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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이야기 8: SK하이닉스 M15 건설 현장으로 (20220524-1)

경계넘기 2022. 6. 12. 11:37

 

 

SK하이닉스 M15 건설 현장으로

 

 

새벽 545분에 집을 나선다.

 

630분까지 업체 사무실 앞에서 내가 일을 할 팀의 팀장을 만나기로 했다. 그 시간에 맞추려 넉넉히 길을 나선다. 여름의 초입 5월 말의 해는 길어서 이 시간에도 날은 훤하다. 하지만 길은 한산하다.

 

3일째 자전거로 가는 길이지만 힘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경사진 고개가 익숙해지지 않는다. 유도원으로 첫 출근이라 안전모에 조끼, 메가폰, 신호봉까지 들고 가자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아예 안전모에 조끼, 안전벨트까지 매고 출근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빨간색 안전모 그리고 등짝에 유도원이라는 큼지막한 팻말이 붙은 빨간색 조끼는 여간 우스워 보이는 게 아니라 집에서부터 입고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차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도 차에서 내려 장비들을 차려 입는다.

 

620분쯤 M15 동문에 자전거를 주차하고 조끼와 안전모 그리고 각반을 차고 건설 현장 맞은편에 있는 사무실로 향한다.

 

건설 근로자들의 출근 행렬이 대단하다.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 반대편 횡단보도에 어머어마한 인파의 건설 노동자들이 길을 건너려 기다리고 있다. 차를 주차장에 주차하고 넘어오는 사람들이다. 신호등이 녹색으로 변하니 안전모를 쓰고 각각의 조끼를 입은 건설 노동자들이 물고기 떼가 지나가듯 길을 건넌다. 위세가 자못 대단하다. 출근하는 근로자들의 이런 인파를 뉴스에서나 가끔 봤지 실제로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하긴 유니폼이 달라서 그렇지 서울의 웬만한 지하철 입구마다 출근 시간에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사무 근로자들로 넘쳐나긴 마찬가지다. 여기는 와이셔츠 대신 조끼, 넥타이 대신 안전벨트, 구두 대신 안전화를 신었을 뿐이다. 좀 더 차려 입는 게 있다면 안전모와 각반 정도 아닐까.

 

컨테이너로 만든 사무실 앞에 기다리니 팀장이 온다. 생각보다 젊은 팀장이다. 서글서글한 외모에 성격도 좋아 보인다. 팀장의 안내를 받아 일할 현장으로 간다.

 

 

 

뭐가 이리 거치는 게 많은지.

 

일단 현장 입구에 들어가기 전에 복장을 챙겨야 한다. 반드시 안전화와 안전모에 조끼를 입고, 각반을 차야 한다. 일반 건설 노동자들은 여기에 안전벨트를 착용한다. 안전 장구 외에도 복장 규정이 있는데 반팔과 반바지는 절대 안 된다. 안전 때문이다.

 

입구 옆에 있는 체크인에서 건설근로자공제카드를 찍어야 한다. 찍고 잠시 기다리면 내 얼굴이 뜨면서 출근이라고 표시된다. 그리고 핸드폰 사진 구멍에 SK하이닉스에서 제공하는 스티커를 붙인다. 반도체 공장은 보안 시설이라 내부에서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된다. 스티커를 붙이면 사진 촬영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스티커를 떼었다가 다시 붙으면 스티커에 하얀색 마크가 들어나기 때문에 바로 알 수 있다.

 

스티커를 붙인 핸드폰을 보안 요안들에게 보여주고 입구로 들어간다.

 

입구 개찰구에 하이닉스 출입증을 찍는다. 이걸 찍어야 내 출근 시간이 등록되면서 출근 인정이 된다. 건설근로자공제카드는 깜박할 수도 있겠지만 출입증은 찍지 않으면 개찰구가 열리지 않으니 잊을 수가 없다. 글은 이렇게 정리해서 쓰고 있지만 사람들 인파 속에서 팀장을 따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입구를 막 벗어나면 예전 쌍팔 년도 고등학교 시절의 교문에 서 있던 학생부원처럼 빨간색과 검은색 옷을 입은 안전 요원들이 양편으로 도열해서 복장 불량자를 잡는다.

 

이때 팀장이 나를 보며 씩 웃으며 말을 한다.

 

술 좋아하세요?”

좋아하죠

되도록이면 주중에는 술을 마시지 마세요

왜요?”

여기서 안전요원들이 음주측정기 들고 음주 단속 하거든요

정말요!”

