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의 꿈, 보헤미안의 삶

세상의 모든 경계를 넘어 보다 자유로운 미래를 그린다

미얀마의 민주화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며...

살아보기(국내)/청주살이(20220521~ )

노가다 이야기 12: 노가다(건설 노동)에서의 안전이란? (20220707)

경계넘기 2022. 10. 13. 04:31

 

 

노가다(건설 노동)에서의 안전 이야기

 

 

 

한국에 배낭여행이 확산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여성 여행가가 있다.

 

한비야가 그녀다. 그녀가 쓴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이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 배낭여행이 급속히 늘었다. 한비야가 여성이라 그런지 여자 배낭여행자들도 무척이나 많이 늘었다. 나 역시 그녀의 책을 읽었다. 재미있게 읽긴 했는데 그녀의 책을 읽다보면 무척이나 불편한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대표적인 것을 하나 꼽는다면 남미에서 히치하이킹을 했다는 대목이다.

 

먼저 이야기하지만 이거 진짜 위험하다.

남성도 위험하지만 특히 여성 혼자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위다.

 

다를 알겠지만 삼성전자가 새벽에 조깅을 하는 여성을 배경으로 영국에서 광고를 냈다가 영국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여성 혼자 새벽에 돌아다니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위험한 행위를 조장했다는 이유에서다. 영국과 같은 서유럽 선진국에서도 여성 혼자 새벽에 다니는 일을 매우 위험한 행위로 여긴다.

 

서유럽 선진국들의 치안이 이럴진대 남미의 치안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남미 브라질의 경우 최대도시인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의 가장 번화하고 부유한 동네에서도 거리마다 중무장한 경찰이 순찰을 돈다. 단순히 권총에 삼단봉 찬 모습이 아니다. 방탄조끼에 자동소총을 들고 있다. 소총도 단순히 어깨에 메거나 걸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경계자세, 즉 언제든 대응사격이 가능하도록 왼손은 무조건 방아쇠 고리에 걸치고 있다. 남미에서 장거리 버스를 탈 때도 귀중품은 잘 보관하라고 한다. 고속도로 중간에 버스를 터는 무장 강도들이 많기 때문이다. 배낭은 물론이고 여행자들의 경우 몸을 뒤져 복대도 턴다.

 

그런 남미에서 여성 혼자 히치하이킹을 한다고!

 

행여 한비야 자신이 히치하이킹을 했다손 치더라도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담아야 했다. 그런데 그녀는 마치 그렇게 따라하라는 듯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솔직히 그녀가 남미에서 정말 혼자 히치하이킹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했다손 치더라도 지금까지 별탈이 없었던 것은 그저 그때 그녀의 운이 좋았을 뿐이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안전을 챙기는 것이다.

 

가지 말라는 곳은 되도록 가지 말고, 저녁에는 홀로 나가지 말고, 귀중품은 가지고 다니지 말고, 제발 돈 자랑 하지 말고 등등. 여기에 자신의 건강을 너무 과신하지 말고 여행 중간 중간 적당한 휴식을 취해주어야 함은 물론이다. 안전이 전제되지 않는 여행은 안 하는 만 못하다. 잘못되면 자신뿐만 아니라 국가나 국제 수준의 민폐만 초래할 뿐이다.

 

 

 

그렇다면 노가다(건설 노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안전!

 

내가 있는 포설 팀은 작업 특성 상 높은 곳에서 작업하는 고소(高所) 작업이 많다보니 안전 규정이 특히나 까다롭다. 일단 고소 작업을 하고 있으면 지나다니는 안전요원들이 반드시 한번 이상은 작업자들을 지켜본다.

 

높은 곳에 올라갈 때 반드시 사다리나 고소작업대(TL, Table Lift) 등을 써야 하는 데 이것에 대한 안전 규정도 만만치 않다. 그냥 사다리 놓고 올라가면 되는 게 아니라 일단 사다리 하나에 반드시 3인이 붙어야 한다. 사다리 위로 올라가는 작업자 한 명에 양쪽 사다리를 붙들고 있는 2명의 작업자가 있어야만 사다리 작업을 할 수 있다. , 여기에 유도원도 한 명 있어야 하니 사다리 하나에 작업자가 4명이 필요하다. 아울러 사다리는 반드시 움직이지 않도록 상부를 끈 등으로 고정시켜야 한다. 고소작업대는 운전하는 작업자와 유도원만 있으면 되지만 전동으로 움직이는 고소작업대의 성격상 규정이 더 까다롭다. 그 규정을 여기에 일일이 나열하자면 한도 없다. 사다리나 고소작업대를 이용해서 1m을 올라가든 10m을 올라가든 반드시 규정대로 해야 한다.

