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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의 비극 1-1: 인종 청소와 집단 학살의 악몽(惡夢), 유고슬라비아 전쟁 1

경계넘기 2021. 12. 25. 13:07

 

 

발칸의 비극 1-1: 인종 청소와 집단 학살의 악몽(惡夢), 유고슬라비아 전쟁 1

 

 

202111월 어느 날, 신문에 이런 기사들이 떴다.

 

“26년 ‘불안한 평화’ 깨지나…10만 명 숨진 ‘인종청소’ 내전 악몽 살아난 보스니아”(한국일보)
“보스니아 내전 악몽 되살아나나…세르비아계 분리 움직임 가시화”(연합뉴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 이하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가 다시 분리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내용이다. 구(舊)유고슬라비아 연방에 속했던 보스니아는 현재 두 개의 공화국이 1국가 2체제를 이루는 연방 국가다. 하나는 무슬림 보스니아인과 크로아티아계로 구성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 다른 하나는 세르비아계의 스릅스카 공화국(Republika Srpska)이다.

 

최근 스릅스카 공화국의 지도자 밀로라드 도디크(Milorad Dodik)가 모든 연방 정부기관에서 탈퇴하고 자체적인 행정기관과 군대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서방국가들이 계속 그를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달(2021.12) 가디언(The Guardian)의 기사에 의하면 곧 스릅스카 공화국에서 이를 국민 투표에 붙일 생각이라고 한다.

 

보스니아는 무슬림 보수니아인, 로마 가톨릭 크로아티아계, 정교회 세르비아계의 세 민족으로 구성된 나라다. 2013년 인구 조사에 의하면 보스니아인이 50.1%, 세르비아계가 30.8% 그리고 크로아티아계가 15.5%를 차지하고 있다.

 

보스니아는 구()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독립하는 과정에서 독립을 반대하는 세르비아계와 치열한 내전을 치렀다. 구유고 연방과 세르비아가 세르비아계를 지원했음은 물론이다. 1992년에서 1995년까지 지속된 전쟁에서 인종 청소(ethnic cleaning)’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집단 학살과 집단 강간 등의 조직적인 전쟁 범죄가 일어나 국제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전쟁으로 10만 여명의 희생자와 2백만 명이 넘는 난민을 낳았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지리적 구분(출처: wikipedia)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두 공화국 (출처: wikipedia)

 

발칸을 여행하다 보면 아름다운 풍광과 문화에 감탄하게 되지만 곳곳에서 만나는 전쟁의 상흔(傷痕)에 흠칫 흠칫 놀라게 된다. 때론 도심지 거리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는 전쟁의 흔적에 살 떨리는 공포마저 느끼곤 한다. 우리에게도 한국 전쟁의 아픔이 있긴 하지만 전후 세대가 직접 전쟁의 상흔을 대면하기란 쉽지 않다.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Beograd)의 중심가를 걷다보면 철거하다 만 듯한 건물을 만난다.

 

철거하다 만 건물이 아니라 1999년 코소보 전쟁에서 나토(NATO)군의 폭격을 받은 건물이다. 그때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두 동의 건물은 폭격 당시 세르비아의 국방성과 육군 본부 건물이었다고 한다. 영화나 CNN, 다큐멘터리에서나 봤던 생생한 폭격 현장이다.

 

 

 

더 살 떨리는 현장은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였다.

 

중심가 거리를 걷는데 거리의 건물들 벽면에서 총탄과 포탄 자국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공사하다 제대로 마감을 안 한 흔적이거니 했다. 하지만 거리 곳곳, 무수한 건물에서 만나는 숱한 자국에서 그게 전쟁의 상흔임을 이내 알았다. 마치 곰보처럼 무수한 총탄과 포탄 자국을 간직한 건물들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곤 했다.

 

여전히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발칸에 다시 전쟁의 전운이 감돈다.

