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Armenia)의 역사에 울고, 예술에 취하고
숙소에 있는 친구와 아침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이 훌쩍 갔다. 그제, 어제 숙소에 이 친구와 나만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이 친구의 나라는 슬로바키아. 예레반(Yerevan)에는 아르메니아(Armenia) 대중교통 IT 관련 프로젝트 때문에 왔다고 한다. 1년 가까이 예레반에서 일했고, 이번 달이 마지막 달이라고 한다. 대중교통 관련 앱은 현재 테스트 중이라고.
대중교통 관련 IT 일을 해서 그런지 도시, 건축, 디자인 등에 관심이 많은 친구다. 여행부터 시작해서 캅카스(영어명 코카서스) 역사와 정치, 대중교통 그리고 중국과 인도 등 다양한 방면에 걸쳐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오늘 아침에는 이 친구가 아르메니아 식 커피를 만들어 주었다.
끓인 물에 커피를 넣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해 아르메니아 식은 뚜껑 없는 작은 주전자에 물과 커피를 넣은 다음에 끓인다. 물이 끓어오르면 잠시 들어서 거품을 잠재우고 다시 끓이기를 몇 번 반복한 다음에 커피를 마신다.
아르메니아 식 커피는 커피 가루가 물에 완전히 녹지 않는다. 커피를 다 마시고 나면 마치 미숫가루 남는 것처럼 커피 가루가 컵 바닥에 남는다. 전에 아르메니아 커피를 마실 때 물이 덜 뜨겁거나 잘 젓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는데 원래 그런 모양이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이 가루까지 다 마신단다.
아르메니아 역사 박물관(History Museum of Armenia)
덕분에 12시 넘어 숙소를 나선다.
오늘은 공화국 광장(Republic Square)에 있는 아르메니아 역사 박물관(History Museum of Armenia)에 갈 생각이다. 오전에 역사 박물관에 갔다가 오후에는 아르메니아 대학살 추모관(Armenian Genocide Memorial & Museum)에 갈 생각이었는데 아침부터 슬로바키아 친구와의 이야기가 길어졌다. 대학살 추모관은 내일 가기로.
아르메니아 역사 박물관은 공화국 광장의 가장 중앙에 있는 건물이다. 처음 공화국 광장에 갔을 때는 이 건물이 무슨 건물인지 궁금했었는데 박물관 건물이다.
어제 갔던 마테나다란(Matenadaran) 고문서 박물관도 그러더니만 이곳도 비수기라 그런지 전체 3층에서 1, 2층은 리뉴얼 공사 중이라 2층 전시관만 개관을 한다고 한다. 제값을 다 받던 마테나다란과는 달리 원래 입장료 2000드람에서 1000드람만 받는다. 팜플렛을 보니 다행히 2층이 핵심 전시관으로 보인다. 중세에서 현대까지의 역사를 전시한다.
아르메니아에 대한 기본적인 역사를 잘 알고 있다면 이해가 더 빠르고 좋겠지만 지금 내가 아는 아르메이나 역사는 기본적으로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가 대부분이다. 인터넷 정보만으로도 개략적인 이해는 가질 수 있겠지만 박물관의 조금 깊게 들어가는, 영어로 된 설명을 바로 바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특지 옛 지명에 대한 이해가 낮아서 영어 설명문을 읽다보니 바로바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아침에 슬로바키아 친구와도 동감한 이야기지만 아르메니아의 역사는 한국의 역사와 많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처참한 역사일지도 모른다.
고대 아르메니아는 로마와도 잠시 힘을 겨룰 정도로 강한 나라였다. 그러나 이후 아르메니아는 주변의 강국들에게 오랫동안 지배를 받는다. 천 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페르시아, 셀주크투르크, 몽고, 오스만 제국, 페르시아 제국(이란), 러시아 그리고 구 소련에 의해 지배를 받아왔다.
역사 박물관에서 아르메니아의 근현대 역사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있었던 대학살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 터키, 정확히 말하면 오스만 제국에 의해 주도된 학살과 강제 이주로 인해 백만 명 이상의 아르메니아인이 죽었다고 한다.
강제 이주 전에 오스만 제국은 싸울 수 있는 젊은 남자나 엘리트들은 학살하고 노약자와 아이들 그리고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메마른 시리아 사막으로 강제 이주를 시켰는데 이주 시와 후에도 그들에게 물과 식량을 주질 않아서 대부분 아사했다고 한다. 처참한 학살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터키는 대학살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과정에 일어났던 불미스런 사건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아르메니아인은 천 년을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다른 나라들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자신들의 고유한 정체성과 문화를 잊지 않고 지켜왔다고 한다. 아르메니아인을 유대인과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현재 아르메니아 영토 안에 있는 아르메니아인들보다 해외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세 배 가까이 많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아르메니아 역사에는 영광보다 아픔과 비애가 더 많아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숱한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정체성과 문화를 지켜온 강인한 민족정신이 깔려 있음을 느낀다. 오스만 제국이 아르메니아인에 대해 이토록 잔인한 대학살을 일으켰던 이유도 그들의 지치지 않는 독립 의지와 저항 정신에 있을 것이다.
