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7. 14. 금. 맑음. "이 무료함, 그것을 깨는 한 통의 카톡"
아침 하늘이 잔뜩 흐려 있어서 오늘도 비가 오려나 싶었는데 아침을 먹고 있는 새에 어느새 해가 챙챙 비치고 있다. 가득했던 먹구름은 어디로 갔는지 다시 레 본래의 파란 하늘로 돌아와 있다.
보고 있던 책을 마감하고 그간 미루었던 글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이제 컨디션도 거의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다. 슬슬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후 내내 침실 앞 복도에 앉아서 책도 읽다가 글도 쓰다가 하면서 보내고 있다. 날씨도 좋은데 점점 무료함이 느껴진다.
다시 찾아온 이 무료함. 무언가 해야만 할 일도 없이 그저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어찌 보면 하릴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지만 이게 또한 여행이 주는 귀한 시간이다. 심신이 편하지 않으면 결코 가질 수 없는 상태. 이때야 말로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유식한 말로 세속의 번뇌를 조금씩 벗어내고 진정한 나로 다가가는 하나의 작은 과정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 무료함이 정말 좋다. 이 하릴없음이 말이다.
난 지금 내 방 앞에서 곧게 뻗은 미류나무와 파란 하늘을 그저 멍하니 바라 볼 뿐이다.
무료함을 시기라도 한 것일까?
저녁에 잠자기 직전에 이곳에 같이 있다가 며칠 전 다람살라(Dharamsala)에 간 장 양에게서 한 통의 카톡이 왔다. 레가 있는 잠무 카슈미르(Jammu Kashmir) 주(州)의 여름 주도(州都)인 스리나가르(Srinagar)에서 무슬림 분리주의자들에 의한 무차별 사격으로 다수의 힌두인 사망자가 생겼다는 내용이다. 우리의 다음 일정이 카슈미르(Kashmir)의 스리나가르였기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보내준 것이다.
얼른 인터넷으로 뉴스를 확인해 봤다. 아니다 다를까 며칠 전 종교행사 차 가던 힌두인들 버스에 대한 무차별 사격으로 다수의 힌두인들이 사망하거나 다쳤다고 한다. 어제는 인도군이 범인으로 의심되던 세 명의 무슬림 분리주의자들을 사살했다고 한다. 이에 촉발된 무슬림들의 시위가 격화되면서 스리나가르 지역에 통행금지가 내렸다는 내용도 있다. 다른 기사에서는 스리나가르에서 인도군이 이슬람 사원에서의 금요예배를 금지하면서 사원을 봉쇄했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잠시 잊고 있었다.
이곳,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세계의 화약고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잠무 카슈미르 주는 서부는 카슈미르(Kashmir) 지역 그리고 동부는 라다크(Ladakh)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카슈미르 지역에서는 다수가 이슬람인들이고, 라다크 지역은 다수가 라다크인, 즉 티베트인들이다. 그런데 이 지역을 힌두교가 다수인 인도가 실효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기본적으로 종교 갈등이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여기에 더해 카슈미르 지역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 분쟁에 더해, 무슬림 분리주의자들에 의한 내란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지역이다. 그나마 안전하다고 하는 라다크 지역도 인도, 파키스탄, 중국이 국경을 맞대면서 대립하고 있다.
최근 스리나가르를 거쳐 온 여행객들이 많아서 그저 평온을 유지하고 있나 싶었는데, 역시 휴화산도 아닌 활화산이었다.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다. 원래 계획은 이곳 레에서 라마유르(Lamayur)를 거쳐 스리나가르로 갔다가 남하하는 것이었다. 올 때는 비행기로 델리에서 바로 레로 들어왔지만 내려갈 때는 이렇게 스리나가르를 통해서 육로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는 사태에 직면해 있다.
물론 어떻게든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여행자로서 두 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하나는 과연 우리가 우리 스스로 우리의 안정을 책임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내전이 발생하고 교전이 발생한 지역, 우리 정부에 의해 여행금지 1위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 그리고 지금은 인도조차도 외국인의 여행 자제를 권고하고 있는 지역에서 과연 여행객이 스스로 자신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책일 질 수도 없으면서 국가 기관의 만류에도 무턱대고 간다는 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행동일 뿐이다. 무시하고 갔다가 안전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래도 국가에 책임을 지을 수 있는 것인가?
다른 하나는 분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나 그것을 막고 있는 사람들이나, 모두들 자신의 신념과 생명을 걸고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그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지금 그곳에 가지 않는 것이 여행자로서의 기본 도리라고 생각한다.
결국 지금까지 세운 모든 이후의 계획을 바꾸어야 한다.
장 양으로부터 온 한통의 카톡은 이렇게 겨우 잠시 잠깐 찾아온 나의 평온함과 무료함을 여지없이 깨뜨리고 말았다.
끝.
'인도 여행 (라다크, 라자스탄, 델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다크 레 26: 국제정치의 소용돌이, 그 가운데(20170716) (0) | 2017.11.20 |
---|---|
라다크 레 25: 달라이 라마 지나가는 길(20170715) (0) | 2017.11.20 |
라다크 레 23: 기후 변화(20170713) (0) | 2017.11.18 |
라다크 레 22: 레의 골목길(20170712) (0) | 2017.11.18 |
라다크 레 21: 초 모리리, 하산의 기쁨(20170711) (0) | 2017.1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