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의 꿈, 보헤미안의 삶

세상의 모든 경계를 넘어 보다 자유로운 미래를 그린다

미얀마의 민주화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며...

살아보기(국내)/청주살이(20220521~ )

노가다 이야기 5: 노가다(건설 노동) 첫날, 교육만 받았는데 일당을 준다! (20220523-1)

경계넘기 2022. 6. 7. 21:52

 

 

노가다(건설 노동) 첫날, 교육만 받았는데 일당을 준다!

 

 

노가다 첫날이지만 사실 교육 받는 날이다.

 

하이닉스에서 일을 하려면 신규자 안전교육을 받아야 한다. 안전교육을 받지 않으면 하이닉스에서 일을 할 수 없다. 이건 하이닉스뿐만 아니라 다른 건설 현장도 마찬가지다. 교육과 함께 신체검사도 받는다. 특별한 것은 아니고 그저 혈압을 잰다. 혈압이 높으면 일을 할 수 없다. 병원에서 확인서를 떼 오거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새벽 6시까지 하이닉스 근처 업체 사무실로 오란다.

 

새벽에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간다. 어제 답사했던 길이지만 역시 고개가 있어서 힘이 든다. 길도 지랄 같고. 노가다는 교육도 이른 아침에 하나보다. 하이닉스 근처 컨테이너 사무실에 가서 간단한 서류를 써서 제출한다. 일종의 입사 서류다. 오늘 이 업체에서 나와 같이 갈 신규 교육자는 세 명이다. 이들 중 진짜 초짜는 나 혼자. 다른 두 분은 이미 경험이 많은 분들이다.

 

7시부터 교육이란다. 정말 이른 아침에 교육을 한다. 신규 담당 직원의 인솔 아래 교육장으로 간다. 교육장은 하이닉스 현장 입구 바로 앞에 있다. 덕분에 출근하는 건설 노동자들의 인파 속에 묻힌다. 가끔 뉴스에서 보긴 했지만 현장으로 향하는 건설 노동자들의 인파가 어마어마하다. 그 속에서 행여나 인솔 직원을 놓칠까 바짝 붙어 걷는다.

 

넓은 교육장이 꽉 찬다.

 

교육장이 넓다. 다 차겠나 싶었는데 웬걸 다 찬다. 대충 200여 명은 되어 보인다. 교육 전에 혈압부터 잰다. 혈압이 150이 넘으면 교육도 받을 수 없단다. 조금 긴장이 된다. 항상 최고 혈압이 120대를 유지했는데 스트레스를 좀 받았는지 최근 140대가 나왔기 때문이다. 2차에 걸쳐 혈압을 잰다. 1차는 자동 혈압측정기를 이용해 셀프로 재고, 여기에서 150이 넘는 사람들은 다시 2차 측정을 받는다. 2차 측정은 사람이 수동으로 측정한다.

 

혹시나 싶었는데 150이 훌쩍 넘게 나온다.

 

140대도 아니고 150이 훌쩍 넘다니 당황스럽다. 혈압이 150이 넘는 사람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잠시 앉아 있으라고 하는데 그 짧은 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지나간다. 그냥 몸만 잠시 왔다면 모를까 청주로 이사까지 한 상황이다. 혈압에서 문제가 생기면 아예 하이닉스에서 일을 할 수 없으니 난감해진다.

 

2차 혈압을 잰다. 사람이 직접 수동으로 혈압을 재는데 한 손으로는 혈압측정기를 누르고 한 손으로는 내 손목의 맥을 잡는다. 2차 혈압에서도 151이 나왔다. ! 노가다도 물 건너가는구나 싶었던 찰라 내 혈압을 재던 친구가 이렇게 말한다.

 

무척 긴장을 많이 하셨나 보네요. 긴장해서 맥박이 빨라지면 혈압도 높게 나와요. 서류 옆에 두시고 자리로 돌아가세요

 

이게 무슨 말인지. 통과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인지. 제대로 확인을 하고 싶었지만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으니 신체검사서만 옆 테이블에 두고 자리로 돌아온다. 인솔 했던 직원이 와서 어떻게 됐냐고 나에게 묻는데 잘 모르겠다고 했다. 신체검사서 두고 자리로 돌아가라고 해서 왔다고 했더니 자신이 알아보겠단다. 그러더니 곧 다시 와서 통과했단다.

 

통과했다는 말을 듣고서야 그 친구의 말이 이해된다. 혈압과 함께 맥박도 잰 이유가 종종 긴장해서 혈압이 높게 나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가 보다. 아마도 내 맥박이 빨라서 그 때문에 혈압이 높게 나왔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어찌 되었건 두 가지 사실은 확실하다. 하나는 하이닉스에서 노가다를 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 혈압이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혈압관리 해야겠다.

 

교육은 안전교육인데 1시간 정도 한 것 같다.

 

오히려 200여 명의 혈압 재는 데 시간이 더 많이 든 것 갔다. 교육을 마치고 바로 안전 장구를 받는다. 짐이 한 가득이다. 안전모, 안전화, 안전벨트, 각반, 귀마개, 작업 장갑 2. 이건 SK에서 주는 것이고 나중에 업체에서 조끼도 준다. 많이 보긴 했지만 직접 받아보긴 처음이다.

 

오후에는 유도원 시험이 있다.

 

유도원 교육을 따로 받고 시험을 치는 줄 알았는데 그저께 PPT 자료 하나 카카오톡으로 보내주더니 시험을 보란다. 시험은 어렵지 않다. 10문제 나온다. 금방 제출하고 나왔는데 인솔 직원 말이 40분 정도 기다리면 결과가 나온단다.

 

합격이란다.

 

이번에는 다시 유도원 안전장구를 받는다. 빨간 안전모와 빨간 조끼를 받았다. 여기에 신호봉과 메가폰도 준다. 앞서 받은 일반 장구는 반납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가져가란다. 하얀 안전모에 빨간 안전모, 파란 조끼에 빨간 조끼 여기에 앞서 받은 장구들까지 아주 바리바리다. 가방이 작아서 비닐봉지에 이들 장구들을 담아 들고 자전거를 타려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하지만 기분은 좋다.

 

왜냐고? 교육과 시험만 봤는데 오늘 하루 일당을 준단다. 그것도 1공수를 쳐 준단다. 내 일당이 14만원이니 교육 2시간과 시험 잠시 보고 14만원을 챙겨 간다. 거저다 싶다. 노가다가 이런 맛이 있나 보다. 가는 길이 힘들 수가 없다.

 

교육만 받는 날임에도 노가다 첫날이라고 제목을 적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당을 받았으니 당연히 노가다 첫날이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