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6. 29. 목. 비. "라다크 레 9: 빗속의 누브라 밸리, 투르툭"
5시 30분. 새벽에 일어났는데 여전히 흐리다. 하늘은 온통 짙은 먹구름. 오늘도 송 선배랑 아침 산책을 나섰다. 오늘은 반대로 아랫마을로 내려가서 차가 다니는 큰 길을 따라 북상을 해보기로 했다. 급경사의 꼬부랑길을 내려가서 좌회전. 찻집에서 짜이 한 잔을 하고 큰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마을을 빠져나가자마자 군부대가 있다. 그리고 한참을 강을 따라 만들어진 도로를 걸었다. 조금은 지루할 수 있는 길.
한편으로는 바위산이, 다른 한편으로는 슈오크(Shyok) 강의 거친 물살이 따라 온다. 설산이 녹아서 흐르는 물, 그래서 그런지 누런 회색빛. 물살도 거칠다. 중국 티베트에서 흘러나와 이곳을 거쳐 파키스탄으로 들어가 인더스 강과 합류한다. 이 강 역시 인더스 강의 한 지류. 우리는 지금 인류 문명의 한 꽃을 피웠던 그 역사적 강의 한 지류를 따라 걷고 있는 것이다. 이 마을은 얼마나 되었을까?
슈오크 강과 마을을 가로 지르는 계곡물이 만나는 곳은 푸른 물과 누런 회색물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길을 한참 따라 가다보니 저 멀리 강 건너 녹지와 연결되는 다리가 보였다. 슈오크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다. 그곳까지 가보기로 했다. 길이 좋다 보니 가까이 보여도 한참이다. 겨우 다리 근처에 다다르니 이곳은 군부대 지역이다. 다리 초입에 초소도 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군인은 없다. 다리 입구에 표지판이 있다. 다리 건너가 군사격장이라는 표지다. 다리 건너 푸른 녹지 지역이 군사지역인가 보다.
그래도 다리를 건너봤다. 폭은 2미터 남짓의 나무다리인데 좌우에 잡을 수 있는 손잡이가 없다. 밑이 보이지 않는 짙은 회색빛의 거친 물살 소리와 함께 다리가 흔들린다. 처음에는 앞만 보고 건넜다. 송 선배도 건넜다. 건너자마자 보이는 것은 밭이다. 우리를 뒤이어 두 명의 현지 여성분이 건너왔다. 우리를 보더니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서 어서 돌아가라고 한다. 역시 군사지역인가 보다. 이분들은 군의 허가를 받아서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 분들인가 보다. 되돌아서 강을 건넜다. 한번 건너 봤다고 다리 중간에서 사진 찍을 여유도 생겼다.
돌아가는 길이 문제다. 이미 7시 반을 넘은 시각. 숙소까지 돌아가는데 거의 1시간은 걸릴 텐데. 아무래도 8시 아침식사 시간에 대긴 어렵다. 돌아가는 길에는 무리를 지은 군인들과 자주 만났다. 조깅을 하는 무리도 있다. 인도 군인들에게는 좀 미안한데 좀 당나라 군대 같다. 조깅을 하는데 오와 열도 맞지 않고 뒤에서는 제각각 난리다. 우리가 인사를 하니 서로들 답례를 해준다. 고맙기 한데 현역병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인 예비군의 모습이다.
8시를 20분 넘겨 숙소에 도착했다. 우리 때문에 30분 아침을 늦추었다고 한다. 미안하다. 어제와 같은 짜파티에 계란프라이, 그리고 차 한 잔. 식사를 하고 있는 중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곧 멈추겠지 했는데 계속 내린다. 빗방울도 굵어진다.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 시간을 보냈다. 이런 곳에서 비가 내리니 할 일이 없다. 침실이 깨끗하다면 침대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거리며 비 내리는 풍경을 감상할 터인데 그러기에는 이곳 침실 상태가 너무 열악하다.
