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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6. 28. 수. 맑다가 저녁에 비. "라다크 레 8-2: 투르툭의 사람들"
아침에 걸었던 길로 가서 건넛마을을 들어갔다. 우리가 있는 마을보다 훨씬 큰 마을이다. 우리 쪽은 밭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 사이 집들이 있는 것에 반해 이쪽 마을은 좁은 골목길로 연결된 제법 큰 마을이다. 아무래도 투르툭의 본 마을이 이곳인 것 같다.
마을 초입에 대장간이 보였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랴 여성 일행들이 그걸 보고 들이 닥쳤다. 세 분의 할아버지 대장장이들께서 일상생활에 쓰이는 국자와 수저 등을 만들고 있었는데 너무 아름다웠다. 일일이 손으로 만드는 것을 보니 더욱. 우리 일행 중 네 명이 각자 국자, 수저, 포크, 뒤집개로 이루어진 세트를 주문했다. 여행객들을 상대로 하는 곳이 아니어서 만들어진 물건은 겨우 한 세트를 꾸릴 수 있을 뿐이다. 한 세트 당 천 루피. 대장장이 할아버지들도 신이 나신 모양이다. 손길이 빨라지신다. 이렇게 여행객들이 직접 들어와서 만든 물건들에 감탄하면서 직접 사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나 보다.
이분들과 한참을 어울려 손짓 발짓해가며 이야기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여행 구력이 높은 여자들이라 현지인들과 정말 잘 어울린다. 특히 신양의 넉살과 친화력은 가히 명불허전. 단 10분이면 상대편을 무장해제시킨다. 한 30분이면 몇 년 알고 지낸 사이로 만들어 버린다. 남자가 봐도 대단하다. 형도 즉석사진기로 할아버지들 사진도 찍어드리니 모두를 좋아 하신다. 외국인들이 대장간에 모여 있는 것이 신기한 듯 지나가는 현지인들도 구경을 한다.
형이 즉석사진기를 가지고 와서 건넛마을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인기폭발. 너도나도 사진을 찍어달라고 난리가 나서 조정하느라 힘들다. 덕분에 나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사진을 부담 없이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천진난만하고 착한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특히나 한 여자 아이가 잊히지가 않는다.
여자들이 아이들에게 과자를 나눠주려고 하자 한 대 여섯 살 되어 보이는 아이 한 명이 후다닥 위로 달려가는 것이다. 왜 그러나 의아해 하는 순간 아이가 달려갔던 곳에서 자기보다 어린 동생을 업고 뛰어 오는 것이다. 동생에게도 과자를 주려는 것이다. 너무도 급하게 달려 내려오는 바람에 넘어질까 봐 겁이 날 정도다.
나중에 신양과 장양이 말해주었는데 그 아이에게 과자를 주면 그것을 동생에게 주었다고 한다. 과자를 더 줘도 그 아이는 자신이 먹지 않고 자꾸 동생에게만 주려고 해서 신양이 그 아이의 입에 직접 과자를 넣어 주었다고 한다. 자신도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챙기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그 아이의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사진도 너무 잘 받는다. 사진만 보고 있어도 절로, 오빠 아니 삼촌 미소가 흐른다.
만나는 현지 분들께 우리가 먼저 인사를 건네니 모두들 살갑게 인사해 주신다. 우리의 인사를 받으시고 답례를 해주실 때 나오는 그 미소가 너무 아름답다.