제가 지난주에 새벽까지 술 먹고 출근하다 음주로 걸렸어요

이런!”

옐로우 카드 받아서 한 번만 더 걸리면 저 퇴출이에요. 덕분에 주중에는 술 쪽으로 고개도 안 돌려요

 

음주 측정에 걸리면 음주자는 당일 출근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옐로우 카드를 받는다고 한다. 옐로우 카드를 받은 상태에서 다시 걸리면 당연히 레드 카드로 퇴출이다.

 

여기를 통과하면 사내화 구간 입구에서 다시 출입증을 찍는다.

 

공장에는 사내화와 사외화 구역이 있다. 사내화 구역은 하이닉스가 입주해서 가동 중인 공간을 말하고, 사외화 구역은 아직 건설사가 건설을 진행 중인 공간을 말한다. 반도체 공장과 같은 공장은 완전히 완공된 후에 가동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완공된 층부터 단계적으로 가동을 한다고 한다. 하이닉스가 입주해서 가동을 시작한 공간이 사내화 구간이다.

 

아파트로 설명하자면 주민이 입주하기 전 아파트는 건설사가 소유하는 공간이다. 당연히 건설사가 관리 주체가 되는 곳으로 이를 사외화 구역이라 하겠다. 반면에 입주자가 입주를 마치는 순간 그 공간은 입주자의 소유가 되고 관리의 주체 역시 입주자가 된다. 이 구간을 사내화 구역이라 하겠다. 사내화 구역은 하이닉스가 관리하고 실제 가동을 하고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관리 주체 역시도 SK에코플랜트가 아니라 하이닉스다. 따라서 더 엄격한 하이닉스의 보완 절차를 적용한다. 우리 팀이 일하는 곳이 사내화 구간으로 이 구간으로 들어갈 때 반드시 출입증을 찍어야 한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정된 구역의 출입구를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나갈 때마다 출입증을 찍어야 한다. 외부에 잠깐 담배 피러 갈 때도 나갈 때와 들어올 때 반드시 출입증을 찍어야 한다.

 

출입증은 그렇다 치더라도 가장 큰 문제는 넓어도 너무 넓다는 것.

 

내가 일할 곳은 M15 현장에서도 가장 끝에 있다. 덕분에 입구 개찰구에서 4층에 있는 샵장까지 천천히 걸어서 20분 가까이 걸린다. 주차장에서 출발하면 이래저래 걸어서 30분 가까이 걸리는 셈이니 아무리 집이 가까워도 일찍 출근할 수밖에 없다.

 

그깟 20분 정도 운동하는 셈치고 산책하듯 걸으면 되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그건 책상에서 일하는 사무직일 때 이야기다. 노가다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하루 종일 서서 걸으며 하는 일인지라 그렇지 않아도 다리가 아픈 터에 이렇게 오래 걸으니 더 지치고 힘들어진다.

 

점심 먹으러 갈 때가 가장 고역이다.

 

출퇴근 때만 이 거리를 걷는 것이 아니다. 점심 먹으러 갈 때도 걷는다. 식당이 현장 입구에서도 7~8분을 더 걸어가야 한다. 밥은 10~15분 만에 먹는데 왕복 걷는데 50, 줄 서서 기다리는 데만 10분 정도가 걸린다. 점심시간이 2시간이지만 이렇게 제하고 나면 정작 쉬는 시간은 30분 안팎에 불과하다.

 

청주 하이닉스가 이 정도니 이곳보다 몇 배 인력이 많고 넓다는 평택 고덕의 삼성 반도체 현장은 어쩔지 가늠이 가질 않는다. 그나마 청주를 선택하길 다행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든다.

 

공장 내부도 어마어마하게 넓다.

 

한 작업 구간에서 다른 작업 구간으로 이동하려면 꽤 걸어야 한다. 게다가 반도체 공장의 한 층은 일반 건물의 2~3층 높이라 한 층 올라가는데도 무지 힘이 든다. 여기에 가끔 우리 팀은 사내화 구간에서 반대편 사외화 구간으로 이동해서 작업하는 경우도 있는데 몇 번 왔다갔다하면 진이 다 빠진다.

 

반도체 공장은 정말이지 걷는 게 일이고,

걷다가 지친다.

 

건설 현장의 사진을 첨부하고 싶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반도체 공장은 엄격한 보안 구역이라 사진 촬영을 할 수 없으니 이점 양해 바란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