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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이야기 4: SK하이닉스 출근길 답사 & 하이닉스 이야기 (20220522)

경계넘기 2022. 6. 6. 18:04

SK 하이닉스 M15 공장

 

 

SK하이닉스 출근길 답사 & 하이닉스 이야기

 

 

청주에서의 온전한 첫날.

일요일이다.

 

중고 자전거를 사러 간다.

 

당장 내일 월요일부터 하이닉스에 가야하니 자전거가 필요하다. 이른 아침이라 택시 외에는 마땅한 대중교통 편이 없다. 그저께 방을 구하러 청주에 왔다가 들렸던 삼천리 자전거포에 간다. 사장님이 대번 나를 알아보신다. 덕분에 방을 잘 구했다고 인사를 드린다. 사장님이 깨끗하게 손을 본 중고 자전거를 13만원에 산다. 자전거를 묶을 체인과 앞, 뒤 자전거 라이트를 서비스로 주신다.

 

이제는 내일 갈 SK하이닉스를 자전거로 답사해본다.

 

내가 일할 곳은 SK하이닉스 M15 공장이다. 지금 한창 건설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이천에 이어 청주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M15 옆에는 이미 M11, M12 공장이 가동 중이다. M15 공장도 1~3층은 이미 완공되어 가동 중이고 현재 공사 중인 곳은 4~7층으로 알고 있다. 세 곳 모두 낸드플래시 생산공장이다.카카오맵으로 확인하니 집에서 SK하이닉스 M15 공장까지 대략 5km에 자전거로 20분 정도 걸린다고 나온다. 내일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려면 길을 익혀 놔두어야 실수를 하지 않는다. 정확한 시간도 알 수 있어서 출근 시간도 맞출 수 있다.

 

제법 경사가 있는 두 개의 언덕에 자전거 길도 엉망이다.

 

산업단지라 대체로 평지에 길이 넓고 시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경사길이 제법 나온다. M15 공장까지 제법 가파른 고개를 두 개나 넘어야 한다. 더욱이 인도 곳곳이 공사 중이다. 뭐 이런 개판이 다 있나 싶다. 때론 파헤쳐 놓은 인도를 달려야 하고, 때론 도로로 나가야할 때도 있다. 여기에 더해 왜 이리 사거리 신호등이 많은지 신호 기다리다가 볼 일 다 보겠다 싶다.

 

M15에 도착하니 거의 40분 가까이 걸린다.

 

카카오맵에서 알려준 예상 시간의 2배다. 망할 놈의 카카오맵은 가는 길의 경사도도 나오더니만 어떻게 20분이 나오는 것인지. 초행길이라 가끔씩 지도를 보고, 길을 확인한 시간이 들었으니 다음에는 30~35분까지는 단축이 가능해보이지만 그 이하는 아무리 봐도 무리다. 인도 공사들이 다 마무리가 된다면 30분 안팎까지는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언덕에 신호등은 어쩔 도리가 없다. 경사가 있으니 오는데 꽤 힘이 든다. 간만에 타는 자전거이기도 했지만 확실히 편한 길은 아니다.

 

하이닉스 공장들 맞은편으로 연이어 LG 공장들이 있다.

 

LG화학과 LG생활건강 공장이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다녔던 첫 직장이 LG라 그런지 LG를 보면 어쩔 수 없이 정이 간다. 나쁜 일로 나온 것도 아니고, 역마살 덕에 선배, 동료들의 한없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 발로 나온 곳이다. 나쁜 감정이 있을 리가 없다. 마치 친정집을 보는 것 같다.

 

LG생활건강에는 친한 대학동기가 다니고 있다.

 

청주 공장은 아니고 서울 본사에 있다. 그런데 이 친구 본가가 청주다. 원래는 청주 공장에 다니고 싶어서 지원한 것인데 서울로 발령을 받는 바람에 한 동안은 주말 부부 생활을 했다. 부부가 모두 청주 사람인데다가 제수씨가 청주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했기 때문이다. 서울로 이직 신청을 해도 지방에서 임용 받은 교사가 서울에 발령 받기란 하늘에 별 따기다. 한참 뒤에야 경기도에서 임용을 받아 서울로 가족이 이사를 하게 되면서 주말 부부 생활은 청산했다. 어떻게 해서든 서울로 가려고 하는 시대에 이 친구는 어떻게 해서든 청주로 오려고 했던 놈이다.

 

대학 다닐 때 이 친구 따라 청주에 몇 번 왔었다. 친구 집에서도 자고. 내가 청주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 언제고 올 놈이지만 당분간은 연락을 안 하기로 한다. 엄청 고루하고 보수적인 놈이라 나의 이런 생활을 이해도, 이해할 생각도 없는 놈이다. 만나기만 하면 언제까지 그렇게 철없이 살 생각이냐고 잔소리만 늘어놓는 놈인데 여기에 노가다까지 한다고 하면 게거품 물면서 말할 터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해진다.

 

SK하이닉스 M15 공장이 위용을 드러낸다.

 

1~3층이 공사를 마치고 가동 중이라 하더니만 외관은 이미 멀쩡한 공장이다. 반도체 공장의 규모가 크다더니만 어마어마하다. 맞은편 꽤 규모가 있는 LG생활건강과 LG화학 공장이 왜소하게 보일 정도다. 반도체 공장은 걸어 다니는 게 일이라더니만 틀린 말이 아닌 듯하다. 일요일에는 공사가 없는 듯 공장 주변은 조용하다. 앞으로 내가 일할 곳이라니 색다른 감정이 든다.