 

아울러 고소 작업 시에는 반드시 생명선을 달고 안전 고리를 체결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더욱이 상부에서 이동을 할 때에는 교차 체결, 즉 이동 중에도 안전벨트에 있는 두 개의 고리 중 하나의 고리는 반드시 체결되어 있어야 한다. 이동할 곳에 새 생명선을 걸고 그곳에 하나의 안전벨트 고리를 걸고, 이전에 있는 장소의 생명선을 해체해서 나머지 한 개의 고리를 새 생명선에 걸면서 이동한다. 이동 거리가 길면 이 작업을 반복해서 이동해야 한다. 안전벨트를 걸지 않는다면 슁 하고 단박에 달려갈 수 있는 곳을 이렇게 교차체결하면서 가야하니 무척이나 귀찮고 시간이 많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마음 급한 작업자들 사이에서는 볼멘소리가 아니 나올 수 없다.

 

노가다에도 앞서의 한비야 같은 사람이 꼭 있다.

 

이곳 반도체 공장 현장은 여타 플랜트 현장이나 일반 현장보다는 안전 규정이 무척 엄격하다. 규정을 잘 지키면서 작업을 하다보면 작업 진척이 잘 나오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 경력이 있는 사람들 중에는 예전의 공사 현장이나 일반 플랜트 현장 이야기를 곧잘 한다. 당연히 10m가 넘는 높은 곳에서도 안전벨트 체결 없이 날라 다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노가다의 한비야들에게는 다른 점이 있다.

 

예전에는 지금 이틀 걸릴 거 반나절이면 다 해치웠다고 하면서도 끝에는 꼭 따라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자신이 일했던 현장에서 죽거나 심하게 다친 사람을 봤다거나 자신이 떨어져봤다는 등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어떤 작업자는 자신의 흉터 등을 보여 주기도 한다. 안전규정이 약한 일반 현장이나 플랜트 현장에서 얻은 상처란다. 천장 작업자들은 천장에 달린 금속의 숱한 덕트나 트레이 등을 넘나들며 작업을 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이들의 날카로운 가장자리나 모서리에 많이 베이거나 찔릴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이곳 반도체 현장은 안전 규정이 까다로워서 천천히 작업하다보니 별 상처가 없단다.

 

작업자들의 이야기들 속에 이렇게 결론이 나와 있다.

 

적어도 깐깐하게 안전 규정을 따지는 이곳 반도체 현장에서는 생각보다 다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베이거나 찔리는 사람은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고, 한 달에 한 명 정도는 구급차에 실려 가는 작업자가 나오니 공사 현장에서는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사실 유도원인 나의 주된 역할이 안전을 챙기는 것이다.

 

유도원이나 안전감시단 등의 안전 관련 인력이 건설 현장에 엄청 많다는 사실을 나도 여기 와서야 알았다. 안전감시단은 남자가 위주지만 유도원이나 화기감시원은 여자가 많으니 의외로 건설 현장에 여자가 많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만큼 요즘 반도체 현장에서는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전 덕분에 일이 더 편하다.

 

제약이 많다보니 일을 천천히 그리고 편하게 할 수밖에 없다.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혼자도 할 수 있는 일을 여럿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일이 편할 수밖에 없다. 높이에 상관없이 사다리 작업 하나 하는 데 유도원 포함해서 기본 4명이 필요하다. 자재의 양과 무게와 상관없이 자재를 나르는 양중을 하는 데는 기본 5명이 필요하다. 양중도 기본적으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한다. 양중은 기다리는 게 일이다. 여기에 고소 작업 시 생명줄 체결하고 풀고, 교차걸이 하고 등등. 빨리 할래야 할 수가 없다. 건설 근로를 처음하거나 다치고 싶지 않다면 반도체 건설 현장에서 일을 시작하기를 추천한다.

 

몸이 생명인 건설 근로나 여행에서는 건강한 몸이 시작이자 끝이다.

 

나라를 위해 간 군대라도 다치면 나만 손해인 법이다. 돈 벌러 와서 몸을 다치거나 죽는다면 그것만큼 허망한 것이 없다. 거기서 끝난다면 다행이지만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엄청난 민폐가 될 수도 있다. 현재의 건설 현장에서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성과는 점점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다. 오히려 안 하는 만 못한 것 같다. 굳이 옛 경험에 기대지 말고 변화하는 현 시대에 맞추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게 이 일을 하면서 만난 많은 작업자들 이야기의 솔직한 결론이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