드디어 박군이 이곳에서 벌레에 물렸다고 한다. 빈대인지는 모르겠지만 침낭이 없었다면 우리도 무언가에 박군처럼 물렸을 것이다. 박군은 레에서 숙소를 잘못 잡아서 빈대에 엄청 물렸다. 지금까지도 온 몸에 약을 바르면서 가려움을 참고 있는데 또 물렸다. 아직 빈대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어제 대장간에서 12시에 오라고 해서 나와 박군, 신양이 대표로 갔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박군은 방수옷도 없어서 내가 가져온 1회용 비옷을 주었다. 덩치가 커서 비옷이 작아 보인다. 대장간에 갔더니 아직도 작업 중이시다. 대부분은 만들어졌는데 포크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리가 그냥 가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자꾸 약속을 어기시나. 그래도 만들어진 것은 예쁘다고 신양은 난리다. 다시 5시로 약속을 잡고 돌아섰다.
다리 위 friend's cafe로 와서 천막에 씌어져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짜이 한 잔.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나머지 일행이 30분이 넘어도 올 생각을 안 한다. 내가 부르러 가니 모두들 낮잠 삼매경이다. 같이 와서 점심을 했는데 다른 음식들도 맛있다. 싸기도 하고. 이곳에 와서는 돈 쓸 일이 거의 없다. 무슬림 마을이라 술도 아예 없고.
2시쯤 카페에서 나와서 각자 행동으로. 나와 신양은 다리 건너 위쪽으로 마을 사이를 흐르는 계속을 따라서 올라가 보기로 했다. 형과 송 선배는 지난 번 언덕 밑의 전망 좋은 카페로 간다고 한다. 비는 계속 내리고 약간 경사진 비탈길을 계속 올라가도 마을은 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아침에 걸었던 차도보다는 산책하기가 훨씬 좋다. 끝없이 이어지는, 나름 잘 닦인 길을 보면 어딘가에 또 다른 마을이 있어 보이지만 오늘은 적당한 선에서 돌아서기로 했다. 비도 오고, 길도 계속 오르막길이라 힘들다. 돌아갈 때는 모래와 자갈길이 무척 미끄러웠다.
계곡 상류에는 작은 나무다리가 있는데 이곳을 건너야만 한다. 근데 난간이 없는 나무다리인데다가 비가 와서 나무가 미끄러운 상태에서 물살이 거센 계곡을 건너자니 보기보다 만만치가 않다. 규모는 작지만 아침에 건넌 슈오크 강의 다리 못지않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좀 쉬다가 이내 카메라를 꺼내 들고는 마을 산책을 나갔다. 하지만 이내 돌아섰다.
비가 만만치 않게 내린다.
저녁을 먹으면서 내일 레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좀 더 있을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비가 계속 내릴 것 같아서 돌아가는 길이 걱정되었다. 올 때 이미 봤지만 이곳 길은 협곡에 대충 만들어진 길이라 비가 오면 곳곳에 산사태의 우려가 크다. 멀쩡한 날씨에도 곳곳에 굴러 떨어진 돌덩어리를 자주 만났다. 어제 오늘 내린 비에도 길이 끊긴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 고립될 수도 있어서 일단 철수하기로.
저녁을 먹고 짐을 챙겼다.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겨우 초벌 구경을 했는데. 사진도 제대로 못 찍었고, 제대로 감상도 못했다. 제대로 멍 때리지도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전망 좋은 카페를 찾아 놓고도 다시 가보질 못했다. 잠자리와 교통편만 좀 더 편하다면 일주일이고 이주일이고 더 머무를 텐데. 그래야 제대로 이곳을 느끼고 나를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한편 생각해보면 잠자리와 교통편이 편해진다면 이곳은 이미 관광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수많은 여행객들로 북적거리는.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는 것도 나쁘진 않다. 언제 다시 올지는 모르겠지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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