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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조지아(Georgia)

D+131, 조지아 카즈베기 4: 카즈베기(Kazbegi) 설국(雪國)의 하얀 사막(white desert)(20190325)

경계넘기 2020. 8. 6. 15:22

 

 

카즈베기(Kazbegi) 설국(雪國)의 하얀 사막(white desert)

 

 

이른 아침부터 숙소에 같이 있는 한 조지아 가이드가 수심이 가득하다.

 

여행객을 이끌고 우리 숙소에 있는 친구인데 오늘 트빌리시에 갈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어제의 폭설로 길이 통제되고 있다고 한다. 제설이 되어서 길이 뚫릴 수 있을지도 문제지만 자신의 차에 월동 장비가 전혀 없다는 것도 걱정이란다. 스노우타이어도 아니고, 체인도 없단다. 길이 뚫린다고 하더라도 빙판길을 걱정해야 한다. 그의 일행들은 어제 내려갈 예정이었지만 폭설로 발이 묶여 버렸다. 오늘은 내려가야 여행객들의 일정에 그나마 큰 차질이 없는데 눈과 차가 발목을 잡고 있다.

 

가이드가 내게 이번 주 일기예보를 보여준다.

 

이곳에 내일부터 다시 눈이 내리는데 현재 예보대로라면 거의 일주일 내내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걱정 가득한 가이드의 말을 들으면서 미안하게도 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같이 온 친구만 티빌리시(Tbilisi)로 내려 보내고 난 이곳에서 일주일을 더 있어 볼까하는. 눈 덮인 이런 아름다운 설국이 어디 흔한가! 더욱이 눈이 더 내린다고 하니.

 

이른 아침에만 해도 살포시 얼굴 가린, 수줍은 처녀의 옷고름 마냥 산을 감싸고 있던 구름도 해가 완연히 일어나니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이 되었다.

 

숙소 앞에서 보이는, 5천 미터가 넘는 카즈벡 산(Mt Kazbek)에도 구름 한 점 걸쳐 있지 않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을 완연히 볼 수 있다. 마을과 산들은 눈에 덮여서 온 세상이 하얗다. 설국(雪國)이 따로 없다. 그 하얀 세상이 파란 하늘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하늘도 땅도 너무 눈이 부셔서 선글라스를 끼고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다.

 

 

 

햇살은 따뜻해서 햇살을 바로 받는 곳은 이미 눈이 녹기 시작한다.

 

지붕처마에는 이미 고드름이 하나 가득이고, 벌써부터 고드름 덩어리들이 녹은 눈과 함께 떨어지기 시작한다. 따뜻한 햇살이 지붕을 데우기 있기 때문이리라. 빨리 보기로 겨울의 흐름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가이드뿐만 아니라 내 한국인 여행 친구도 걱정이 하나 가득이다.

 

오늘 내려가야 트빌리시에서 내일 새벽 비행기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날씨를 보아하니 오후에는 제설이 끝나서 충분히 내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안심을 시킨다. 아침은 간단히 남은 라면을 끓여 먹었다. 친절한 호스트 아주머니는 길이 막혀 있어서 어떡하냐며 같이 걱정을 해주신다. 아주머니는 영어를 거의 못하시지만 표정만은 절세 배우인지라 그 표정만으로도 마음이 잘 전해진다.

 

 

 

12시쯤 짐은 숙소에 나두고 일단 버스 정류장에 가보기로 한다.

 

아무래도 상황을 확인해봐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정류장 매표소에 물어보니 길이 뚫리는 시각이 오후 3시가 될지 4시가 될지, 5시가 될지 모른단다. 길이 뚫리지 않는다는 말은 안하는 것으로 봐서 뚫리긴 뚫리나 보다. 버스를 타러 오셨다 가시는 현지인이 계시는 것으로 봐서 확실하다. 어차피 내 친구는 오늘 중으로만 트빌리시에 들어가면 된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트빌리시에 가는 새로운 방법을 알게 되었다.

 

택시들이 자꾸 호객을 해서 물어보니 트빌리시에 직접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 7km 정도 떨어진 Kobi resort까지 택시로 가고, 거기서 곤돌라를 타고 가장 높은 고개인 Jvari Pass를 지나서 스키장으로 유명한 구다우리(Gudauri)로 들어가는 것이란다. 구다우리는 Jvari Pass 아래에 있기 때문에 거기에는 트빌리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교통이 통제되는 곳은 트빌리시와 카즈베기를 연결하는 군사도로(Georgian Military Road)에서 가장 높은 고개인 Jvari Pass. 2,379m에 이르는 고개로 트빌리시에서 이곳으로 올 때도 눈으로 한 차선 정도만 운행되어 양방향 차량들이 교행하느라 정체되었던 곳이다. 사실 이곳만 넘으면 그리 큰 문제가 없다. 이곳을 스키장 곤돌라를 타고 우회하는 것이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눈이 많이 오는 날에도 트빌리시에 갈 수 있다. 이 말을 들으니 친구 얼굴에 여유가 생긴다. 여차하면 이 루트를 통해서 트빌리시에 갈 수 있으니 말이다.

