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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조지아(Georgia)

D+134, 조지아 바투미 3: 이름 따라 가는 흑해(Black Sea)의 운명(20190328)

경계넘기 2020. 8. 7. 15:09

 

 

이름 따라 가는 흑해(Black Sea)의 운명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하루 종일 내린다. 이번 주 거의 매일 비라고 하더니만 이제 시작인가 보다. 그래도 전망 좋고 따뜻한 방에서 흑해에 내리는 비를 보고 있으니 운치가 있다.

 

흑해(Black Sea)란 이름은 바다 색깔이 검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곳에 안개가 많이 끼고, 물살이 거세서 배들이 많이 난파되기 때문에 부쳐진 이름이라고 한다. 죽음 또는 공포의 바다라는 의미다.

 

하지만 비오는 흑해의 바다도 잔잔하기만 하다. 몽돌해변에 몰아치는 파도는 어제보다는 다소 거칠어졌지만 조금만 눈을 들어 먼 바다를 바라보면 잔잔하기 그지없다. 흑해의 어디가 안개가 많이 끼고 물살이 거친 것일까?

 

 

 

흑해의 자연조건이 거친 것일까?

아니면 흑해를 둘러싼 인간의 역사가 거친 것일까?

 

흑해는 근현대에 들어서 거친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특히 흑해 북부 해안,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비쭉 나온 크림 반도는 부동항을 얻기 위한 러시아의 남하정책으로 인해 수많은 전투의 현장이 되었다. 러시아의 바다는 겨울에 모두 얼어버려서 바다로 나갈 수가 없었다. 자국의 세력을 확대하려는 러시아에 있어서 이것은 치명적인 한계였다.

 

15세기 말인 1492년 콜롬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래 유럽의 열강들은 앞다투어 해양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17, 18세기에 들어서는 해외에 식민지를 개척하려는 유럽 열강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제국주의 경쟁에 뒤늦게 뛰어들려는 러시아에게 부동항은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었다. 부동항이 없다는 것은 겨울에 전쟁을 할 수 없다는 것으로 해외에 식민지를 개척한다고 하더라도 겨울철에는 그곳에 병력과 병참을 지원할 수 없다. 부동항을 확보하려는 러시아의 욕망은 서쪽으로는 발틱해(Baltic Sea), 동쪽으로는 시베리아 그리고 남쪽으로는 흑해로 이어졌다. 그 중에서도 그나마 가장 만만한 곳이 17세기 이후 세력이 기울기 시작한 오스만 제국이 장악하고 있던 흑해였다.

 

평온하던 흑해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1768~1774, 1787~1792년에 벌어진 오스만 제국과의 두 차례 전쟁을 통해 러시아는 흑해 연안과 크림반도를 장악하면서 드디어 흑해로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흑해의 어두운 전운은 이제 시작이었다. 러시아의 진출은 흑해 운명을 그 이름만큼이나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흑해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러시아는 1853년 오스만 제국 내의 러시아 정교도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러시아와 오스만 경계에 있는 도나우강 연안 공국(지금의 루마니아 지역)을 점령하였다. 이에 반발한 오스만 제국이 러시아에 강력히 대응하고, 영국과 프랑스가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서 오스만 제국을 지원하면서 흑해는 또 다시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이 전쟁이 바로 그 유명한 크림전쟁(Crimean War)이다.

 

지금도 크림반도는 유럽의 화약고다.

 

소련 붕괴 후 우크라이나에 편입되었던 크림반도에 대해 2014년 러시아가 다시 강제 합병하면서 크림반도는 다시 국제 문제로 불거졌다. 러시아의 강제병합에 반발하는 우크라이나, 서방 국가들과 러시아 대립하면서 흑해에는 다시 어두운 그림자가 깔리고 있다.

 

이름이 그 사람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흑해는 그 이름값을 톡톡히 받고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비오는 흑해의 풍경은 정말 차분하다.

 

내 발코니에서 겨우 2~300미터 떨어져 있을라나. 하지만 파도 소리조차 크게 들리지 않는다. 발코니에서 느끼는 바람이 무척 거센데도 말이다. 흑해는 자연적 원인이 아니라 인간 역사의 원인 때문에 흑해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럼 흑해의 평화를 위해 이름을 바꾸어야 하나!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