 

 

 

 

20세기 가장 추악한 전쟁 중의 하나, 유고슬라비아 전쟁(Yugoslavia War)

 

 

 전쟁의 배경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Socialist Federal Republic of Yugoslavia)이라는 긴 정식 명칭을 가진 유고슬라비아(Yugoslavia)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에 슬로베니아(Slovenia), 크로아티아(Croatia),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 세르비아(Serbia), 몬테네그로(Montenegro), 북마케도니아(North Macedonia)의 남()슬라브 6개 공화국이 결성해서 세운 연방 국가였다. 유고슬라비아는 남슬라브인들의 땅이란 의미라고 한다.

 

하나의 국가로 뭉치긴 했지만 구유고 연방은 대단히 복잡한 나라였다.

 

민족 구성으로 보면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무슬림 보스니아인, 몬테네그로인, 마케도니아인의 6개 슬라브계 민족들과 슬라브족이 아닌 알바니아인까지 7개 민족들이 있었다. 종교 역시 서로 배타적인 로마가톨릭, 정교회, 이슬람이 각기 세력을 가지고 오랫동안 경쟁하면서 공존했다.

 

 

구(舊)유고슬라비아 (출처: wikipedia)

 

 

같은 슬라브족인데 왜 각기 다른 민족으로 불리는 걸까?

 

 

 

우리 관점에서는 좀 이상할 수 있다.

 

발칸에 슬라브족이 내려오기 시작한 것은 대략 7세기 전후한 시점이라고 한다. 이후 이들은 점차 종교에 따라 자신들을 구분 짓기 시작했다. 서유럽에 가까운 지역에는 로마 가톨릭, 동로마 제국에 가까운 지역에는 정교회 그리고 15세기 중엽 오스만 제국이 이곳을 지배하면서부터는 이슬람이 더해졌다. 스스로를 구분 짓게 된 이유에는 발칸의 지형도 한몫을 했다고 한다. 발칸은 곳곳에 험준한 산맥들로 가로 막혀서 상호 교류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18세기 후반 서유럽을 들끓게 만들었던 민족주의가 19세기 중엽에는 발칸의 슬라브족에게도 밀려오기 시작했다. 수세기 이어온 종교적 구분의 기반 위에 민족 개념이 더해지면서 각 지역에서 일어났던 고대 왕국들의 정치적 경계를 중심으로 민족들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로마가톨릭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정교회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 그리고 무슬림의 보스니아까지. 물과 기름 같은 종교에 배타적 속성의 민족이 더해지고, 여기에 치열한 영토 경쟁의 역사가 더해지면서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발칸은 더욱더 파편화되었다.

 

무수한 외세의 침략과 지배 그리고 특히 1, 2차 세계대전의 충격은 파편 같은 발칸의 국가들을 구유고 연방으로 통합하게 만든 강력한 동인이 되었다. 하지만 하나의 국가를 만들었다고 해서 오랜 역사의 종교적, 민족적 갈등이 쉽게 사그라질 리는 만무했다.

 

사실 민족들 간의 갈등을 무마하고 구유고 연방을 지켜낸 것은 요시프 브로즈 티토(Josip Broz Tito)의 강력한 리더십 때문이었다. 구유고 연방을 세웠던 그는 남슬라브 민족주의, 즉 유고슬라비즘(Yugoslavism)의 기치를 세우고 연방 내 민족들을 다독이며 연방의 통합과 유지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요시프 브로즈 티토 (출처: cultural-opposition.eu)

 

연방의 구심점이 되었던 티토가 1980년 사망하고, 1980년대 말 동유럽 사회주의권과 1991년 구()소련마저 붕괴하자 구유고 연방도 더 이상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러나 평화로운 해체의 길을 걸었던 구소련이나 동유럽의 체코슬로바키아와 달리 구유고 연방은 폭력적인 해체의 길을 걸었다.

