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에서의 새해맞이”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거리에 스님들의 행렬이 보이기 시작한다.
스님들이 걸친 짙은 오렌지색 장삼이 어둠을 뚫는다.
탁발(托鉢) 행렬이다.
새해를 여는 첫날, 루앙프라방에서 스님들의 탁발 행렬로 시작한다.
여명도 없는 캄캄한 거리로 나선다. 새벽 5시다.
거리에는 벌써 탁발 행렬을 맞을 준비가 끝나 있다. 행렬이 지나가는 인도에는 의자가 줄을 맞춰 놓여 있다. 아직은 모두 빈 의자. 탁발은 5시 30분에 시작한다고 했다.


그런데 누가 의자들을 정렬해서 두었을까?
갑자기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거리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한다. 그네들이 의자를 차지한다. 대부분 단체 여행객들이다. 의문이 풀린다. 명당자리에 각을 맞춰 깔려있던 의자들은 여행사에서 준비했나보다.

탁발 행렬의 시작은 왓 쌘(Wat Sene) 사원 쪽이었다.
왓 쌘 사원에서 탁발 행렬이 시작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정말 그 사원에서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왓 쌘 사원 주변으로 여러 사원들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왓 쌘 쪽에서 시작한 탁발 행렬은 중심거리를 따라 푸시(Phou Si)산 방향으로 걷다가 뒷길로 해서 사원으로 돌아간다. 구시가지 가장 중심을 짧게 한 바퀴 도는 셈이다.


오렌지색 장삼 위에 커다란 바리때를 걸친 스님들이 지나갈 때 마다 사람들은 바리때에 음식을 담는다.
바리때는 금세 가지가지 음식으로 채워진다.
스님들도 많지만 보시를 하는 관광객들도 그에 못지않게 많다.


스님들의 행렬은 끊겼다 싶으면 다시 이어진다.
사원 단위의 행렬로 보인다. 사원이 많은 루앙프라방이고 보니 탁발 행렬도 꽤 길다.
탁발 행렬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어 보인다. 항렬이 높아 보이는, 나이가 지극하신 스님들이 주로 맨 앞에 서서 행렬을 이끌고, 맨 뒤로는 주로 어린 동자승들이 따라 붙는다.

루앙프라방의 탁발은 그저 관광용 볼거리에 불과한 것일까?
구시가지의 중심거리에 탁발 행렬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죄다 여행객들이다.
현지인들이라고는 가이드들과 보시할 음식거리를 파는 사람들뿐이다.

루앙프라방의 가장 대표적인 볼거리 중의 하나가 탁발이다.
탁발은 스님들이 손에 바리때를 들고 집집마다 돌며 보시 받는 것을 말한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새벽에 스님들이 일렬로 줄을 맞추어 거리를 지나가면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음식을 보시한다.
지난번 루앙프라방에서는 탁발을 보지 않았다.
그전에 미얀마를 여행하면서 탁발을 몇 번 봤기 때문이다.
처음 탁발을 본 것도 미얀마다.
트레킹을 하다 묵었던 산골의 한 소수민족 마을에서였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 마을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산책을 하는데 마을 사람들이 길가에 음식을 들고 서 있었다. 당시에는 탁발이 뭔지도 모르던 때다.
뭘 하려나 싶어 지켜보고 있으니 저 멀리서 스님들이 길 양 편으로 줄을 서서 걸어왔다. 스님들이 마을 사람들 앞에 이르러 바리때를 내밀면 사람들은 준비한 음식을 조금씩 떼어 정성스럽게 담아주었다. 그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했다.
그때 그 모습이 너무 강렬해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 몇 번 더 보긴 했는데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 같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래서일까 지난번 루앙프라방에 왔을 때는 굳이 탁발을 보러 새벽에 일어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루앙프라방은 더 상업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보니 내 생각이 딱 맞았다.
루앙프라방의 탁발은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퍼레이드 이벤트 같다.
돌아가는 길에 보지 못했다면 정말 그렇게만 기억되었을 것이다!
맨발 하나가 주는 울림이 자못 크다.
몇 차례 탁발 행렬이 지나가자 곧 식상해진다.
준비한 음식이 떨어진 관광객들도 자리에서 일어선다.
굳이 그 끝을 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숙소로 발길을 돌린다. 숙소는 중심거리에서 메콩강 방향으로 두 블록 아래다.
한 블록 내려가 만나는 작은 사거리의 한 모퉁이에 탁발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현지인들이다. 사원으로 돌아가는 탁발 행렬을 기다리나 본다. 아직 그 선두는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기다림에 다른 점이 보인다.
음식을 담아둔 소쿠리를 옆에 두고 모두 맨발로 앉아 있다.
신발은 뒤에 두고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맨발로 스님들을 기다린다.


행렬이 지나갈 때 보니 스님들도 맨발이다.
절로 숙연해지고 경건해진다.
맨발의 울림이 이렇게 클 줄이야.


보시 받은 음식은 스님들이 다 먹는 건 아니다.
거리에 바리때의 음식을 덜어놓은 곳이 있다. 스님들도 그곳 앞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보시를 한다.

뒷길 현지인들에게는 스님들이 가끔 보시하는 사람들 옆에 놓인 소쿠리에 바리때의 음식을 덜어 놓기도 한다.

서로가 서로를 보시하고 섬긴다.
올 한해 우리 모두가 그랬으면 싶다.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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