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성당(Gergeti Tsminda Sameba Church)에 올라가다
숙소 창문에서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성당(Gergeti Tsminda Sameba Church)'이 바로 보인다.
5,047m 카즈벡산(Mt Kazbek)이 솟아 있고 그 앞 작은 산 정상 위에 성당이 서 있다. 주변의 높은 설산들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제법 경사가 있는 산이다.
택시를 많이들 타고 간다고 하는데 걸어서 올라가기로 한다.
겨울이라 눈이 덮여 있어서 시간이 조금 더 걸리겠지만 2시간이면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 거리로 보인다. 길도 잘 나 있다고 하니 트레킹 겸 올라간다.
다리를 넘어 맞은편 마을로 들어가니 숙소가 있는 마을보다 더 시골스럽다.
소들도 많고 돌로 지은 이곳의 전통가옥들로 많다. 소똥 냄새가 진동한다. 우리네 시골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냄새라 친근하다. 퇴비를 쓰려는지 소똥을 잔뜩 모아놓은 곳도 있다.
마을 안에서 길을 잃었다. 아주머니께 길을 물으니 손짓으로 알려 주신다. 간다고 갔는데 길을 잘못 들었는지 길가로 나오신 아주머니께서 우리를 부르시더니 다시 길을 알려주신다. 어리바리 외국인들이 길을 잘 들어서나 지켜보고 계셨나 보다.
알려주신 길로 마을을 벗어나니 눈 덮인 들길이 나온다.
길도 찾기가 어렵다. 좀 당황스럽긴 하지만 믿고 나아가니 곧 차가 다니는 포장도로로 연결된다. 트레킹화를 신은 내 경우는 별 걱정 없지만 운동화를 신은 여행 친구는 눈길을 뚫고 가는 것이 쉽지 않다.
도로는 옛 대관령 길처럼 굽이굽이 S자 길이 끝이 없다.
산 중턱 이상 올라가니 도로도 눈으로 덮여서 딱 한 대의 자동차 바퀴길만 나 있다. 주변은 눈이 높이 쌓여 있어서 차가 지나가면 피할 곳을 찾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한다. 서로 마주친 차량들은 서로 비켜 주느라 애를 쓴다. 초행의 운전자라면 엄청 고생할 것 같다.
성당에 가까울수록 길은 더욱 좁아진다.
나중에는 차 한 대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높이가 2미터를 훌쩍 넘는 눈 터널이 나온다. 바닥이 빙판이라 차들이 용을 쓰고 올라가다가 사이드밀러가 눈벽에 부딪혀 박살나기도 한다. 고행 길이 따로 없다.
산을 오르는 것보다 차를 피하는 것이 더 힘들다.
정상이 가까울수록 바람도 강하게 불어서 때론 얼굴을 들기도 힘들다. 하지만 높이가 조금씩 높아질수록 펼쳐지는 전망은 그런 고생을 충분히 압도하고도 남는다. 흐린 하늘 사이로 때때로 들어나는 푸른 하늘, 그 하늘 사이로 드러나는 햇살이 설산을 비출 때면 영롱한 빛이 난다. 높은 설산들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오고 발아래로는 카즈베기 마을들이 설산 아래로 둥지를 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성당이 있는 정상부에 도착하면 너른 벌판이 나온다.
이게 산 정상인가 싶을 정도다. 마치 소백산 능선을 보는 듯한 너른 벌판 끝 언덕 위에 교회가 서 있다. 그 뒤로는 깎아지른 듯한 설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바람막이 하나 없는 정상이라 바람이 너무 세서 걷기도 힘들다.
칼바람에 모자로 가려지지 않는 얼굴은 이미 얼어서 갈라질 것 같다. 성당에 올라가는 길은 빙판길인지 사람들이 엉금엉금 내려온다. 여행 친구의 운동화로는 내려올 때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성당은 올라가지 않기로 한다. 사실 성당은 대개 비슷비슷하다. 내게 중요한 것은 성당이 아니라 성당이 있는 곳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제사보다 제밥이다.
성당 언덕 맞은편 언덕 위로 올라가니 진짜 정상부다.
주위로 설산들이 눈앞에 병풍 치듯 펼쳐진다. 장관이다. 하지만 오래 있을 수가 없다. 칼바람이 너무도 강하게 불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만 아니라면, 아니 바람만 없더라도 와인이나 커피 그리고 샌드위치 하나 담아서 온다면 금상첨화다. 멍 때리기 참 좋은 곳이다.
내려오는 길 역시 차를 피하느라 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멋진 경관을 봤다는 생각에 뿌듯해진다. 간만에 트래킹도 하고. 일행이 있어서 서로 이야기를 하며 내려오니 힘든 것도 많이 줄어든다. 눈길을 왕복해서 걸었더니 제법 시간도 걸리고 다리도 아프다. 좁은 눈길에서 차 피하느라 신경도 많이 쓰이고. 겨울이 아니라면 음악이나 들으며 오르내려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오랜만에 산을 탔더니 배가 많이 고프다. 전망이 좋았던, 어제 갔던 식당에서 소고기와 돼지고기 바비큐를 시켜 먹는다.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서.
참, 아침에는 숙소 부엌에서 솥밥을 해서 라면에 말아 먹었다. 한국식 탄수화물을 제대로 배불리 먹었다. 덕분에 눈 덮인 산도 거뜬하게 다녀왔는지 모른다.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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