 

 

 

일단 숙소에서 짐을 챙겨서 버스 터미널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언제 길이 뚫릴지 알 수 없는 것이고, 일단 길이 뚫리면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서 버스에 못 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가서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다. 더욱이 오늘은 날씨가 너무 화창하고 따뜻해서 기다리기에 힘들 것도 없다.

 

정류장에 배낭을 놓고 하염없이 뻐치기를 한다.

햇살이 따뜻하고 바람도 불지 않아서 좋다. 눈만 들면 카즈베기의 설산들이 눈앞에 펼쳐지니 심심한 줄도 모르겠다.

 

 

 

두어 시간 기다리니 서 있던 버스의 문을 열고 기사 할아버지가 올라타신다.

 

버스에 타도 되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때 시각이 오후 2시 반이었는데 버스는 그 뒤로도 한참을 있다가 오후 345분에야 출발했다. 물론 만차. 아무래도 할아버지 기사님이 우리가 기다리는 것이 안 돼 보여서 미리 버스 문을 열어 승차할 수 있게 해주신 것 같다. 이쪽 사람들 무심한 듯 친절하기 때문에 그러고도 남는다.

 

 

 

가는 길이 예술이다.

 

카즈베기에서 Jvari Pass를 넘어 구다우리(Gudauri)로 이어지는 길은 험준한 산들이 모두 하얀 눈으로 뒤덮여 하얀 색 외에 다른 색깔을 찾을 수가 없다. 하얀 사막(white desert) 그 자체다. 옆에 있는 친구는 자신이 지금까지 여행한 모든 곳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한다. 눈에 이틀 동안 갇혀 있던 사람들에게 주는 카즈베기의 선물이다.

 

 

 

구다우리는 스키장으로 유명한 곳. 

 

이런 곳에서 스키를 탄다면 정말 기가 막힐 것 같다. 미리 알았다면 아예 겨울에 이곳에 와서 한 달 정도 스키나 주구장창 탈 걸 그랬다. 이곳뿐만 아니라 메스티아(Mestia)도 스키로 유명한 곳이라 하는데 정말 싸단다. 한국에서 몇 번 탈 돈이면 아마 이곳에서 주구장창 탈 수 있지 않을까?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아쉽다.

 

고개를 넘어서 다시 고도를 낮추니 이내 날씨가 흐려진다.

 

트빌리시에 가까워질수록 날씨는 더욱 흐려졌고 비까지 내리기 시작한다. 버스는 오후 640분에 디두베(Didube)역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올 때도 3시간 정도 걸렸다.

 

 

 

중심가로 와서 내일 새벽 이스탄불에 들어가는 친구와 마지막 저녁을 한다.

 

오다가다 현지인들이 많이 기다리던 식당을 봐두었는데 그곳으로 가자고 안내했다. 가격도 괜찮고 맛도 좋다. 혼자라면 못 갔었을 텐데 일행이 있으니 이렇게 들어가 본다. 친구도 너무 맘에 든단다. 현지인들에게 정말 유명한 곳인지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한다. 역시 식당은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곳을 가야한다.

 

친구에게는 오늘이 조지아의 마지막 날이다. 무사히 트빌리시에 도착했다는 안도감, 오면서 너무도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다는 즐거움 그리고 마지막 식당마저 맘에 들었는지 기분이 들떠 있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식당을 나선다. 줄 서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다.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고 친구와는 헤어졌다. 그 친구는 조금 더 있다가 공항버스를 타고 공항에서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카페를 나서는데 비가 내린다.

 

비를 맞고 지난번 묵었던 호스텔로 간다. 이곳에서 한 이틀 묵으려고 했는데 1층에 침대가 없다고 해서 하루만 묵기로. 내일 바로 바투미(Batumi)로 가기로 한다.

 

34일의 카즈베기 일정이 짧긴 했지만 짧은 시간에도 많은 것을 봤다. 흐린 날의 잠시 수줍게 비추는 햇살, 그 햇살에 살포시 들어난 카즈베기의 풍경, 눈 덮인 성당 가는 길, 펑펑 쏟아지는 눈, 그리고 눈 내린 다음날의 설국 카즈베기 등. 특히 오면서 보여준 하얀 사막의 절경은 잊히지 않을 기억이다.

 

친구도 그런 말을 했지만 혼자가 아니어서 더욱 감사하고.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