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속의 경제학, 절대 우위와 비교 우위
여행하면서 절대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한국에서는 이태리 요리니, 동남아 요리니 뭐니 하면서 줄기차게 찾아다니다가 외국만 나오면 주구장창 한국 식당만 찾아다니는 사람들! 한국에서는 한국 술이라면 술 취급도 안하다가 외국만 나오면 소주 찾는 인간들!
이런 친구들과 함께 여행하다보면 돈은 돈대로 깨지고, 대우는 대우대로 못 받고, 입맛은 입맛대로 버린다. 여행을 왜 하고 있나 싶어진다.
경제학 이론 중에서 무역 이론이 있다.
대표적으로 절대 우위와 비교 우위가 생각날 게다.
왜 국제 무역을 하는가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절대 우위는 국부론으로 유명한 애덤 스미스가 주장했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비해 생산비가 절대적으로 저렴한 상품의 생산에 특화하여 서로 교역할 때 상호 이익이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비교 우위는 리카도가 주장했다. 절대 우위의 경우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 비해 생산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상품의 생산에 특화하더라도 상호 이익이 발생해 교역이 일어난다는 이론이다.
경제학이 어려운 것 같지만 사실은 무엇이 더 경제적인지를 따지는 생활 학문이다. 학문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생활을 위한 학문이라는 거다.
여행을 하다보면 경제적인 면을 안 따질 수가 없다. 빠듯한 예산의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여행자들이 가성비를 따지는 행위는 기본 중에 기본. 저렴한 항공권을 찾아다니는 일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값도 싸고 품질도 뛰어나다면?
그야 말로 금상첨화다.
경제적으로 보면 어느 나라를 여행한다는 것은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 등이 한국에 비해 절대 우위 또는 상호 우위에 있는 나라를 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행은 한국에서라면 비싸서, 때론 너무 비싸서 감히 엄두도 못 내는 것들을 아주 저렴하면서도 가장 질 좋은 상태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원 순례를 마치고 망고 사러 시장에 간다.
오늘은 망고와 함께 파인애플도 산다. 게을러서 돈이 조금 더 들더라도 깎아 잘라 파는 것을 산다. 내가 부리는 유일한 사치다.
두 뭉치를 비닐봉지에 담아 드니 묵직하다. 많이 먹을수록 돈을 버는 과일들이다. 잘라서 만 낍에 파는 망고는 큰 망고 세 개의 양이다. 만 낍이면 우리 돈으로 1,400원. 대체 한국에서 망고 큰 거 하나가 얼마인가? 제 고장에서 열심히 먹어 두는 것이 돈 버는 일이다.
라오스에 오니 과일이 너무 싸다.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이 라오스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거쳐 온 중국이나 베트남보다 싸다.
나는 동남아시아에 오면 열대 과일에 특화한다.
그 중에서도 망고를 달고 산다. 아주 질릴 때까지 먹는다.
질리게 먹고 나면 한국에 돌아가서 망고를 봐도 그다지 생각나지 않는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고 먹어봤으니 더 생각이 나지 않겠냐고?
그것도 적당히 먹었을 때 이야기다.
질리게 먹고 가면 정말 별 감흥이 없다.
대학생 때 여름방학에 코카콜라 배송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코카콜라 배송차를 타고 마트나 소매점에 음료수를 배송을 하는 일이다. 물론 보조다. 한 번은 너무 갈증이 나서 편의점이나 가게 앞에 잠시 세워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내 사수 아저씨가 대뜸 1리터 콜라를 건네주시는 거다.
“콜라 마시면 더 목마르잖아요!” 했더니 씩 웃으시던 아저씨가 “그건 조금 마셨을 때 이야기고, 배 터지게 실컷 마셔봐 목마르나 안 마르나” 하신다.
실컷 마시니 정말 갈증이 싹 가셨다.
소금물은 안 된다. 골로 간다.
여행을 하다보면 그곳에 특화된 것들이 있다.
과일이나 술, 음식뿐만 아니라 문화, 교육, 액티비티, 마사지 등 다양하게 있다. 한국에서 그것들을 즐기려면 엄청난 돈이 들지만 그곳에서는 흔한 것이기에 싸다. 대체로 질도 훨씬 좋다. 대우도 잘 받고. 이런 것들을 찾아서 즐기길 좋아하는데, 이게 또 굉장한 여행의 묘미다.
