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원은 편할 줄 알았는데......
하루 종일 서 있으려니 다리가 너무 아프다.
유도원은 개꿀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우리 팀은 7시 10분쯤 아침 조회격인 TBM을 체조와 함께 시작한다. 이때부터 점심시간인 오전 11시까지 한시도 앉지 못하고 계속 서 있어야 한다. 가끔 TL(Table Lift)이라는 장비를 유도할 때 조금 걷는 것 빼고는 작업 현장에서 지나 다니는 사람들을 통제하면서 계속 서 있는 게 일이다.
점심시간이 시작한다고 해서 좋은 일은 아니다. 더 힘들다. 그렇지 않아도 서 있느라 힘든 다리를 이끌고 식당까지 왕복 50분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바글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식사는 대충 15분 정도에 마치지만 식당을 나온 사람들에게 앉아 쉴 만한 곳은 없다. 식당 건물 주변의 그늘진 길 바닥에 앉아 쉬는 게 전부. 사실 M15 공장 현장에는 안전모를 벗고 편히 쉴 만한 공간이 출입구 직전의 식당과 출입구 초입의 몽골 텐트 빼고는 없는데 이게 턱 없이 좁아서 점심시간에는 사람들로 넘쳐나 앉을 자리가 없다.
오후에는 중간에 30분 정도 쉬는 시간이 있다. 하지만 건물 안에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 전무하다. 건물 안에서 안전모를 벗고 앉아 쉬다가 안전 요원에게 걸리면 바로 옐로우 카드다. 앉아 쉬려면 건물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4층 중간에서 밖으로 나가려면 또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그러니 제대로 다리를 편히 쉬게 할 수가 없다. 그런 상태에서 다시 퇴근까지 쭉 서 있어야 한다. 더욱이 출근 첫날인 오늘은 연장이 있는 날이다.
하는 일 없이 가만히 서 있으려니 시간도 정말 안 간다.
TL이나 짐을 옮기는 대차 등을 유도하느라 왔다갔다하면 그나마 시간이라도 잘 가는데 마냥 서 있자면 시간마저 서 있는 듯하다. 한 시간 정도 지나겠지 싶어 시계를 보면 겨우 10분, 15분 지나 있다. 미친다.
다행히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고통을 먼저 알아준다.
다리가 아프긴 하지만 옆에서 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있는 동료들을 보면 아프다는 말조차 꺼내기가 어렵다. 괜히 미안해지기도 하고. 무료하게 서 있는 나를 보고 같이 점심을 했던 동료가 말을 건네 온다.
“힘들지 않아요?”
“뭘요, 힘쓰며 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그냥 서 있는 게 가장 힘들어요. 우리야 일하면서 앉기도 하지만 짬짜미 쉬기도 하지만 유도원은 앉을 수가 없잖아요. 그게 진짜 다리 아프고 힘들어요. 그리고 우리야 일 한번 하면 시간도 훌쩍 가지만 그냥 서 있으려면 시간도 안 가고 미쳐요. 나는 유도원하라고 해도 못해요”
“그러게요. 다리가 정말 아프네요.”
“눈치껏 벽에도 기대고 그래요. 그렇게 뻗치고 계속 서 있으면 오래 못 버텨요”
한번은 팀장이 옆으로 오더니 묻는다.
“안 힘드세요”
“다리가 아프긴 한데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가만히 서 있는 게 진짜 죽을 맛이에요. 여기 오기 전에 이천 하이닉스에서 일을 했는데요. 그곳은 전선이 두꺼워서 사람 힘으로 당길 수가 없어서 기계를 이용해서 포설을 했어요. 덕분에 하는 일이라곤 기계에 전선을 연결시키고 기계가 다 당길 때가지 기다리는 것이었는데 내내 그냥 서 있자니 어찌나 다리 아프고 시간도 안 가는지 죽는 줄 알았어요”
내가 있는 팀은 전기 포설팀이다. 포설이란 전기 공종 중에서 전선을 까는 일을 말한다. 전기 공종에도 단말, 트레이, 포설 등의 공종으로 세분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힘든 일이 전선을 까는 포설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다른 유도원 선배가 와서 말을 해준다.
“처음에는 발바닥이 아프다가 며칠 지나면 무릎, 그리고 더 지나면 허리가 아파지기 시작합니다. 나도 그래요. 지금은 허리가 아파요.”
“그래요?”
“그럼요. 허리 디스크가 있는 사람들은 허리가 너무 아파서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요”
알아주니 고맙긴 하지만 남이 알아준다고 나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유도원 첫날임에도 다리가 너무 아프다. 안전화가 익숙하지 않으니 더욱.
첫날임에도 연장이 있는 날이다.
시간이 길어도 너무 길다.
역시 세상에 마냥 편한 일은 없다.
일당을 그만큼 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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