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Black Sea)의 일몰
아침부터 똥개 훈련이다.
핸드폰을 두고 온 줄 알고 지하철역까지 들어갔다가 다시 숙소에 왔다. 숙소에 와서 확인해보니 가방 깊숙한 곳에 잘 있다. 숙소는 한참 비탈길을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비까지 오는 후줄근한 날, 이른 아침부터 운동 제대로 했다. 그래도 숙소에 놓고 온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가방에 챙겼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는다.
오늘로서 디두베(Didube)역은 세 번째다.
바투미(Batumi) 가는 버스가 이곳에서도 출발하기 때문이다. 중앙역에서 탈까 하다가 그냥 익숙한 곳으로 왔다. 역으로 나가니 역시나 삐끼들이 잡는다. 바투미로 간다고 하니 버스 있는 데로 안내한다. 바투미라고 쓰여 있는 미니버스. 그런데 아무래도 정식 버스가 아닌 것 같다. 바로 돌아선다.
카즈베기(Kazbegi) 행 버스를 탔던 터미널로 간다.
그쪽에서 기사들에게 물어보니 윗길로 쭉 더 들어가란다. 알려준 대로 들어가니 거기에도 터미널이 있다. 바투미 가는 미니버스가 여러 대 서 있다. 시간대 별로 가는 모양이다. 역시 삐끼들 말은 믿을 필요가 없다. 일단 삐끼들이 있는 곳을 벗어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제대로 알려 준다.
9시에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탄다.
시간이 되니 사람이 다 차지 않아도 버스가 출발한다. 요금은 20라리. 티빌리시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스탈린의 고향 고리(Gori)까지는 길이 우리의 고속도로 수준. 이런 정도의 길이라면 바투미에도 금세 도착할 것 같다는 생각도 잠시, 고리를 지나자마자 길은 다시 2차선 지방도 수준으로 떨어진다.
고리 지나면서부터는 날씨도 화창해지기 시작한다. 날씨가 좋아지니 내 기분도 같이 좋아진다. 창밖의 풍경도 잔잔하니 좋다. 티빌리시에서 흑해 연안까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길은 양편으로 멀리 높은 설산들이 쉬지 않고 따라 온다. 그 사이로 너른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 길은 평야 사이를 달린다. 북쪽으로는 코카서스 산맥일 것이고, 남쪽으로는 터키와 조지아 국경에 걸쳐 있는 산맥인 것 같다. 설산이 보이는 것으로 봐서는 양쪽 다 꽤 높은 산들로 보인다.
흑해(Black Sea)가 보이기 시작한다.
동쪽을 향해 한참을 달리던 버스가 남쪽으로 방향을 튼다 싶더니만 차창 밖으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흑해다. 가끔씩 바짝 해안가를 따라 달리며 흑해를 보여주던 버스는 정확히 오후 3시에 바투미에 도착한다. 정확히 6시간 걸렸다.
버스는 제대로 로컬 버스다.
중간 중간에 사람들을 태우고 내렸다. 바로 온다면 한 5시간 정도 거리. 가끔씩 기찻길과 나란히 달리기도 한다. 기차나 버스나 길은 비슷해 보인다. 듣기로 기차는 5시간 걸린다고 한다.
버스에서 내려서 확인해보니 숙소까지는 6km가 조금 넘는다. 걸어서 한 시간 반 코스. 걷기로 한다. 날씨도 좋고, 시간도 넉넉하니. 배낭 메고 숙소 가는데 한, 두 시간 걷는 것은 기본이다.
바투미는 트빌리시와 또 다르다.
오히려 바쿠와 많이 닮은 모습이다. 잘 정리되어 있는 것도 그렇고, 해변 쪽으로는 제법 잘 디자인된 큰 건물들도 많다. 바다를 끼고 길게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터키와 가까워서 그런지 터키 레스토랑이나 카페가 많다는 것도. 그래서 그런지 낯설지가 않고 친숙하다.
바투미에서는 숙소로 아파트를 얻었다.
숙소는 사진에 나와 있는 것과는 조금 차이가 나지만 나름 훌륭했다. 그 중에서도 19층 높이에서 바다가 바로 보이는 발코니는 압권이다. 작은 스튜디오 식 아파트. 가격은 부킹닷컴 할인을 받아서 35라리. 아파트라 그 안에 취사 시설과 세탁기도 있다. 물론 취사도구도 완비되어 있다.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는 조금 비쌀 수도 있지만 전망과 개인방 그리고 취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도미토리보다 훨씬 경제적이지 않을까 싶다.
아파트에 짐을 풀자마자 호스트가 알려준 근처 마트로 가서 먹거리와 와인 그리고 맥주를 산다.
발코니에 나와서 방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그 햇살에 반짝이는 흑해를 바라본다. 사가지고 온 맥주를 마시며. 그저께까지는 하얀 설산들을 원없이 바라봤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고 있다. 심신이 편해진다.
영어로도 Black Sea인 흑해는 왜 흑해인 것일까?
문득 드는 생각이다. 아무리 봐도 바다 색깔은 한국의 여느 바다와 같이 푸르다. 물빛이 살짝 검지 않을까 싶었던 생각은 부끄럽게 지운다.
이내 일몰이 진다.
내 방이 남서쪽을 향하고 있는 것 같다. 발코니에서 보면 해가 내 왼편쪽으로 떨어진다. 맑은 날이라 일몰도 선명하다. 어느새 그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다. 제대로 오메가다. 한 점 가리는 것 없이 해가 바다로 떨어진다. 일출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빨갛게 하늘을 물들이며 서서히 바다 위로 다가가던 태양은 어느 순간 바닷물로 뚝 떨어진다.
일단 수면과 만난 태양이 수면 아래로 사라지기까지는 눈 깜박할 사이다. 붉게 물든 태양이 검게 물든 바다로 빠져 드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오자마자 흑해의 아름다운 일몰을 본다.
그것도 숙소 발코니에서 정말 감사하다.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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