마사지도 그런 것 중의 하나다.
책상에서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목이나 어깨 등이 많이 결린다. 요즘은 허리도 많이 아프고. 한국에서 물리 치료를 받거나 스포츠 마사지를 한 번 받으려면 꽤 많은 돈이 든다.
참았다가 중국이나 태국에 갈 때 제대로 받는다. 시간이 없을 때에는 아침, 저녁으로도 받는다. 한국의 5분의 1이나 4분의 1 가격으로 마사지의 본고장에서 제대로 된 마사지를 받는다. 몸이 안 좋을 때는 마사지 받을 때마다 돈을 번다는 기분이 든다. 마시지만으로도 비행기 값을 뽑기도 한다.
장기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처음 도착한 곳에서 마시지를 받으면서 몸을 좀 풀어준다. 일종의 치료이자 나름의 여행 워밍업이다. 여행의 시작을 되도록 중국이나 태국에서 하려는 이유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여행의 여독을 마사지를 받으며 풀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이번 여행의 시작인 중국에서도 열심히 마사지를 받았다. 칭다오(靑島)와 청두(成都)에서 주로 받았는데 청두가 조금 더 쌌다. 청두에서 전신 마사지가 시간 당 50위안이었다. 우리 돈으로 8천 5백 원 정도다. 한국에서 받으려면 시간 당 7, 8만원을 주어야 한다. 거의 10분의 1 가격이다.
중국에서 8번 정도 받았으니 이걸 한국에서 받았다고 생각해보라. 한국에서 중국 온 항공비 뽑고도 한참 남는다.
단 마사지 받을 때 주의할 게 있다. 관광지에서 관광객만을 상대하는 마시지 가게에는 절대 가지 말아야 한다. 바가지도 바가지지만 대부분 비전문가들이다.
스쿠버다이빙, 골프 등 다양한 운동이나 액티비티들도 있다.
한국에서 한번 즐기려면 굉장한 돈과 시간이 들지만 현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골프가 한국에서는 고급 스포츠이지만 호주에 가면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하신다. 덕분에 골프 연습장은 우리네 야구 연습장 보다 싸다. 골프장도 평일 퍼블릭 골프장에 가면 어마어마하게 싸다.
예전에 호주에 있을 때 한 교민을 알았다. 그 분은 골프도 골프지만 골프장에서 영어도 배웠다. 평일에 퍼블릭 골프장에 가면 골프를 치고 계시는 노인 분들이 많단다. 강아지라도 있으면 친구 삼을 판에 말하는 사람이니 어쩌겠는가. 노인 분들과 어울려 골프를 치면서 영어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현지 생활에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덕분에 한 동안 매일 골프장으로 출근했다고.
나도 호주에서 스키를 탔다. 호주 스키장은 가격도 저렴하지만 천연 눈에 사람도 별로 없어서 직활강을 해도 별 문제가 없다. 한국에서 스키 타다가 죽는 줄 알았다. 스키를 타는 것인지 사람을 피해 다니는 것인지 원.
태국에서는 스킨스쿠버도 배웠다. 시간이 없어서 오픈워터 자격증만 따긴 했지만. 당연히 가격도 저렴하지만 한국보다 교육 시스템이 훨씬 더 잘 갖추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다이빙 포인트에서 바다를 즐겼다.
골프에 스키, 스킨스쿠버 등을 말하니 무척 고급지게 다닌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곳에서는 저렴하고 보편적인 스포츠인 경우가 많다. 그저 절대 우위를 즐길 뿐이다.
한국에서 고급 과일인 망고는 이곳 라오스에서는 1, 2천 원이면 배 터지게 먹는다.
숙소에서 망고에 라오 맥주를 마시다 문득 생각이 든다.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는 무엇을 하는 것이 남는 것일까? 주위를 둘러보니 쿠킹 클래스(cooking class) 밖에 보이질 않는다. 요리라? 그냥 메콩강이나 원 없이 눈에 담아갈란다.
만 낍짜리 망고가 얼마나 많은지 배가 불러진다. 이것만으로도 루앙프라방에 지낼 이유가 충분하다. 라오스에서는 열대 과일을 열심히 먹는 것으로. 여기에 라오 맥주라면 충분하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