최고의 숙소겠지만. 저녁 먹고 뜨거운 물을 부탁해서 내가 가져온 베트남 커피를 타서 한 잔했다. 저녁 해가 넘어가는 시간 속에 이런 저런 이야기로 누브라 밸리의 첫날을 보낸다.
여자 방으로 장소를 옮겨서 수다를 떨다가 옥상에 올라가 밤하늘의 별을 봤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이라 하늘이 좁아 보이긴 하지만 그 좁은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박혀 있다. 아직은 집집마다 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다. 집집의 불이 꺼진 한밤중에 본다면 더욱 화려하겠지.
저녁 열시쯤 잠을 청한다. 그럭저럭 침낭 안에서 자니 잘만 하다. 빈대가 없기를 바라면서. 여기는 침낭 없이는 절대 잠을 잘 수가 없다. 인도 여행은 역시 침낭이 필요품이다. 부피를 좀 차지하더라도 어쩔 수가 없다. 살고 싶다면.
루브라 밸리의 북단 끝에 있는 투르툭은 라다크에서도 특별한 지역이다. 티베트불교 지역인 라다크에서 이곳은 이슬람교가 주종을 이룬다. 사람들 역시 티베트인, 즉 라다크인이 아니라 중앙아시아 사람들과 훨씬 가까워 보인다. 투르크 계열로 보인다. 루브라 밸리 초입에 있던 디스켓과도 완전 다르다. 거기만 해도 라다크인들과 티베트불교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원래 이곳은 1971년까지 파키스탄이 실효 지배하고 있었던 지역이다. 이후 인도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뺏어서 현재까지는 인도 영토에 편입되어 있다. 그러니까 파키스탄 국경과의 최접경 지역이다. 여행객들에게 최근에야 개방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파키스탄의 훈자와도 매우 가깝다. 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우리 일행들은 훈자에 다녀온 사람들. 가까이 있으면서도 갈 수 없으니 더욱 아쉽다고 한다. 잠시 스쳐가는 여행객이 이럴진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떨까? 아마 한국인이라면 분단된 나라의 그 비애와 애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티베트인인 라다크인들도 그렇고, 이곳 투르툭 사람들도 그렇고. 북쪽으로 멀리 보이는 설산 넘어가 파키스탄이라고 한다.
이슬람 지역이라 모두들 히잡(Hijab)을 쓰고 있다. 남자들은 많이들 현대적인 옷들을 입고 있는데 반해서 여자들은 나이를 막론하고 전통적인 히잡을 쓰고 있다. 이슬람이 아무래도 여성에게 더 보수적이라 그런가 보다. 그래도 입까지 가리는 니캅(Niqab)나 눈까지 가리는 부르카(Burqa)를 착용한 여성은 보이지 않는다. 특히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는 보는 사람도 답답하게 느껴진다.
루브라 밸리, 특히 투르툭을 오다보면 이곳이 군사지역이라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다. 곳곳에 군부대가 있고, 디스킷에서 30분 정도 투르툭 방향으로 오다보면 공군비행장도 있다. 퍼밋이 불가피해 보인다. 레에서 디스킷 오는 동안 2번 정도 퍼밋 검사를 한 것 같고, 디스킷에서 투르툭 오는 길에는 3번 정도 한 것 같다. 참 인도에서 퍼밋 검사는 조금 다르다. 일단 퍼밋을 많이 복사해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가는 곳 마다 퍼밋 복사본을 제출해야하기 때문이다.
디스킷에서 투르툭 오는 도로는 대부분 그 관리조차 군부대 소관인 것 같았다.
대표적인 것이 다리인데 일반적인 다리가 아니라 공병들이 만드는 조립식 철제 다리가 많이들 걸려 있었다.
디스킷에서 투르툭에 오는 길에 보면 강 주위로 넓게 펼쳐진 사구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가까이 클로즈업해서 촬영하면 사막과 별다르지 않다. 디스켓에서 투르툭 방향으로 10km 올라오는 길에 훈두르(Hundur)라는 마을이 있다. 사막 같은 사구가 유명한 곳으로 낙타 사파리를 많이들 한다고 한다.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형 말에 의하면 훈자에 비해 외부인들에게 덜 개방적인 것 같다고 한다. 내가 봐도 사진이나 이런 것들에 많이들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개방 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외부인이 낯설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너무 많이 찾아온 사람들이 지겨워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2010년에야 여행객들에게 개방된 투르툭도 이미 상업화가 많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순박한 사람들의 모습은 여전하다. 특히, 여자분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너무들 부끄러움을 많이 타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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