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6. 26. 일. 맑음. "라다크 레 6: 누브라 밸리 가는 길"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샤워하고 바로 짐을 챙겼다. 큰 것은 어제 저녁에 싸두었기 때문에 대충 다시 한 번 정리만 하면 된다.
이번에는 숙소에 방을 잡아두고 가기 때문에 짐을 두고 갈 수 있다. 그럼에도 내 배낭의 짐은 적지 않다. 그 이유는 침낭, 오리털 파카, 그리고 DSLR. 인도에서 침낭은 필수다. 특히 열악한 지역을 갈수록. 그리고 고지가 높은 지역은 아침, 저녁으로 쌀쌀할 수 있어서 경량 오리털 파카도 필수. 거기에 나는 DSLR 카메라와 렌즈들도 있다. 이것들만 챙겨도 웬만한 배낭 하나 가득이다. 인도 여행은 배낭이 필수여서 좀 귀찮다. 그러나 잠을 제대로 자고 싶다면 없어서는 안 되는 물품이다. 절대.
아침 8시에 루브라 밸리(Nubra Valley) 일행은 올뷰 게스트하우스를 출발했다. 참, 일행이 한 명 더 추가되었다. 박군이라는 덩치 큰 젊은 친구다. 이렇게 되면 남자 셋, 여자 셋. 무슨 드라마 제목 같다. 그 친구는 쉐어 택시(share taxi) 타는 곳에서 만나기로 했단다. 쉐어 택시 타는 곳은 게하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떨어진 곳이다. 고산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서 그런지 짐을 들고 그 정도는 걸어도 무난하다. 게다가 내리막길이라.
우리가 가려는 누브라 밸리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계곡이다. 설산 사이의 두 개의 긴 계곡을 따라서 자그마한 마을들이 옹기종기 있는 곳이다. 그곳에 가려는 이유는, 우선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누브라 밸리의 북단 끝 투르툭(Turtuk)이라는 마을은 여행자의 이상향인 파키스탄의 훈자(Hunza)에 비견되는 곳이다. 사실 훈자도 여기서 멀지 않다. 투트툭 자체가 북쪽으로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잠무 카슈미르 주의 파키스탄 실효지배 지역인 훈자가 나온다. 자연환경이 비슷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누브라 밸리의 투르툭은 불교 중심인 라다크 지역에서 독특하게도 이슬람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인도, 아니 라다크에서도 제대로 이슬람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예부터 이 마을은 이슬람 문화권에 속했으니 파키스탄과 문화적으로 더 밀접하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국경선이 같은 문화권을 갈라놓은 것이다. 마치 우리의 휴전선처럼. 파키스탄이 영유권을 계속 주장하는 이유도 이런 것들에 연유할 것이다. 따라서 투르툭과 훈자는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문화까지도 비슷하다.
세 번째는 아직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사람들을 느낄 수 있는 있는 곳이다. 누브라 밸리가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여행객들에게 개방 된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누브라 밸리 자체도 1990년대에야 처음 개방되었지만, 북단의 투르툭이 개방된 것은 2010년의 일이다. 아직 시장과 자본에 찌들지 않은 자연과 인간의 순수함이 남아 있는 곳이다. 외부의 여행자로서는 더욱 신중하고 조심해야 하는 곳이다.
사실 레에 오자마자 서둘러서 누브라 밸리를 먼저 오려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때 묻지 않은 이 순수함을 조금이라도 사람이 적을 때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7월이 오면 대학생들이 방학을 맞이하고 직장인들은 휴가철에 진입한다. 이곳도 본격적인 성수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일주일 정도 차이이긴 하지만 그 차이는 엄청나다.
