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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이야기 10: 작업복에도 패션이 있다 (20220527)

경계넘기 2022. 7. 18. 05:28

 

 

작업복에도 패션이 있다!

 

 

노가다라고 하면 막노동을 연상했다.

더러운 작업복을 입고 무식하게 힘만 쓰는 그런 일들. 그런 사람들.

 

그런데 웬걸!

사람들이 멋있다.

그들이 입는 작업복도.

 

작업복에도 패션이 있다.

 

기본적으로 착용하는 안전 용구들이 있다. 마치 군대에서 군복에 헬멧, 방탄조끼, 탄띠, 고무링, 전투화를 착용하듯이 건설일도 안전모, 조끼, 안전벨트, 각반, 안전화를 착용한다. 여기에 각각의 공정에 맞는 작업 도구들을 안전벨트에 착용한다. 마치 군인들이 소총, 수류탄 등의 개인화기를 착용하는 것처럼.

 

이게 멋있다.

 

이런 안정 장비들과 작업 도구들을 지급하고 착용한다는 사실에서 예전 드라마에서 보는 막노동꾼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뭔가 전문가다운 냄새가 풍긴다. 막 자대에 배치 받은 어설픈 이등병이 전투복에 새로 지급 받은 헬멧과 방탄조끼, 탄띠, 전투화를 착용하고 소총을 들으면 뭔가 된 듯한 기분이 들 듯이 이들 안전 장비들을 다 착용하면 나 역시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업체의 현장 소장 말로는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쓰던 낡은 장비들이 주로 지급되곤 했다는데 지금은 무조건 새것이 지급되니 여기에 새것의 상큼함과 각이 있다.

 

 

 

확실히 패션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전투복과 개인장비를 잘 차려입은 군인들을 보면 절로 눈이 돌아가듯이 이곳 건설 현장에도 나도 몰래 눈이 가는 멋진 건설 기술자들이 많다. 비슷한 작업복과 같은 안전 장구들인데 입은 사람들에 따라 왜 이리 다른지. 각이 산다고 할까? 군대에서 보면 같은 군복이라도 이등병은 뭔가 어설퍼 보인다. 아무리 고참들이 다려주고 다듬어주어도 몸과 군복이 따로 노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하지만 상병, 병장의 모습을 보면 낡은 군복에 대충 입었음에도 각이 살고 멋이 난다.

 

여기도 비슷하다. 경력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같은 작업복과 장비라 할지라도 각이 살고 멋이 난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같은 작업복에 장비를 착용했지만 멋스러움이 있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일단 작업복과 장비들이 깔끔하다. 먼지 풀풀 나는 현장에, 이른 새벽의 출근이지만 항상 깔끔한 차림으로 출근을 한다. 여기에 색깔이나 깔 맞춤이 더해지면서 패션이 살아난다.

 

하지만 진정한 패션은 그들의 자신감에서 나오는 듯하다.

 

이들은 자세부터가 당당하다. 사회적 인식 같은 것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자신의 일과 기술에 자부심이 있어 보인다. 이런 사람들은 걸음걸이마저 다른데, 그런 자세가 자연스럽게 패션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흔히 패션의 끝은 자신감이라고 하지 않는가! 아무리 비싼 명품을 입어도 주눅 들어 있으면 패션도 죽지만, 청바지에 티 하나를 입어도 당당하면 거기에서 패션이 산다.

 

작업복 또는 유니폼이 주는 인상이 있다.

 

대학생 때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호주에 갔을 때다. 시드니에서 거리 청소를 하는 청소부 아저씨들을 곧잘 만났다.

 

그런데 이들 청소부 아저씨들의 모습이 보통 당당한 게 아니었다. 한국과 달리 위축된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분들 복장이 장난 아니다. 오래된 기억이지만 보이스카우드 복장 같은 멋진 갈색 청소부 유니폼을 입었다. 카우보이모자를 멋지게 쓴 분도 있었다. 여기에 진공청소기부터 다양한 청소용품이 장착된 쓰레기를 담는 작은 전용 전동 기구를 끌고 다녔다. 유니폼과 장비가 주는 영향 때문일까, 그냥 거리의 청소부가 아니라 마치 청소 전문가적인 풍모를 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청소부라는 직업에 대한 당당함과 자부심이 그런 모습과 패션을 만들지 않았을까?

 

호주 버스를 타면 기사분의 복장이 마치 파일럿 같았다.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면 기사분이 잘 다린 정장 유니폼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 정말 비행기를 모는 파일럿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이분들 역시 자신의 일에 꿀림이란 없어 보였다. 손님들과 농담도 하면서 정중하지만 격의 없이 지내는 모습이 유독 눈에 띄었다.

 

물론 여기에는 노동에 대한 호주의 사회적 인식이 잠재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호주에서는 육체노동이나 정신노동이나, 즉 블루칼라나 화이트칼라나 별반 큰 차이를 두지 않는다. 한국과 같이 육체노동을 폄하하거나 신분을 나누는 중요한 기준으로 보는 경향도 거의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무척 낮아 보인다. 오히려 호주에서는 대학교수보다 목수나 배관공의 보수가 더 높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래서일까 호주에서는 대학교육이 거의 무료임에도 대학에 진학하는 젊은이들이 적어서 고민이란다.

 

시드니 대학에 청강을 하러 곧잘 갔었다.

 

그때 건물 수위 아저씨들과 교수들이 서로 이름을 부르면서 인사를 하고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곧잘 봤었다. 한국이라면 수위 아저씨들이 인사나 경례를 하고 교수들은 마치 그들의 상관인 마냥 인사를 받기만 하고 지나가는 모습이 흔하다. 헌데 시드니 대학에서는 교수들도 수위 아저씨들도 먼저 보는 사람이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하고, 마치 친한 친구나 동료처럼 농담도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아니다. 정말 그들은 친한 동료들이었다. 수위나 교수에 신분적 차별을 두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서는 분명 신분적 차별을 둔다.

 

하지만 막상 건설 현장에 와서 패션을 뽐내면서 당당하게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니 우리 사회도 곧 변화에 직면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현실적으로도 건설기술자들이 대학교수보다 봉급을 더 챙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남은 것은 사회적 인식인데 그건 건설근로자가 먼저 바뀌면 되지 않을까? 호주의 육체노동 근로자들처럼 멋진 패션과 자부심을 가지고 말이다.

 

요즘 자꾸 인터넷 쇼핑몰을 들어가 본다.

 

옛날 노가다꾼 생각하고 2만원에 원 플러스 원 바지를 사 입고 다니는데 영 볼품이 안 나서다. 멋있는 작업바지를 입고 있는 친구를 보면 어디서 산 바지인지 묻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그렇지 않아도 초보라 각이 안 나오는데 패션까지 죽으니 영 맛이 안 난다. 몇 달할지 모르는 데도 돈을 좀 써야 하나?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