11시쯤 다시 다리를 넘어와서 우리 마을 다리 초입 언덕에 있는 frend's cafe에서 점심 식사와 차를 했다. 이곳 음식도 맛있다. 메기라면에 공깃밥을 시켜서 먹었는데, 우리나라의 초장과 비슷한 소스가 있어서 비벼 먹으니 거의 비빔국수다. 입이 짧은 장양은 볶음국수를 시켜먹었는데 그것도 맛이 있단다. 가격도 저렴하고. 레(Leh)에서 루브라 밸리(Nubra Valley)를 먼저 다녀온 친구들이 말하길 투르툭은 먹을 것도 없고 가격도 비싸다고 했는데, 이게 웬걸 경치 좋은 카페에 맛있는 음식 그리고 가격도 레보다 훨씬 착하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서 나와서 새벽 산책처럼 아랫마을을 구경하러 다리를 건너는데 어린 소녀들이 무거운 짐을 나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살펴보니 점심을 먹은 카페 아래에 작은 구멍가게가 있었는데 다리 건너로 차가 와서 상점 물건을 내려놓은 모양이다. 우리 마을로는 차가 들어올 수가 없어서 그렇게 다리 건너에 물건을 풀어 논 것이다. 그 물건들을 아주머니 2명,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녀 1명, 유치원생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 1명, 그리고 진짜 서너 살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 아이가 나르고 있는 것이다. 남자라고는 상점주인 1명인데 그 마저도 아저씨는 상점 물건을 정리하시느라 정신이 없다.
다리를 건너가 보니 다리 아래에 물건이 잔뜩 쌓여있다. 매우 무거워 보이는 것도 보인다. 어린 아이들이 나르는 것이 너무 안 돼 보여서 남자들이 도와주었다. 서너 번씩 왔다 갔다 했는데 너무 무거워서 고산증 올 뻔. 짐을 나르던 아이들이 처음에는 무슨 일인가하고 쳐다보다가 물건을 들어다 상점에 넣어주는 것을 보고는 고마워하는 표정이다. 물건을 놓고 되돌아오면서도 중간에서 아이들이 지고 있는 물건을 대신 받아서 들고도 왔는데 어린 여자 아이들은 너무도 좋아한다. 상점주인 아저씨 가족들인 것 같은데 어린 아이까지 제 몫을 하려는 모습이 너무 기특하다. 서너 살배기 어린 여자 아이가 자기 반만 한 박스를 등에 지고 나르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애처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뒤뚱거리는 뒷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짐을 들어주니 그 좋아하는 모습이란!
아침에 마신 짜이집에서 모두들 짜이 한 잔. 기분 상쾌한 투르툭의 산책으로 모두 기분이 좋아 보인다. 무뚝뚝해 보였던 사람들의 미소와 친절을 느껴서일까? 천진난만하고 착한 아이들의 미소를 보아서일까? 10루피 한 잔의 짜이지만 마음은 훨씬 푸근하고 감미롭다. 그제, 어제 힘들게 왔던 여정은 어느새 잊혀졌다. 그래서일까 원래 내일 가기로 했던 여자 일행들도 모레 가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생각 같아서는 한 열흘쯤 머물고 싶은 그런 곳이다.
열흘 이상은 조금 답답할까? 좁은 계곡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가끔씩 조금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무래도 탁 트인 넓은 곳이 좋다. 불교탑들로 유명한 미얀마 바간(Bagan)과 크메르 유적으로 유명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Angkor Wat) 중에서 난 바간이 더 좋았다. 대부분들 앙코르와트의 웅장함과 화려함을 더 좋아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내가 바간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탑들에 있지 않다. 탑 1층에만 올라가도 탁 트여 보이는 그 너른 평야의 상쾌함이 좋았다. 반면에 앙코르와트도 평지에 있긴 하지만 짙은 밀림 속에 있어서 그런지 제법 높게 올라가도 시야가 짧아서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높은 고산으로 둘러싼 이곳 계곡의 생활이 평온하고 아름답다.
