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7. 15. 토. 맑음. "달라이 라마 지나가는 길"
오전에 송 선배랑 아침을 먹고 오는데 도로에 플랭카드를 걸고 있었다. 뭐냐고 물어보니 오늘 오전에 이곳을 달라이 라마(Dalai Lama)가 지나간다고 한다. 누브라 밸리(Nubra Valley) 디스켓(Diskit)에서 다시 레로 돌아오는 길인 듯싶다. 레 거리 곳곳에 플랭카드가 걸려 있다.
10시 30분쯤 지나간다고 해서 카메라를 들고 1시간 전부터 나와서 기다렸다. 이곳 사람들도 모두 전통의상을 입고 여성분들은 꽃을 들고 일찍부터 나와서 달라이 라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로는 이미 깨끗이 청소가 되어 있었고, 흙길에는 물을 뿌려서 먼지가 나지 않도록 하고 있었다. 거리 곳곳에는 향을 피우고 있었다. 누군가는 셰퍼트를 데리고 와서 길에서 어슬렁거리는 소나 당나귀들을 쫓아내었다. 이곳에서 행사를 갖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단순히 지나가는 것이라는 데로 그 정성이 놀랍다.
그 속에서 나도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 그런데 아쉽게도 나는 달라이 라마를 보지 못했다. 달라이 라마를 태운 차량들은 경찰차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쉬지 않고 일행들을 지나쳤고, 달라이 라마는 창밖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지나갔다. 나중에 형이 차 안에서 손을 흔드는 것을 봤다고 한다. 짙은 선탠이 쳐진 차 안에서 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현지인들도 많이들 달라이 라마를 못 본 것 같다. 모두들 모든 차량이 다 지나갈 때까지 멍하고 서 있기만 했다. 난 카메라까지 들고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창밖으로 손이라도 흔들어 주시지. 아래 세 번째 사진 속 검은 차 앞창에 살짝 보이는 손이 달라이 라마의 손이다.
그들의 경건한 자세와 밝은 표정 속에서 달라이 라마에 대한 티베트인들의 마음가짐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다만, 젊은이들이 갖는 달라이 라마에 대한 생각은 잘 모르겠다. 일전에 레에 왔었을 때도 그를 환영하러 나온 인파들은 대부분 나이 드신 분들이었지, 젊은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다.
달라이 라마는 그저 나이 든 세대들에서만 그 존재의 무게가 있는 것일까?
허무함을 안고 숙소에 들어와서 이후의 일정을 형과 논의했다. 일단 형이 레에서 델리로 가는 방법을 결정하도록 했다. 나는 육로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고산증을 심하게 겪은 형의 경우는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다 다를까 형은 비행기를 선택했다. 버스에서 찾아올 고산증을 두려워 한 것이다. 육로로 올라온 친구들은 대부분 다시는 이곳을 육로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들 한다. 그만큼 레로 오는 육로길이 험난하다는 것이다. 길 자체도 험하지만, 킬롱(Keylong)에서 레까지 오는 길은 기본 3천, 4천 미터의 고지대를 거의 17시간 가까이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버스에서 고산증을 경험한다고 보면 된다.
레에서 델리(Delhi)로 비행기를 타고 가기로 한 이상, 레에서 델리 사이에 가려고 했던 맥그로드 간지(MaLeod Gahj)나 마날리(Manali) 등의 예정지들은 모두 일정에서 아웃이 된다. 굳이 델리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올라올 만큼의 특별한 목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전혀 생각하지 못한 델리 주변이나 이남 지역을 생각해야 했다. 피해가고 싶었던 인도의 살인적인 여름 더위와 마주치게 된 것이다.
형은 처음 고아(Goa)를 제시했다. 하지만 내가 반대했다. 멀기도 멀지만 다른 액티비트가 없는 한 바다는 이틀만 봐도 지겨워진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사막지역이 많은 라자스탄(Rajastan). 이왕 더운 지역들이니, 더운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건조한 곳을 선택했다. 사실 습도가 문제지 햇살은 피하면 그만이다. 라자스탄의 추천 받은 지역은 자이살메르(Jaisalmer), 조드뿌르(Jodhpur), 우다이뿌르(Udaipur)다. 인도를 자주 온 장 양이 추천해 준 곳들이다. 물론 전혀 계획에 없던 지역이다. 여행책도 분철해서 가져왔는데 이곳은 없다.
재미있는 것은 송 선배와 신 양의 일정도 우리와 같다는 것이다. 마침 장 양도 18일에 다람살라에서 델리로 내려왔다가 자신도 자이살메르로 갈 생각이란다. 이렇게 되니 라자스탄에서 누브라 밸리(Nubra Valley)에 같이 갔던 일행 중에서 박 군만 빼고 모두 다시 뭉치게 되는 것이다. 흔치 않은 일이다.
다 같이 비행기 표를 사러 가서 19일 수요일 비행기를 구입했다. 6,800 루피. 더 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산 표값보다 싸게 구입했다.
대충 일정을 보면 19일 비행기로 델리에 가서, 델리에서 바로 자이살메르로 가는 기차를 탈 예정이다. 물론 표가 있어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수요일부터는 다시 바쁜 일정을 보내야 한다. 본의 아니게 진짜 인도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실 이곳은 인도라고 할 수 없다.
앞으로 화요일까지 있게 될 레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한다. 최대한 한가롭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후에는 아마 이런 시간을 가지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일정도 일정이지만 날씨 여건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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