 

 


 

 

SK하이닉스는 현재 두 곳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두고 있다.

 

첫 번째는 역시 경기도 이천. 현대전자 시절 이곳에 반도체 공장의 첫 삽을 떴다. 지금도 이천에는 마지막 증설 공사가 한창이다. 청주에도 하이닉스 공장이 있다는 것을 몰라서 처음에는 이천으로 갈려고 했었다.

 

이천 하이닉스 공장을 생각하면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이 생각난다.

 

정주영 회장과 이천 하이닉스 공장에 얽힌 야사가 있다. 하이닉스의 전신이 현재전자라는 사실은 다들 아실 게다. 이천에 현대전자 첫 반도체 공장을 완공하자 정주영 회장이 그간 고생한 직원들을 위로하러 이천 공장에 왔다고 한다. 공장 마당에 회식 자리를 마련하고 축하연을 하는데 웬걸 술이 금방 떨어졌다고 한다. 회장님이 오신 만찬 자리가 설마 술판으로 변할까 싶어 술을 많이 준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이 누군가? 진짜 노가다 판, 건설 현장에서 시작해서 현대그룹을 일군 사람이 아닌가! 기쁜 마음에 제대로 직원들을 위로하고 축하하려는 자리에 술이 없다니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정주영 회장은 어떻게 해서든 술을 가져오라고 불호령을 내렸을 게다. 담당 직원들이 회사의 트럭을 끌고 이천은 물론이고 주변 지역의 구멍가게까지 다 털어 술을 구해왔지만 그것가지고도 어림이 없었다. 마침 이천에는 OB 맥주공장이 있었다. 이를 안 정주영 회장이 자신이 책임질 터이니 OB 맥주공장의 창고를 털어가지고 오라고 했단다. 직원들이 바로 OB공장으로 달려가 창고를 털어 술을 댔음은 물론이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그냥 야사에 불과한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 스타일이라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다. 정주영 회장이 좀 더 오래 살았다면 현대그룹이 쪼개지는 일도, 지금의 하이닉스가 SK에 인수될 일도 없지 않았을까 싶다.

 

두 번째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클러스터가 이곳 충북 청주다.

 

이미 완공되어 가동 중인 M11, M12 공장에 이어 내가 노가다를 뛸 M15 공장이 완공을 목전에 두고 한참 마무리 건설 중이다. 최근에는 새로운 M17 공장의 청주 증설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거의 확정된 듯하다가 용인 클러스터가 허가되면서 잠시 보류된 모양새다.

 

여기에 세 번째 SK하이닉스 클러스터가 들어설 곳이 경기 용인이다.

 

진작 착공을 했어야 했는데 토지 매입과 공업용수 확보가 늦어져서 며칠 전에야 허가가 떨어졌다. 용인 클러스터가 더 지연되었거나 아예 물 건너갔다면 청주에 M17은 물론이고 더 많은 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의 증설이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일단 용인 클러스터가 확보되면서 당분간 용인을 중심으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이 말인즉슨 M15가 완공되면 다음 하이닉스 건설 일거리는 용인에나 있다는 말이다. M15는 올해 말이면 완공될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M17 증설이 확정된다면 앞으로 몇 년은 더 청주에 건설 일거리가 있겠지만.

 

SK하이닉스 중국 공장도 있다.

 

중국 장쑤성(江蘇省)의 우시(無錫)라는 도시다. 미녀로 유명한 쑤저우(苏州) 바로 위에 있는 도시. 상하이(上海)에서 가깝다. 이곳에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이 있다. 내 기억으로는 이천 공장 다음으로 만든 공장으로 알고 있다.

 

2007년 중국 남부를 여행하다 우시에 우연히 들리게 되었는데 생전 듣도 못한 도시에 한국인들과 한글 간판을 단 상점이 많았다. 궁금해서 알아보니 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이 그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파견된 하이닉스 직원들이 우시에 한국촌을 형성하고 있었던 게다. 당시만 해도 우시의 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은 중국 내에서 최첨단 하이테크 공장이었음은 물론이고 중국인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었던 일자리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우연히 들린 도시에서 한국 회사와 한국인을 만나니 어찌나 반갑던지.

 

그렇게 우시에서 만났던 하이닉스를 청주에서 다시 만난다.

 

 


 

 

어째든 예상보다 자전거 출퇴근 시간이 늘어나고 힘들어질 듯하다.

 

오늘 길에는 다른 루트로 해서 와 봤는데 길이 좀 좋다는 것뿐이지 시간은 비슷하게 걸린다. 출퇴근 시간은 각각 1시간은 잡아야 할 듯. 자전거로 집에서 공장 정문까지 35분 정도 걸리고, 정문에서 일하는 장소인 샵장까지 걸어서 20분 정도 걸린다고 하니 말이다. 거의 문턱까지 이사 왔는데도 1시간이라니.

 

언덕이 있어서 힘이 들다 보니 전동 킥보드를 살걸 그랬나 싶다.

 

전동 킥보드를 사지 않은 이유는  매번 전기 충전하는 것도 귀찮은데다가 전기료도 들고, 산업단지라 자전거 길이 평지에 넓고 수월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카카오맵이 자전거로 20분 정도 걸린다고 하니 쉬엄쉬엄 자전거 타는 게 더 나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운동도 되고. 직접 답사를 해보니 아쉽긴 하다. 노가다하면 힘도 들 터인데 말이다.

 

여하튼 내일 출근할 준비는 모두 마쳤다.

 

출근길과 출근 시간도 확인하고 나니,

낯선 곳에 와서 다소 불안했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by 경계넘기.