누브라 밸리의 북단 끝 투르툭은 이곳 레(Leh)에서 북쪽으로 205km 떨어져 있다. 200km라는 거리도 그리 짧은 거리는 아닌데 가는 길 대부분이 꼬불꼬불 협곡길에 중앙선도 없는 1차선 비포장도로다. 더욱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동차 도로인 5606m의 까르둥 라(Kardung La) 고개를 넘어야 한다. 시간이 엄청 걸릴 수밖에 없는 곳으로 오지인 라다크에서도 오지다. 쉐어 택시도 투르툭까지 바로 가는 차는 없다. 레에서 누브라 밸리 초입에 있는 디스킷(Diskit)까지 가서 거기서 투르툭 들어가는 택시로 갈아타야 한다. 아니면 버스를 타든. 디스킷은 레에서 115km 떨어져 있고, 투트툭은 디스킷에서 다시 90km 정도 더 들어가야 한다.
강렬한 아침 햇살을 뚫고 쉐어 택시 타는 데까진 왔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디스킷에 가는 차가 없다. 너무 늦게 왔단다. 사실 당일로 투르툭으로 갈까 하다가 일정이 박센 것 같아서 디스킷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투르툭으로 들어가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디스킷까지는 택시로 6시간 정도 걸린다고 해서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의 생각이었고, 실상은 택시들이 아침 일찍 디스킷으로 가서 그곳에서 손님을 태우고 다시 레로 오는 왕복 운행을 하고 있었다. 그래야 돈을 벌 수 있으니까. 그러다 보니 디스킷에 가는 쉐어 택시는 대부분 새벽 5, 6시에 출발한단다. 그래야 낮에 왕복을 할 수 있다. 그걸 생각 못한 우리의 패착이다.
뭐,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런 일이야 여행 중에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 아닌가! 택시 승합장에서 뻗치기로 했다. 역으로 디스킷에서 출발해서 레에 왔다가 돌아가는 택시를 잡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디스킷에서 일박을 할 생각이다. 물어보니 오후 1, 2시에 이곳에 온다고 한다. 다시 숙소로 들어갔다가 나오기는 힘들어서 여기서 기다리기로 했다. 쪽팔리기도 하고. 번갈아 가면서 밥이나 먹고 오기로. 승강장 근처의 그늘에 종이 깔고 앉아 정처 없이 기다린다. 역시나 모두들 여행 구력이 많은 사람들이라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사람들은 없다. 조금 지루해할 뿐이다.
짐을 지키면서 교대로 식사를 가는데 이번에는 내 순서. 송 선배와 같이 갔다. 식사하면서 알았는데 나와 같은 중학교 선배다. 이럴 수가! 사실은 이때부터 송 선배로 호칭을 바꿨다. 송 선배는 건설회사를 다니다가 최근 그만 두고 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한다. 토목공학과를 나왔다고. 공대 누님이다. 그것도 토목과.
오후 1시. 드디어 차를 섭외했다. 장양과 신양이 고생했다. 미인계를 엄청 쓰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 효과는 미미했다고 본다. 어차피 섭외한 택시는 오늘 디스킷으로 가야하는 데도 불구하고 택시비는 거의 깎질 못했다. 택시는 3,200루피. 6명이니까 두당 540루피씩 내면 된다. 기사분이 점심 먹고 2시에 출발하잔다.
다시 2시 출발을 기다린다. 여행은 두드림과 기다림의 연속이라 했던가. 이곳에서도 여전히 두드림과 기다림의 연속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성격 급한 우리 일행들이 대신 두드려주고, 같이 기다려주니 좋다. 엄청 편하다.
누브라 밸리. 대체 어떤 곳이기에 이렇게 쉽게 열리지 않는 것일까. 6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니 2시에 출발하면 해질녘에 비스킷에 도착할 듯하다.
오후 1시 45분. 드디어 누비라 밸리의 첫 관문 비스킷을 향해 출발했다. 아침 8시에 게하를 나섰으니 거의 6시간을 기다린 셈이다. 맨 뒷좌석에 앉았다. 자리는 제비뽑기를 했다. 자리가 뭔지 다들 난리다. 확인도 하기 전에 서로 바꾸자고 협상도 하고. 뒷자리도 나쁘지 않다. 창을 열 수는 없지만 자리는 넓고 편하다. 원래 정원은 8명인데 우리가 두 사람 분을 더 지급해서 가는 것이기에 많이 불편하지는 않다.