 

1991년에서 1999년까지 구유고 연방의 해체 과정에서 4차례의 전쟁이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이제는 역사 속에 묻혔을 것이라 생각했던 잔혹한 집단 학살이 일어났고, ‘인종 청소(ethnic cleaning)’라는 신조어까지 등장시키며 다시 한 번 세계를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이들 전쟁들을 통칭해서 유고슬라비아 전쟁이라 부른다.

유고슬라비아 내전(內戰)이라 불렸으나 연방이 해체된 이후에는 전쟁으로 부른다.

 

 

왜 구유고 연방은 폭력적인 해체의 길을 걸어야만 했을까?

 

 

 

다양한 원인들이 있겠지만 세르비아니즘(Serbianism)이 중요한 도화선이 되었다.

 

세르비아니즘은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발칸의 남슬라브 국가들을 통합해서 대()세르비아를 건설하고자 하는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말한다. 이는 대등한 관계의 연합이나 연방이 아니라 세르비아 중심의 통일, 즉 발칸의 제 민족들을 세르비아로 통합하려는 민족주의 사상이다.

 

세르비아니즘은 세르비아가 가장 잘 나갔던, 14세기 초반 중세 세르비아 왕국의 영토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세르비아 왕국은 발칸의 대부분을 장악할 정도로 강력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곧 오스만 제국에 패하여 그 지배 아래로 들어갔다. 세르비아니즘은 바로 그때의 영광과 영토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구유고 연방의 주축국은 세르비아였다.

 

세르비아는 구유고 연방을 이루었던 민족들 중 가장 인구가 많을 뿐만 아니라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발칸에서 가장 강력한 근대 왕국으로 성장했다. 반면에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구유고 연방을 세웠지만 티토는 각 민족과 공화국을 존중하며 대등한 관계에서의 연방을 지향했다. 이를 위해 그는 세르비아니즘을 억제하고 발칸의 모든 민족들을 평등한 관계에서 아우르는 유고슬라비아 민족, 즉 유고슬라비즘(Yugoslavism)을 형성하려고 했다.

 

문제는 티토 사후에 불거졌다.

 

티토 사후 구유고 연방의 공화국들에서는 공산주의자에서 민족주의자로 변신해 민족주의를 대중 동원과 권력 추구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정치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티토의 강력한 리더십에 눌려 있다가 티토 사후 리더십의 공백기에 우후죽순 튀어 나온 것이다.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세비치(Milosevi Slobodan)와 크로아티아의 프라뇨 투지만(Franjo Tudjman) 등이 대표적이다.

 

그 중에서도 발칸의 도살자라 불리는 밀로세비치가 그 중심에 있다. 그는 세르비아니즘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세르비아인들 사이에 대세르비아 건설의 욕망을 불 지피면서 세르비아 민족주의의 지도자로서 자신을 부각시키려 했다. 세르비아니즘 강조는 곧 연방을 구성하는 다른 민족들에게는 배타와 차별 그리고 지배로 다가왔다.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출처: 경상일보)

 

그러다 공화국 분열의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이 1989년의 코소보 자치권 박탈이었다.

 

코소보는 인구의 대다수가 무슬림 알바니아계로 당시 세르비아의 자치주였다. 1974년 티토가 코소보를 자치주로 승격시켰다. 그런데 갑자기 밀로세비치가 세르비아니즘을 강조하며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해버리고, 세르비아로의 동화 정책을 강화했다. 알바니아계에 대한 차별도 조직적으로 이뤄졌는데 당시 코소보에서 경찰이나 교사 등 공무원으로 있던 상당수 알바니아계가 하루아침에 파면을 당하기도 했다. 이를 묵도한 여타 공화국들이 더 이상 연방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각자 독립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연방 결속의 구심점이었던 티토와 사회주의가 사라진 이상 차별과 공포 속에서 연방에 남을 공화국은 없었다.

 

각 공화국들은 연방의 해체를 서둘렀고, 반면에 대세르비아의 기치를 올리고 권력을 잡은 밀로세비치에게 연방의 해체는 곧 자신의 권력 기반의 상실을 의미했다.

 

 

다음 글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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