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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조지아(Georgia)

D+130, 조지아 카즈베기 3: 눈 내리는 카즈베기(Kazbegi)(20190324)

경계넘기 2020. 8. 6. 11:43

 

 

 눈 내리는 카즈베기(Kazbegi)

 

 

아침부터 눈이다.

싸락눈임에도 제법 쌓인 것을 보니 저녁 내내 내렸나 보다.

 

일행이 깨기 전이라 샤워를 하고 잠시 글을 쓰고 있다. 방바닥에서 자고 있던 고양이가 어느새 내 침대를 차지하고 있다. 숙소에서 키우는 고양이인데 언제 우리 방에 들어왔는지는 모른다.

 

 

 

설국(雪國)이 따로 없다.

 

문득 창밖을 보니 싸락눈이 어느새 굵직한 함박눈으로 변해 있다. 눈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굵어지더니만 어느새 펑펑 쏟아지기 시작한다. 금세 쌓인 눈의 두께가 밤새 내린 싸락눈의 두께를 우습게 덮어 버린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조지아 시골마을이 눈에 덮이니 마치 동화 속으로 들어온 것 같다. 그림이나 TV에서 보던 크리스마스 풍경.

 

 

 

이번 여행은 작년 11월 중순에 시작했다.

 

중국에서부터 시작을 했는데 용케 겨울을 피하면서 이동했었다. 12월 중순 중국 대부분의 지역이 완연한 겨울에 들어갈 무렵 난 잽싸게 윈난성(云南省)으로 넘어갔다. 그곳은 남쪽 고원지대로 사시사철 따뜻한 곳. 그리고 베트남으로 들어가서 동남아를 여행했기에 눈을 볼 기회는 없었다. 그렇게 겨울을 보내나 했는데....

 

코카서스(Caucasus)에 들어와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겨울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2월 중순 두바이(Dubai)에서 들어간 아제르바이잔의 바쿠(Baku)에서 처음 눈이 내리는 것을 보았고, 아르메니아 예레반(Yerevan)에서는 함박눈이 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 조지아의 카즈베기에서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것을 보고 있다. 그것도 하루 종일. 종일 함박눈이 내리니 쌓인 눈의 깊이가 30~40cm는 거뜬한 것 같다.

 

밖에 나가서 식사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 오후에 친구를 숙소에 남겨두고 비상식량이나 사러 마트에 나왔다. 골목길의 눈은 무릎 높이까지 올라온다. 다른 사람들이 지나간 자리를 겨우 찾아 밟으면서 나아간다. 이런 눈길을 걸어본지가 언제인지. 창밖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나와 보니 눈이 얼마나 많이 내렸는지 더 실감이 난다. 작은 시골마을은 옛날 어린 시절에 읽었던 동화 속의 그 마을이다.

 

골목길을 뚫고 차가 다니는 조금 큰길로 나서니 차량 한 대 정도 지나갈 넓이의 길이 나있다. 제설도 하고, 차도 지나다니니 눈이 녹은 것 같다. 여기서부터는 수월하게 마트에 갈 수 있다.

 

 

 

마트에 사람이 많다.

 

어디 갈 수 없고 실내에만 있어야 하니 사람들이 음식물을 사러 나온 모양이다. 이미 동이 난 매대도 있다. 마트에서 라면, , 사과, 와인을 좀 사고 나오면서 옆에 있는 빵가게에서 그 맛없이 크기만 큰 빵도 좀 샀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종일 방 안에서 눈 구경이나 하면서 간만에 TV 프로그램도 보고, 음악도 듣고 한다. 눈이 너무 내리고 날씨도 흐려서 마을을 둘러싼 거친 산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눈 덮인 작은 마을의 따뜻한 방에 있으니 마치 크리스마스에 유럽의 한 마을에 와 있는 기분이다. 식사도 숙소 주방에서 모두 해결했다. 저녁에는 내가 계란볶음밥을 했다. 내 한국인 여행 동료도 간만에 볶음밥을 먹는다고 좋아한다.

 

이렇게 눈 내리는 카즈베기의 숙소에서 하루를 보낸다.

 

눈은 오후 늦게야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미 눈은 엄청 쌓였고, 옆에 있는 한국인 여행 친구는 내일 저녁 트빌리시(Tbilisi)에서 타야 하는 비행기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 친구는 과연 내일 트빌리시에 갈 수 있을까?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