레에서부터 차는 계속 쉬지 않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레를 벗어나자마자 황량한 황토빛 돌산이 끝없이 펼쳐진다. 황량한 돌산에 길은 긴 S자를 그리며 끝 모르게 이어져 있고, 돌산 넘어 저 멀리 설산이 보이고 있다. 고도를 높일수록 발아래 깔려 보이는 길은 우리가 언제 저 길을 지나왔는지 싶게 새삼스럽다.
한참을 올라가자 그토록 멀리 보이던 설산들이 손에 잡힐 듯, 눈에 맺힐 듯 서서히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오후 2시 40분. 1차 퍼밋(permit) 확인하는 곳에 도착했다. 4,500m 고지. 퍼밋 확인 장소는 휴게실과 겸하는 곳이다. 군인들이 하는데 중국에서처럼 딱딱해보이지는 않는다. 그곳에서 좀 더 올라가던 중에 작은 차 하나가 퍼져 있다. 주위로 2, 3대의 차가 서서 도와주고 있다. 우리 차 기사도 내려서 도우러 갔다. 나중에 같이 내려서 가본 형이 그러는데 다들 못 고치고 있다가 우리 기사 덕분에 고쳤다고 한다. 자신들 때문에 가던 길을 멈추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 차 사람들이 우리에게까지 과자를 주었다. 나눠 먹었는데 우리나라 땅콩엿 같은 맛이다.
가장 높은 고개인 5606m의 까르둥 라에 가까이 갈수록 길 주변으로는 아직 녹지 않은 눈덩어리들이 쌓여 있다. 설산 녹은 물이 흘러 넘쳐 도로 역시 엉망이라 차가 제 속도를 내지 못한다. 잦은 낙석과 흘러넘친 물로 인해서 길의 포장상태도 말이 아니다. 거의 비포장도로. 레에서 오는 길은 그냥 일차선의 도로로 양 방향의 차가 겨우 지나갈 수 있다. 거기에 오토바이 여행자들도 많아서 길은 위태위태하다.
어느새 설산의 높이까지 왔다. 올려다보던 설산이 바로 눈앞에, 때론 발아래 펼쳐진다. 어느 게 눈이고 어느 게 구름인지 자못 헷갈린다. 눈과 구름의 향연.
설산을 등 뒤로 힘차게 달리는 오토바이 여행자들의 모습이 위풍당당하다. 마치 곧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다. 나도 해보고 싶다. 근데 내가 탈 수 있는 스쿠터 정도의 오토바이 가지고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을 것 같다.
레에서부터 1시간 반 정도를 계속 올라오기만 한 차는 드디어 오후 3시 무렵 5606m의 까르둥 라에 도착했다. 내가 직접 올라선 곳 중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이곳에 서서 기념사진이라도 찍고 싶었는데 차를 이곳에 댈 수 없었다. 녹지 않은 눈으로 인해 길이 좁아지고 차량이 많아서 상행과 하행 차량들을 통제하면서 번갈아 운행하고 있었다.
우리 차가 막 고개를 진입하자마자 우리 방향의 통행이 재개되었다. 교통을 통제하던 경찰이 우리에게 바로 가라는 신호를 계속 보낸다. 여기서 잠시 정차하면 언제 다시 이쪽 방향이 재개될지 모른다. 돌아올 때를 기다리면서 바로 직행. 내 인생에 가장 높은 곳을 지나간다. 맨 땅에 내 발을 딛지 못한 게 아쉽다.
고개를 넘자마자 상행 차들의 정체가 저 아래에서부터 길게 늘어서 있다. 고개 넘어서는 북향이라 햇볕이 잘 들지 않아서 쌓인 눈이 도로 한 편을 차지하고 있어서 양편 차량의 교행이 거의 불가능했다. 올라올 때보다 정체가 더 심하다. 신호에 따라 한쪽 차량이 이동할 때는 다른 쪽 차량들이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한다. 5000m가 넘는 고지에서의 교통정체다. 다행히 우리 차는 바로 수신호를 받아서 빠져 나올 수 있었지만.