아르메니아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menia)
역사관을 나서는데 바로 위층에 다른 전시관이 보인다.
뭔가 하고 들어가 보니 아르메니아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menia)이란다. 같은 건물에 역사 박물관과 미술관이 같이 있다. 입장료는 1600드람. 다리가 좀 아프긴 하지만 들어가 보기로 한다. 박물관 두 곳을 연속으로 보는 것은 좀 힘들긴 하지만 이렇게 붙어 있으니 나중에 다시 오는 게 더 번거로워 보인다.
박물관이나 전시관을 둘러보는 게 생각 이상으로 피곤한 일이다. 그것도 몸과 머리가 모두 피곤한 노동이다. 일단 2~3시간 동안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입력되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박물관 하나 신경 써서 둘러보고 나면 머리가 멍해진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내내 서서 걸어 다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리도 무지 아프다.
표를 사고 나니 직원이 전시관이 7층으로 되어 있으니 맨 위층에서부터 내려오면서 보라고 말을 해준다. 역사 박물관도 3층으로 되어 있는데 무슨 미술관이 7층이란 말인가. 벌써부터 다리가 아파 오는 것 같다.
맨 위층에서부터 다양한 그림과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위층에는 주로 유럽 다른 나라의 예술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이 예술관에서 수집한 것으로 보인다. 고대 그리스의 예술품부터 이탈리아, 네덜란드, 러시아와 소련 예술품까지 있었다. 지하 전시관에는 일본과 중국, 이란 등 아시아 예술품도 전시되어 있었다.
그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아르메니아 예술인들의 미술품과 예술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실의 설명문들을 읽어보니 아르메니아 문화예술의 부흥은 러시아 지배 시기부터 시작한다. 그 이전은 오랜 시간 이슬람 문화권인 페르시아와 오스만 제국의 지배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에 기초하는 그들의 문화예술을 발전시킬 수가 없었다고 한다.
천여 년의 기간 동안 동화되어 사라지지 않은 것만도 기적 같은 일이다. 더욱이 오스만 제국의 대학살이 진행된 2천 년대 초반에는 많은 아르메니아 예술인들이 자의든 타의든 고국을 떠나 해외를 떠돌 수밖에 없었다고 하니 더욱 그렇다.
그나마 러시아의 지배는 불행 중 다행일지도 모른다. 비슷한 유럽 문화권에 속하는 국가이니 말이다. 러시아와 소련 지배 아래에서 해외를 떠돌던 예술인들이 하나둘 고국으로 둘아 오기 시작하였고, 이들이 아르메니아 예술을 꽃피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러시아의 지배에 있다 보니 많은 예술인들이 모스크바로 유학을 많이 갔다고 한다. 전시된 예술가들의 이력을 읽어보면 모스크바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많았다.
한 층만 개관하고 있어 전체를 말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역사관의 전시물은 빈약하다는 느낌을 받은 반면 미술관은 힘들고 지겨워질 정도로 충실하다는 느낌이다. 겨우 경상남북도를 합한 면적에 불과한 작은 나라에 이 정도 규모의 미술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역시 문화예술의 나라답다는 생각이다.
많은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으니 아르메니아 예술에 관심이 있거나 예술 자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꼭 들려보길 바란다. 입장료는 충분히 뽑을 수 있다고 본다. 예술에 문외한인 나도 다 보고 나니 무언가 충만한 느낌이 든다. 머리와 다리는 아프지만.
예레반 주변가 산책
두 박물관을 나와서 예레반 주변가를 좀 걷는다.
중심가는 너무 현대화되어 있어서 진정한 아르메니아의 모습을 보기 힘들다. 바쿠에서 본 것과 같은 올드시티는 아니더라도 예레반의 옛 모습을 보길 바랬는데 그다지 성에 차지는 않는다.
시 중심을 감싸고 있는 도로변에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모여 있는 곳을 발견했다.
한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아르메니아 음식을 시켰는데 이것도 케밥이다.
생맥주가 있어서 생맥주에 케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많이 싸지는 않지만 그래도 중심가보다는 났다. 이번 여행 들어서 생맥주는 처음 마시는 것 같다.
숙소에 돌아와 보니 내 방에 대만인 두 명이 와 있다.
도미토리 방을 혼자 독차지 한 것은 이로써 3일 만에 끝났다.
by 경계넘기.
'세계 일주 여행 > 아르메니아(Armenia)' 카테고리의 다른 글
D+110, 아르메니아 예레반 6: 예레반(Yerevan) 의 시장들(20190304) (0) | 2020.07.30 |
---|---|
D+109, 아르메니아 예레반 5: 20세기 첫 대학살의 희생자, 아르메니아인(20190303) (0) | 2020.07.29 |
D+107, 아르메니아 예레반 3: 예레반 중심가 산책 (20190301) (0) | 2020.07.23 |
D+106, 아르메니아 예레반 2: 눈 내리는 예레반(Yerevan)(20190228) (0) | 2020.07.23 |
D+105, 아르메니아 예레반 1: 아제르바이잔에서 조지아 거쳐 아르메니아로(20190227) (0) | 2020.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