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 드리우는 중국의 그림자
베트남 친구들과 루앙프라방 근교의 ‘빡 우 동굴(Pak Ou Cave)’과 ‘꽝 시 폭포(Kuang Si Falls)에 다녀오고 뒤풀이로 저녁을 먹던 자리였다.
한 베트남 처자가 내게 묻는다.
“라오스 사람들이 베트남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아요?”
“싫어하지 않을까요. 무척은 아니어도 싫어할 것 같은데.”
“맞아요. 그럼 베트남이 중국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당연히 엄청 싫어하겠죠.”
“오! 동남아시아를 조금 아시네요”
역사적으로 라오스와 베트남은 관계가 좋지 않다.
베트남과 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라오스는 동남아시아의 소중화(小中華)를 칭하는 베트남으로부터 역사적으로 숱한 침략을 당했다. 현대에서도 라오스의 공산화에 베트남의 영향은 가장 지대했다. 베트남 전쟁 기간에는 전쟁 물자를 운송하는 호치민 루트가 라오스에 만들어지면서 미군의 막대한 폭격을 받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당시에 떨어진 불발탄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
베트남과 중국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938년 독립까지 베트남은 천여 년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베트남 전쟁 직후인 1979년에는 국경을 둘러싸고 중국과 치열한 전쟁을 치루기도 했다. 최근에는 남중해를 두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으니 친할래야 친할 수가 없는 관계다.
여기에 최근 중국이 동남아시아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의 일환이다. 일대일로는 하나의 길(一路)을 통해 하나의 경제지대(一帶)를 형성한다는 중국의 현대판 실크로드 구상이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라오스와 캄보디아 그리고 미얀마가 그 중심 대상이다.
그 중에서도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라오스와 미얀마가 1차 대상이다.
루앙프라방에 와 보니 전에 없던 중국어 호텔과 식당들이 많다.
이곳에도 중국 여행객들이 많이 오나 싶었다.
그런데 관광 그 이상의 이유가 있다.
루앙프라방 시내를 벗어나 빡 우 동굴과 꽝 시 폭포에 가는 길에 보니 중국 회사 간판이 많이 보였다. 주로 건설 회사나 자재 회사 이름이었다. 조금 더 가니 중국 철도라는 간판이 떡 하니 나왔다.
중국 건설 회사와 자재 회사라니? 거기에 중국 철도는 왜 여기서 나오지? 그때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으로 동남아시아에서 추진 중인 철도 사업이 생각났다. 중국이 중국 윈난성(云南省) 쿤밍(昆明)에서 라오스 북부를 지나 수도인 비엔티안(Vientiane)에 이르는 고속철도를 건설할 것이라 했었다. 라오스를 관통한 고속철도는 태국, 말레이시아를 지나 싱가포르까지 이어질 계획으로 알고 있다.
지금 한창 이 고속철도 공사 중에 있음이 분명했다.
중국이 제3세계 국가들에 하는 방식대로 중국의 투자금은 국가 대출로 돌리고, 공사는 대부분 중국 업체들과 중국 인부들이 맡아서 하고 있으리라. 이곳에 중국의 건설, 자재 회사들이 많은 이유다. 아울러 관광객 외에도 중국인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라오스의 북부 도시, 루앙프라방은 중국과의 국경에서 가까운 도시다.
원래 난 중국에서 베트남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이곳으로 오려고 했었다. 윈난성의 징훙시(景洪市)이라는 도시에서 바로 루앙프라방으로 넘어올 생각이었다. 중국의 소수민족 타이족의 자치구인 징훙은 라오스 국경에서 가까운 중국의 도시다.
중국 국경에서 루앙프라방 사이의 도시들은 도시(city)라기보다는 작은 타운(town)에 가깝다. 루앙프라방이 중국과의 물류에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 중국에서 출발해 동남아를 관통하는 고속철도가 이곳을 지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철도가 완공된 이후 이곳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축복일까?
철도가 완공되면 라오스 교통과 물류의 숨통이 트일 것이다. 교통 인프라가 열악한 라오스에서 라오스 철도는 사람뿐만 아니라 물류의 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울러 내륙 국가 라오스가 철도를 통해 이웃 국가는 물론 바다로의 진출도 용이해질 것이다. 라오스의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으리라.
중국의 동남아시아 일대일로(一帶一路)에서 고속철도는 일로(一路)에 해당한다.
하나의 길을 통해 하나의 경제 지대를 형성한다는 일대일로의 전략에 의한다면 라오스 고속철도를 통해 라오스는 중국 경제로의 쏠림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철로를 타고 중국의 영향력이 라오스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라오스의 중국 의존도는 절대적인 것이 될지도 모른다. 로마가 포장도로를 닦아 제국을 건설했듯이.
이미 대출로 빌려온 철도 건설비용이 라오스의 목줄을 죄고 있을지 모른다. 대출로 받은 돈은 철도 건설에 참여한 중국 회사들이 대부분 다 회수해 가고 라오스는 빚만 지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루앙프라방을 뒤덮고 있는 중국 간판들을 보고 있자니 불안감이 더 크게 엄습한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