까르둥 라를 넘자마자 차는 다시 한참을 계속 내려가기 시작한다.
고도를 낮출수록 어느덧 눈은 사라지고 다시 황량한 돌산이 이어진다.
고도를 더욱 낮추자 황량한 돌산들 사이사이로 드문드문 푸른 녹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마치 오하시스처럼. 그 옆으로 눈 녹은 물이 흐르는 작은 개천이 흐르고 있다. 사람이 살기 시작한다.
고도를 거의 낮춘 것인가? 계곡의 작은 개천은 어느 덧 큰 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강 옆으로 펼쳐진 녹지마다 마을이 보인다. 그렇게 한참 우리는 커다란 협곡 사이를 흐르는 강을 따라 달렸다.
오후 6시 40분. 드디어 디스킷에 도착했다. 1시 45분에 출발했으니 꼭 5시간 걸렸다. 일반적으로 6시간 걸린다고 알려졌는데 1시간을 단축한 셈. 우리 기사님이 운전을 정말 잘한다. 그 좁은 길에서도 과감히 추월을 활 정도로. 살 떨리게. 오는 길은 뭐랄까, 황량하다고나 할까? 높은 고개 하나를 넘어서 강을 따라 긴 협곡을 달려왔다고 할 수 있다. 산이든 들이든 주변은 대체로 나무 하나 없는 황량함 속에 간간히 오하시스 같은 작은 녹지가 보였다. 처음 두어 시간은 5602m의 까르둥 라를 넘고 내려오는 데 걸렸다. 내려와서부터는 눈 녹은 짙은 회색빛의 강을 따라 달렸다. 여름 햇살에 녹은 눈이 많아선지 물살은 거칠다. 어찌 보면 조금 지루할 수 있는 풍경이다. 도로는 대체로 포장이 되어 있다. 하지만 곳곳에 낙석이 있고 많이 파헤쳐져 있다.
5시간의 차에도 모두들 팔팔하다. 그러다 보니 바로 투르툭(Turtuk, 2801m)으로 가려는 차편을 알아봤다. 없다. 모두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무래도 지금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가 없어서 인 것 같다. 할 수 없이 형과 장양이 숙소를 찾으러 길을 나섰다.
오후 7시 반쯤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여자 셋, 남자 셋이라 방은 두 개를 구했다. 3명 1실 700루피. 방은 트윈이라 한 명은 엑스트라 베드. 내가 엑스트라 베드에서 자기로 했다. 아무래도 그냥 두면 막내 박군이 엑스트라 베드에서 잠을 자야할 것 같아서다. 가위 바위 보를 하기도 뭐하고. 짐을 풀자마자 근처의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 나는 고기덮밥과 만두. 가격도 저렴하고 맛있다. 라다크에 와서 처음으로 맛있는 식사를 했다. 이곳 디스킷에서. 나만 맛있어 하는 것은 아니다. 다들 맛있다고 난리다.
이곳 게하는 그다지 좋지는 않다. 따뜻한 물도 안 나오고, 전기도 저녁 늦게는 꺼버리고. 가져온 엑스트라 베드도 너무 지저분하다. 가져온 침낭을 깔고 잠을 잤다. 역시 인도에서 잠을 제대로 자려면 침낭이 필요하다. 오늘 처음으로 침낭을 써 본다.
디스킷이라는 곳은 작은 면 정도의 규모. 그래서인지 평온한 느낌. 높은 설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옆으로는 강이 흐르는 분지다. 너무 늦게 도착한 관계로 마을을 제대로 둘러보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는 완전한 무슬림 마을은 아니고 불교도인 라다크인들과 무슬림들이 비슷하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차를 타고 오면서 마을 입구 높은 언덕에 서 있는 티베트 사원인 곰파(Gompa)를 봤다. 규모가 꽤 커 보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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