아침의 그 가파른 꼬부랑길을 올라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대충 빨래, 샤워를 하고 사온 수박을 먹으며 수다를 풀었다. 이곳에는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샤워가 힘들었는데, 막상 한낮이 되니 옥상 물탱크의 물이 뜨거운 햇살에 데워져서 미지근해 있었다. 충분히 샤워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빨래는 숙소 앞 도랑 앞에서 했다. 길어온 물을 가지고 빨래를 하는데 장양과 신양이 엄청나게 잔소리를 해댄다. 여행 다닌 지가 몇 년인데 빨래 하나를 제대로 못하냐고. 아! 이 다혈질들의 여성들이여. 장양은 나와 동갑내기 여행객. 신양은 나보다 조금 어리긴 하지만 모두들 한 자락씩 하는 여행 구력을 지닌 여자들이다. 둘 다 역마살이 끼여서 시집을 못 간 듯. 하지만 성격들도 한 몫을 한 것 같다. 남 빨래하는 것을 가지고 그 엄청난 잔소리를 쏟아내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래도 이들 덕에 편하고 재밌게 여행을 하고 있다. 좋은 여행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여행의 축복 중에 축복이다.
대장간에 예약한 수저 세트를 찾으러 건넛마을에 갔다. 오후 5시에 오라고 해서 시간을 맞춰 왔건만 아무도 대장간에 안 계신다. 근처에 계시던 분께 여쭤봤더니 기도하러 갔는데 곧 온다고 하신다. 아까 물건을 넣어 준 구멍가게에서 산 과자를 먹으며 대장간 앞에서 기다렸다. 조금 있으니 정말 대장장이 할아버지들이 오셨다. 그런데 웬걸 아직 만들지 못하셨단다. 다섯 세트의 주문 물량이 처음이셨던 것일까? 어차피 주로 주문한 여자들이 모레 갈 예정이기 때문에 천천히 내일까지 만들어 달라고 부탁드렸다. 손으로 직접 하나하나 만드는 핸드 메이드. 재촉해봐야 품질만 떨어질 것임은 뻔하다. 그래도 만들어진 것을 본 장양과 신양은 만족이다.
늦은 오후가 되니 점차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들녘의 일하시던 분들도 서둘러 집을 향한다. 이곳도 엄연히 메마른 라다크 지역의 일부. 특히 건기인 여름에 비는 거의 오지 않는 곳이다. 딱 비가 내릴 먹구름이지만 우리는 설마 한다. 투르툭 마을은 분명 오하시스다. 대부분이 메마른 가운데 설산의 물이 흐르는 곳에만 녹음이 지고 마을이 있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메마른 곳에 정말 비가 내릴까? 물론 레에서 비를 보기는 했다. 그러니 이곳에서 비가 내려도 잠깐 내리다 말겠지.
저녁으로 이번에는 달과 감자요리가 나왔다. 감자볶음인데 정말 맛있다. 라다크는 고산이라 감자가 유명하단다.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라 우리나라에서도 강원도 등지의 고랭지 지역에서 많이 자란다. 그래서 라다크 사람들은 감자를 많이들 먹는다. 우리도 물론이고. 오늘도 우리는 배부르게 먹었다. 이곳 숙소는 비록 잠자리는 불편해서 그렇지 그 외 모든 것은 만족이다. 특히 음식. 식사를 하는 곳은 야외 마당 한편에 만들어진 테이블에서다. 주변의 풍경을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 천장은 얇은 가지로 엮은 발이 쳐져 있다.
저녁을 먹고 차를 한 잔 하고 있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다. 누브라 밸리에서 비다. 비가 귀한 이곳 투르툭에서 비와 차를 함께 하고 있다. 이 또한 색다른 경험이다.
비가 자자 들어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먹구름이 끼어서 어제 보았던 별들은 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선선한 바람에 모여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꽃을 피운다.
9시에 바로 취침이다. 전기가 귀한 곳에서는 잠이 빠르다. 불빛이 흐려서 책을 보기도 어렵고, 와이파이도 안되니 인터넷도 불가능하다. 문명의 이기가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곳. 우리의 생활은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 생활이 단순해지면 생각도 단순해진다. 우리가 하는 생각의 대부분은 쓸데없는 잡념이나 걱정. 생각이 단순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스트레스가 적어진다는 뜻이리라. 현대 사회의 과다한 정보와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단순한 삶으로 돌아가 보는 것 또한 여행이 주는 중요한 한 가지 선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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